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산에서 올라오며 들린 곳이 밀양, "날 좀 보소 날 좀 보소 동지섣달 꽃 본 듯이 날 좀 보소..." 그 유명한 밀양 아리랑의 본고장이기에 호기심도 많았고, 수년 전 전도연이 열연했던 영화 "밀양"의 고장이기도 해서 그냥 지나치기엔 아쉬움이 있었다. 남밀양 IC부터 조반을 먹기 위해 식당을 찾았는데, 쉽지 않았다. 결국 영남루 아래 주차장에 차를 대고 그 옆에 있는 밀양 전통시장 안에서 아침을 먹었다. 상냥하고 친절한 식당 주인은 반찬솜씨도 좋아서 한 순간에 아침 한 끼를 후딱 해치웠다. 식당 주인의 말에 의하면, 영화를 촬영했던 밀양 시가를 전도연 거리로 이름 지었다고 한다.
전도연의 명품연기에 전율하기도 했지만, 아직도 영화가 전달하려는 밀양의 의미를 잘 이해하지 못한다. 감독이 주는 메시지는 "密陽"의 사전적 의미와 연관이 있을 성싶다. 굳이 해석하자면 '햇볕이 빽빽한 곳' 또는 '햇볕이 은밀한 곳' 정도인데, 그 뜻이 후자에 가까울 것 같다. 마지막 장면이 전도연이 잘라낸 머리칼이 바람에 날려, 물이 잘빠지지 않고 햇볕마저 잘 들지 않는 마당 한 구석 습지에 떨어져 한참을 머무는 것으로 끝난다. 그곳은 반음지로 햇볕이 조금 비춰 들고, 쓸모없이 자질구레한 생활 소품들이 나뒹구는 곳인데, 그 의미가 어려운 세파 속에 갈등하며 살아가는 서민들의 삶의 공간이란 뜻은 아닐까? 버려지고 잊혀진 것들이 나뒹구는 공간이지만, 약간의 햇볕이 비치는 곳, 시련 속에 잊혀진 듯 곡절 많은 사람들이 살고 있으나 스며드는 작은 햇볕처럼 삶의 희망도 조금 찾아볼 수 있는 공간, 그곳이 아마 "밀양"의 의미가 아닐까 나름대로 생각해 보았다.
"밀양"은 이청준 단편소설 "벌레 이야기"를 영화로 만들었다. 유괴 살인범이 피해자에게 하나님을 믿음으로써 구원받았다고 태연스레 말하는 장면에서, 피해자는 물론 관객들까지도 엄청난 충격적 아이러니를 느끼게 되는데, 여기에 고도의 은유로 "밀양"이란 지명을 끌어 붙인 감독이 재창조한 의미가 그저 놀랍다.
밀양강변의 거대한 영남루는 강산과 함께 조화를 이루는 이름다운 건축물이었다. 강릉 경포대엔 "제일강산(第一江山)", 삼척 죽서루엔 "관동제일루(關東第一樓)"란 현판이 걸렸는데, 이곳엔 "영남제일루"가 내걸렸다. 아마도 영남지방을 대표하는 누각이라 짐작된다. 누각 마루에서 바라보는 경치도 아름답거니와, 단순한 누각만이 아닌 좌우에 부속건물을 하나씩 붙여 조형미를 한껏 뽐내고 있었다. 주변엔 작곡가 박시춘 생가, 무봉사, 아랑각, 그리고 밀양전통시장, 위쪽 시장 삼거리엔 밀양 관아까지 있어서 한나절 볼거리로 넉넉했다.
영남루
왼쪽부터 능파각, 영남루, 침류각
천진궁 앞에 있는 밀성대군지단 - 신라 경명왕의 첫째 아들로서 밀양박씨 시조이다. 박혁거세 30세손으로서, 이름은 박언침(朴彦忱)이며, 어머니는 석(昔)씨라고 한다.
만덕문과 천진궁
천진궁은 우리나라 역대 국가의 시조들의 위패를 모신 곳이다. 일제강점기엔 우리나라의 권위를 훼손하기 위하여 역대시조왕들의 신주를 땅에 모두 묻고 헌병대 감옥으로 사용했다고 한다. 참으로 치졸한 일이다. 모셔진 시조왕 신주는 중앙의 단군 영정 아래 '合 88 王 大皇祖 檀君位 歷 1048年'을 중심으로 좌우에 4위씩 합 70 왕 부여시조왕위 력 1719년, 합 27 왕 고구려시조왕위 력 705년, 합 10 왕 가락국시조왕위 력 491년, 합 32 왕 고려태조왕위 력475년, 합 25 왕 후조선태조왕 위 력 519 년, 합 14 왕 발해고왕위 력 218년, 합 30 왕 백제시조왕위 력 678년, 합 55 왕 신라시조왕위 력 992년 등 8위였다.
천진궁 내부, 단군영정이 중앙에 모셔지고 좌우 양벽에 역대 시조왕들의 신주가 모셔져 있다.
때마침 실시하는 소방훈련
영남루 옆 전통시장 식당의 3인분 아침식단(1인분 6000원)
작곡가 박시춘 노래비와 생가
밀양관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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