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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당

융건릉

 가뭄과 메르스로 고통받는 나날이지만 모처럼 푸른 하늘에 구름이 좋은 날이었다. 장마 탓으로 비가 좀 내린 탓이었을까, 시계가 그야말로 무궁무진했다. 날씨가 너무 좋아 융건릉을 찾았는데, 뜨거운 한낮의 뙤약볕과 메르스가 전혀 잦아들지 않았음에도 많은 사람들이 융건릉 숲을 즐기고 있었다. 숲 속그늘에선 몰랐으나, 햇빛 속에서는 너무 뜨거워 마치 목털미가 불타는 듯했다. 구름이 많은 탓에 햇살이 숨바꼭질 하긴 했으나, 사진 찍기엔 매우 좋은 날이었다.

 

  사도세자의 아들이었던 정조가 아버지 묘를 잘 쓴 덕인지, 사도세자는 비명에 죽었으나, 영조대왕 이후의 조선의 왕들은 모두 사도세자의 후손이었다. 정조대왕을 정점으로 융성했던 국운도 대비를 둘러싸고 벌어진 세도정치로 쇠하여 일제에 나라까지 빼앗기는 수모를 당하기도 했지만, 비운의 왕세자의 가계는 조선이 망할 때까지 끈질기게 이어졌으니, 이 역시 역사의 아이러니로 여겨진다. 비록 흥선대원군의 아버지 남연군은 인조의 셋째 아들 인평군의 7대손으로 사도세자의 서자인 은신군에 입양되어 사도세자의 계통을 간접적으로 잇게 되긴 하지만...   

 

  언제부터인지 주차장이 무료로 개방되었다. 주변의 보조 주차장까지 합치면 주차걱정은 하지 않아도 될 것 같다. 융건릉의 숲과 하늘...

 

  융릉 앞의 곤신지, 인위적으로 조성한 왕릉 앞의 연못, 가뭄 때문에 비닐 호수로 물을 공급받고 있었으나, 물이 탁했다.

 

  사도세자의 능인 융릉, 세자로서 국왕이 되지 못하고, 아버지에게 처참히 살해되었지만, 아들덕에 이곳으로 옮겨져, 고종 36년(1899) 국왕(장조)을 거쳐 황제(장조 의황제)로 추존됨으로써 사후나마 지존의 자리에 올랐다. 좌측은 제사음식을 준비하는 곳이고, 가운데는 제사 지내는 정자각, 오른쪽은 비각이다. 능침은 혜경궁 홍 씨와 사도세자의 합장릉으로 하나의 봉분에 모셔져 있다.

 

  정자각

 

 융릉의 뒤를 돌아 건릉으로 가는 산책로, 진입하며 바라본 융릉

 

  융건릉 뒷산에서 바라본 수원 광교산 

 

  서울 방면, 시계가 맑아 북한산까지 보였다.

 

  경내의 적송

 

한 바퀴 돌아 도착한 건릉, 조선 제22대 왕 정조(正祖 1752~1800, 재위 1776~1800)와 부인 효의왕후(孝懿王后) 김씨(1753~1821)를 합장한 무덤이다.

 

융건릉 입구의 재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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