일제강점기 조선신궁 때문에 남산 정상 팔각정 자리에서 인왕산으로 쫓겨 옮겨갔다는 국사당을 찾았다. 독립문 역에서 모바일 지도를 보며 올라가는데, 인왕산 자락에 난립한 아파트 단지들 때문에 시행착오를 여러 번 겪었다. 아파트들을 우회하여 가파른 계단과 비탈길을 올라 인왕사 일주문을 찾았다. 엉성한 시멘트 길과 계단들이 어지러웠다. 전봇대에 얽힌 전깃줄 역시 정신이 사나웠고, 그 일대가 대부분 절과 암자였는데, 내가 보기에는 영세한 무속 신앙지가 모여있는 산비탈 집단촌이었다. 국사당을 마주하면 감회가 남 다를 줄 알았으나, 어지럽게 난립한 주변 건물과 거미줄처럼 얽힌 전깃줄, 투박한 시멘트 길 등, 정리되지 않은 풍경들과 국사당 외형만 훑어보게 되어 아쉬움이 컸다.
국사당을 지나 경사 심한 계단을 올라 선바위 앞에 섰다. 선바위 곳곳엔 구멍이 뚫려 기괴한 모습이 마치 사람의 형상과 유사해 보였다. 마치 장삼입은 스님이 참선하는 모습과 같아서 선(禪) 바위라 이른다. 옛날부터 부녀자들이 아이 갖기를 소원하는 기자암(祈子庵)이었다고 한다. 때마침 수능고득점을 기원하는 현수막이 걸려 있었고, 그 앞에서 엎드려 기도하는 사람들이 끊이지 않았다. 소원성취를 위해 비는 사람들을 보면서, 간절한 기도 한 번 없이 살아온 내 인생이 우습단 생각이 들었다. 우리나라의 무속신앙은 유입된 불교와 융합하여 전승되어 왔다. 국사당은 조선초에 지은 조선의 국가신당이었기 때문에 일제에 의해 인왕산으로 옮겨온 것만으로도 퇴락한 현재의 영세한 신당으로 존치할 것이 아니라, 관계기관의 적극적 지원이 있어야 할 것 같다. 서울시나 문화재청에서 국사당과 주변에 난립한 암자들을 재정비한다면 작으나마 슬픈 우리 역사의 한 단면이 치유되지 않을까. 사람들이 많이 다니는 번화한 곳만 공원처럼 꾸밀 것이 아니라, 역사의 되안길에서 외면받고 있는 우리 문화도 소중하게 가꾸어야 할 것이다.
선바위 뒤를 돌아 인왕산으로 오르는 바위길을 통해 해골바위를 보고 원점으로 돌아오리라 생각했다. 지름길로 보이는 길은 군사지역으로 철조망이 막고 있었다. 샛길을 찾아 인왕 도성길까지 나갔으나 결국 찾지 못하고 같은 곳을 두세 번 맴돌았다. 지나치는 스님에게 물었더니 가깝다고 했지만 우리나라 산길이 대부분 조금 가면 된다는 것이서 도움이 되지 못했다. 도성길을 오르다 중간에 포기하고 도로 선바위로 내려와 국사당 계단길로 하산했다. 인왕사 일주문 아래 둘레길을 통해 서대문 형무소 역사관을 방문 하기 위해서였다. 무악재를 가로지르는 하늘다리를 건너 서대문 형무소 역사관에 도착했으나, 가는 날이 장날이라고 때마침 월요 휴무일이었다. 할 수 없이 담장 밖을 걸으며 울타리 안의 험했던 형무소 안을 눈길로 넘겨보았다. 일제강점기 이곳에서 순국하신 열사들의 사진이 담장에 걸려 있어 모골이 송연해졌다. 해방 후, 수많은 정치범들이 이곳에 갇혀 옥고를 치르거나, 사형당한 사람들도 부지기수 있었다. 아쉬운 마음으로 독립문 독립공원을 겉으로 둘러보는 것으로 일정을 마쳤다. 독립문 역시 가림막을 치고 보수공사하는 중이었다. 갑자기 기온이 떨어져 무악재를 넘어온 북풍만이 차갑게 몰아치고 있었다.
인왕사 일주문 아래 안내도



선바위 아래 국사당, 조선초부터 남산 정상에 있다가 일제 때, 철거 강요로 이곳으로 옮겨졌다.



본디 정면 3칸 측면 2칸이었으나 1925년 옮긴 뒤 측면에 한 칸씩 붙여 다섯 칸이 되었단다.


국사당 안 신당, 벽에 모셔진 신들 <출처 - 나무위키>


계단 위의 선바위, 전깃줄과 연등줄이 보기싫어 보정할 때 지워 없앴다.





선바위 뒷면

선바위 뒤 큰 바위 언덕 위에서 바라보는 남산 방향

바위 능선이 이어져 조심스레 능선을 타고 바위에 올랐다.



바위 위에서 보는 서대문 형무소 역사관

바위 앞에서 보는 선바위와 인왕도성, 그리고 동북 방향



아파트로 둘러싸인 서대문 형무소




안왕과 마주하고 있는 안산, 조선 인조 때 이괄이 반란을 일으키고 한양도성을 점령한 뒤 관군과 싸워 패전했다는 전장터.

가까이 보이는 서대문 형무소 역사관 전경



인왕도성길로 나가는 길

도성길에서 바라본 선바위 뒤 바위, 내가 올라갔을 때, 무악재 바람이 거세게 불어왔었다.

해골바위가 지척에 있는데, 길을 찾지 못해 우왕좌왕하다가 포기했다.


서대문 형무소로 가기 위해 선바위로 돌아왔다.

선바위 아래에서 보이는 풍경

선바위 아래 국사당



안산으로 건너가는 인왕산 둘레길 자락의 무악재 하늘다리


독립문 방향

하늘다리 건너 인왕산


독립문으로 내려가는 계단

무악재 하늘다리

담장 안 서대문 형무소 역사관, 월요 휴무일이라 들어갈 수 없었다.




벽돌담으로 둘러싸인 사형장, 담안에 사형을 집행하는 건물이 있다. 사형당 담장 왼쪽 형무소 높은 외벽 밑에 작은 문 하나가 뚫려 있다. 시체가 나가는 시구문이다. 사형수가 사형장 문 앞에서 죽음을 예감하고 '하늘 한 번 바라보고 땅 한 번 굽어보고' 눈물을 흘렸다는 어렸을 때 읽은 수필이 생각났다. 일제에 저항하거나 양심수로 이곳에 끌려와 사형 직전 바라봤던 마지막 하늘은 얼마나 야속했을까...


구치감 발굴 현장

독립공원의 류관순 열사

3.1 독립선언 기념탑



서재필 박사 동상

국사당
인왕산 국사당의 건립연대는 확실치 않다. 다만 건축 양식이나, 진열하고 있는 무신도의 신격, 조선왕조실록에 남산의 산신을 목멱대왕에 봉했다는 기록이 나오고, 목멱신사(木覓神祠)에 관련된 기록이 있어 조선시대에 지어졌을 것으로 추정된다.
본래 국사당은 서울 남산 꼭대기-현재 팔각정이 위치-에 지어진 건물이었다. 1925년 일본인들이 남산 기슭에 조선신궁(朝鮮神宮)을 지으면서 국사당이 자기들의 신사보다 높은 곳에 있는 것을 못마땅하게 여겨 이전을 강요하면서 결국 지금의 위치로 이전되었다. 이전 장소를 인왕산 기슭으로 택한 것은 태조 이성계와 무학대사가 기도하던 자리로 전해지기 때문이다.
앞면 3칸, 옆면 2칸이고 양끝의 2칸은 이곳으로 이전한 후 새로 지은 것이다. 1칸은 4쪽의 여닫이문으로 되어 있고 지붕은 맞배지붕이다. 내부의 3면에는 무신도가 걸려 있고 마루에는 제상을 차리고 굿을 하는 공간으로 이루어져 있다. 일반 건물보다 구조는 간단한 편이나 그 규모는 더 크며, 이전 당시 원래 사용하던 자재들을 그대로 가져와 건축하였다. <출처 : 나무위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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