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국내여행

안동 군자마을

  도산서원에서 남향하다 들린 곳은 안동군자마을이라는 광산김씨 집성촌 마을이었다. 광산김씨 집성촌 마을이라니 무엇보다도 반가웠으나, 마을이라기보다는 수몰지역의 고택들을 보존하기 위해 옮겨놓은 세트장 같았다. 집들 가운데 사람들이 고택 안에서 살림하는 집도 있었으나, 대부분의 고택들이 숙소체험장으로 쓰이고 있어 생생한 느낌은 덜 했다. 본디 이 마을은 안동시 외룡면 외촌리 외내에 있던 마을이었는데, 안동댐 건설로 수몰되자 1974년 이곳 운암곡 군자리로 이주하게 되었다고 한다. 

 

  낙동강이 흐르는 도산의 아홉구비 중, 첫 구비가 운암곡인데 군자마을이 바로 이 운암곡에 있다. 이 마을은 500-600년 전 광산김씨 김효로가 정착하며 형성된 마을로 같은 시대 외손인 봉화금씨까지 들어와 현재까지 살고 있다고 한다. 이곳에서 후조당 김부필을 비롯한 당대의 도학군자들이 배출되었기에 당시 안동부사였던 한강 정구가 "오천마을에는 군자가 아닌 사람이 없다."라고 한 말에 연유되어 군자마을이라 부르게 되었다고 한다. 마을에는 정자와 종택, 사당 등의 20여 고건축물들과 보물로 지정된 고문서들이 전하고 있으며, 현재 숙박과 전통요리를 제공하는 체험마을을 운영하고 있다. 주차비는 없고 입장료가 1인당  2000원이다.

 

  주차장 앞 마을 전경

 

 

  김효로 金孝虜 1454~1534

  조선 전기의 학자이며 광산김씨 예안파의 입향조이다. 자는 순경(舜卿), 호는 농수 또는 춘포(春圃)이며, 생원시에 합격하였으나 벼슬에 뜻이 없어 과거를 단념하고 학문과 조용한 삶을 즐겼다. 『오천세적(烏川世蹟)』에 의하면 ‘그는 생원이 된 뒤에 전원에 은거하였는데, 일찍이 태도와 행실이 우뚝하고, 명성과 덕망이 높아서 고을 사람들의 천거를 받아 그의 이름이 세상에 드러나려고 할 때 기묘사화가 일어나 뜻을 이루지 못하였다.’고 한다. 그가 추천을 받은 것은 65세의 고령이었으며, 이 해는 그의 아들 김연이 과거에 급제하여 벼슬을 시작하였던 해였다. 퇴계가 지은 김효로의 묘갈명에 의하면 ‘과거 시험에 매이지 않고 깨끗하고 바른 품행으로 남의 가르침을 직접 받지 않고 스스로 학문을 닦으며, 정성을 다하여 공경한 마음으로 제사를 받들고, 부모에 대한 효도와 형제에 대한 우애로 자손을 가르쳤다. 태도와 행실이 높고 뛰어났다.’라고 하였다. 후에 이조참판에 추증되었다. 그 후 유림에서는 사당을 세우고 퇴계의 조부인 이계양과 김효로의 위패를 모셨으며 사당 이름을 향현사(鄕賢祠)라 하였다. 이는 이 고을에 자리 잡은 두 명망 있는 가문의 조상으로서 그 자손 중에 어질고 총명한 사람을 많이 배출하였기 때문이다.

 

  김령 金玲 1577~1641

  자는 자준(子峻), 호는 계암(溪巖)이다. 광해군 4년 문과에 올라 승문원정자, 승정원주서 겸 춘추관 기사관에 옮겼으나 이른바 대북 소북이 서로 대치하여 국정이 어지럽자 묘를 지켜야 한다는 핑계로 고향으로 내려왔다. 세상이 갈수록 혼탁해지고 권력에 기생하려는 무리들이 기승을 부려 어린 영창대군에게 역모라는 모함을 씌워 강화의 교동섬에 가두어 죽이고, 그 어머니 인목대비를 삭탈하여 서궁에 유폐시키는 등 흉악한 변을 일으키자 공은 곧 문을 닫고 어두워만 가는 국사를 근심하며 전혀 사람을 만나지 않았다. 광해군 3월 김류, 이귀 등이 광해군을 폐하고 능양군을 왕으로 추대하는 인조반정이 일어나서 앞서 나라를 걱정하였던 이들을 중용하는데 먼저 공을 육품에 특진 성균관직강, 이어 사헌부지평에 임명되어 상경하는 도중 충주 달천에서 서울의 김곡(金穀)이란 선비를 만나, 이번 반정을 거사할 때 새 임금을 사제에서 맞이했는가, 아니면 새 임금이 의군에 함께 가담했었는가를 물어 의군에 가담했었다는 말을 듣고는 공이 혀를 차고 탄식하며 짐짓 말에서 떨어지고 병을 빙자하여 되돌아 왔다. 인조 4년 청나라가 침략하여 왕이 남한산성으로 피하고 여러 도의 군사가 잇달아 패하는 긴박한 지경에 이르러 예안에서도 의병을 일으키매 공은 가산을 기울여 의병을 도왔으며 이듬해 왕이 항복했다는 소식을 듣고는 서향하여 통곡하였다고 한다. 인조 19년 향년 65세를 일기로 몰하였다. 나중에 문정공의 시호를 받았다. 문집 2 책과 40여 년간의 일기가 전한다.

  <군자마을 홈페이지 군자마을의 역사에서>

군자마을 홈페이지 : http://www.gunjari.net/gunjari/

'국내여행' 카테고리의 다른 글

안동 하회마을  (4) 2014.10.08
안동 이촌동 석불  (2) 2014.10.06
안동 도산서원  (2) 2014.10.04
풍기 금선정  (2) 2014.10.01
영주 소수서원과 선비촌  (2) 2014.09.3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