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융건릉

(4)
화성 융건릉과 정조 효공원 요사이 며칠 동안 그야말로 북풍한설이 극성이다. 어렸을 때 주기적으로 순환되던 삼한사온이 생각난다. 추운 날이면 친구들끼리 삼삼오오 모여 양지녘 벽에 붙어 햇빛바라기를 하곤 했다. 그 시절 손등은 왜 그리 거미줄처럼 갈라지도 터졌는지. 손 튼 데는 안티푸리민이 특효였지만, 그것도 귀해서 터진 틈으로 피딱지가 엉겨 붙어도 참으며 하릴없이 한 겨울을 넘겼다. 삼한사온이 없어진 지 오래된 오늘, 차가운 북풍이 얼굴에 부딪치니 새봄의 훈풍이 더욱 그립다. 날씨가 추운 탓에 하늘이 푸르렀다. 푸른 하늘 덕에 햇볕이 좋아 모처럼 바깥나들이로 오랜만에 융건릉을 찾았다. 몇 년 사이 주변 풍경이 많이 변했다. 용주사와 왕릉 사이에 있던 푸른 초원에 아파트를 짓는다고 흉하게 함석 울타리를 두르더니, 그 울타리가 없어지고..
화성 융건릉 아침에는 날씨가 흐리더니, 오후에 햇살이 쨍하게 내비치었다. 바람이나 쐬려고 화성 융건릉에 나갔다. 동탄 병점 인근 회사원 가족들이 다 나왔나 보다. 주차장은 이미 만석이어서 차를 빙빙 돌리다, 근처 음식점 주차장에 두고 융건릉 안으로 들어갔다. 엊그제만 해도 추워서 떨었는데, 벌써 한여름이 찾아왔다. 봄옷을 걸치고 나갔음에도 더위를 주체할 수 없어 헉헉거렸다. 코로나 방역 마스크 덕에 숨 쉬는 게 더 힘들었다. 마스크 없이 돌아다니는 사람들이 점점 늘어난다. 융건릉 관리 사무소에서 방송으로 마스크 쓰고 2m 거리를 유지하라고 계속해서 안내 방송을 하던데, 방송도 형식적이었고 관람객들도 소귀에 경읽기였다. 답답함에 시원한 자연을 즐기러 나온 것은 이해되지만 민폐는 끼치지 말아야 할 것이나, 방심해서 잊고..
화성시 용주사, 융건릉 가을 날씨답게 하늘이 푸르다. 구름 한 점 없이 맑은 하늘이었다. 입방정이 될지도 모르겠지만 일본을 관통하는 태풍 탓인지 모처럼 푸른 하늘이 이어지고 있다. 맑은 하늘 덕에 카메라를 들고 밖으로 나왔다. 용주사에 도착하니 주차된 관광버스가 보였다. 사람들이 많으면 아무래도 사진 찍기가 어려워진다. 매표소에서 약간 실랑이를 하고 현금으로 인장권을 샀다. 대부분 절간에선 카드를 받지 않는다. 며칠 전 불국사는 전과 달리 카드결제를 하고 있더만... 현금 주기 싫어서가 아니라 대부분 지갑에 현금을 넣고 다니지 않기 때문이다. 지갑을 탈탈 털어 천 원짜리들을 모아서 입장료를 내며 싫은 소리를 했더니 매표소 직원은 처음엔 결제시스템이 없어서라더니 나중엔 윗사람들이 하라는 대로 할 뿐이랬다. 스님들의 현금 사랑이 ..
융건릉 가뭄과 메르스로 고통받는 나날이지만 모처럼 푸른 하늘에 구름이 좋은 날이었다. 장마 탓으로 비가 좀 내린 탓이었을까, 시계가 그야말로 무궁무진했다. 날씨가 너무 좋아 융건릉을 찾았는데, 뜨거운 한낮의 뙤약볕과 메르스가 전혀 잦아들지 않았음에도 많은 사람들이 융건릉 숲을 즐기고 있었다. 숲 속그늘에선 몰랐으나, 햇빛 속에서는 너무 뜨거워 마치 목털미가 불타는 듯했다. 구름이 많은 탓에 햇살이 숨바꼭질 하긴 했으나, 사진 찍기엔 매우 좋은 날이었다. 사도세자의 아들이었던 정조가 아버지 묘를 잘 쓴 덕인지, 사도세자는 비명에 죽었으나, 영조대왕 이후의 조선의 왕들은 모두 사도세자의 후손이었다. 정조대왕을 정점으로 융성했던 국운도 대비를 둘러싸고 벌어진 세도정치로 쇠하여 일제에 나라까지 빼앗기는 수모를 당하기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