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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내여행

정선 둘러보기

  정선 아리랑만큼 구성진 것이 있을까. 첩첩산골에 묻혀 사는 것도 한스러운데, 남자에게 버림까지 받고 화전을 일구며 사는 여인네의 서러움과 외롬은 얼마나 클 것인가. 정선 아리랑은 그런 여인들의 고독과 슬픔이 그대로 녹아 한이 서린 아리랑이다. 우리 대표적인 아리랑도 그 의미를 생각해 보면 버림받은 여인이 떠나는 남자에게 "십리도 못 가서 병이 나고 말 것"이라고 저주하는 한의 노래가 아니던가. 저주의 역설로 떠나는 임을 붙잡기 위한 엄포일 수도 있지만... 인간세상에서 믿고 사랑하며 의지하던 사람에게 버림받는다는 것은 감내하기 어려운 슬픔이다.  그것은 구절양장이 녹아나는 아픔이며, 참기 어렵도록 피눈물 나는 한이다. 또한, 그것은 바로 우리 민족 특유의 한의 정서로 피지배층의 아픔이며 사회적 강자보다 약자의 설움이고, 남성보다는 여성의 한이다. 그만큼, 이 땅에서 우리 겨레가 받아온 간난과 설움과 고통들은 깊고 큰 것이었겠다. 남북의 첨예한 대치 속에서 강대국의 이권이 맞물려 격랑에 휩쓸리며 생존을 위해 발버둥 치는 오늘날 소시민들의 어려운 삶도 여전히 진행형이라 그 한과 설움도 그치지 않아 이어지고 있지만...

 

 정선의 아라리촌은 정선 고을의 작은 민속촌이다. 정선지방의 특이한 집들과 아리랑 공연장, 연암 박지원의 "양반전"의 인물들을 재현해서 관광객들에게 볼거리를 제공하는 곳인데, 최근 정선 아리강 전수관이 완공을 눈앞에 두고 있었다. 아리랑 전수관이 준공되면, 그 안에서 공연되는 정선 아리랑 한 곡을 듣는 것만으로도 평생을 살면서 가슴 한구석에 묻어두기만 했던 설움과 한들을 쏟아낼 수 있을 것 같다.

 

아라리촌

 

 아라리 촌 안내도, 9번 건물이 아리랑 전수관

 

 

  애석하게도 땅이 질어, 걸으면서 관람하기가 불편했다. 옛날 어린 시절 시골의 겨울이 생각났다. 따뜻한 햇살에 언 땅이 녹아 질척일 때, 불편했던 일들이 떠올랐는데, 지금은 온통 포장된 도로에서 그 불편함을 잊고 사는 현실들에 지독한 망각의 세월에 대한 그리움이 일어나기도 한다. 오늘날의 편리한 도시문명만이 삶의 질을 높이는 최상의 것만은 아니라는... 

 

 

 

 

정선 오일장

 

  산나물 천국이 따로 없다. 들어보지도 못했던 숱한 나물들이 장터에 진열되어 있었다. 수년 전에 먹어보기 시작한 곤드레 나물도 지천으로 쌓여 있었다. 뭐가 뭔지도 모를 약초와 그 효능을 적은 안내팻말이 눈을 자극시킨다. 이곳에 오면 오히려 도시인들이 촌사람이 되는 것 같다.  장터 식당에서 들어가 티브이에서 보고 들었던 '콧등치기'를 시켰다. 국수를 들이킬 대 국수 끝이 콧등을 친 데서 유래했다는데, 그 이름이 재미있었다. 메밀 막국수를 좋아하는 덕에 메밀로 만든다는 콧등치기에 기대가 컸지만, 글쎄 그 맛은 잘 모르겠다. 그 대신 수수부꾸미, 메밀 전병, 장떡 등을 모아서 파는 만 원짜리 모둠전에서 잊었던 옛맛들을 떠올릴 수 있었다. 가난했던 그 어린 시절엔 장터에서 부치는 수수부꾸미 한 장 마음 편하게 얻어먹지 못했었는데...

 

 

 

 

 

 

고한 정암사

 

  신라 때 자장율사가 부처님 진신사리를 구해 우리 다섯 곳에 모셨는데, 그것이 자장율사의 5대 적멸보궁이다. 지금이야 웬만한 절에도 부처님 사리를 모셨지만, 신라시대엔 모시기 힘든 귀하디 귀한 사리였을 터이다. 자장율사는 경상도 양산 통도사와 강원도 오대산 상원사, 설악산 봉정암, 영월 사자산 법흥사, 태백의 정암사에 부처님 진신사리를 모셨다. 그래서 5대 적멸보궁인데, 이제껏 정암사만 보지 못해서, 일부러 이곳을 찾았다. 기대가 크면 실망도 크다지만, 이곳 정암사에선 너무 실망감이 컸다. 

 

  경내에 들어서자마자, 내 개인적으로 제일 싫어하는 배불뚝이 포대화상 석상이 떠억 자리를 차지하고 앉았다. 어찌 보면 옛날 70년대 금복주 상표 같은 포대화상, 돈을 많이 벌게 해 준다는 믿음 때문에 요즘 많은 절들이 이 포대화상을 들여놓는다. 스님들의 생각이 제대인지 모르겠다. 중생제도에 목표를 두어야 할 사찰들이 속세 중생들의 기복신앙을 위해서 이처럼 배금행위를 조장한다는 건, 소돔과 고모라의 멸망과도 같은 퇴폐행위는 아닐는지도 모르겠다. 짧은 안목으로는 재물을 탐하는 보살님들의 시주가 스님들의 입맛을 더 당길지도 모르겠으나 적멸보궁이라는 신성한 곳까지 속물적 배금행위를 들여서는 안 될 성싶었다. 가람의 배치도 허술해 보이고 적멸보궁 뒤, 높은 산 위에 부처님 진신사리를 모신 수마노탑이 너무 멀어 보였다. 법당 안에 부처님을 모시지 않은 적멸보궁인데, 제단 뒤 나무들과 산 한참 위에 사리탑이 있으니, 눈을 지그시 감고서 심안으로 부처님을 모셔야 될 것 같았다.    

 

 정암사 입구 

 

  경내로 들어가는 길, 가운데 놓인 포대화상, 그 뒤 산 위에 부처님 진신사리를 모신 수마노 탑이 있다.

 

  적멸보궁, 산과 나무에 가려 사리탑은 보이지 않았다.

 

  적멸보궁과 종무소 사이에 있는 극락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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