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무지 T S 엘리엇
쿠메의 한 무녀(巫女)가 독 안에 매달려 있는 것을 내 눈으로 보았다.
그 때 아이들이 "무녀, 당신은 무엇이 소원이에오?" 라고 묻자,
그녀는 "난 죽고 싶다."라고 대답했다.
- 한층 훌륭한 예술가 에즈라 파운드에게
제 1 부 죽은 자의 매장
사월은 가장 잔인한 달...
죽은 땅에서 라일락을 키워 내고
추억과 욕정을 뒤섞고
잠든 뿌리를 봄비로 깨운다.
겨울은 오히려 따뜻했다.
잘 잊게 해주는 눈으로 대지를 덮고
마른 구근으로 약간의 목숨을 대어 주었다.
슈타른버거 호 너머로 소나기와 함께 갑자기 여름이 왔다.
우리는 주랑에 머물렀다가
햇빛이 나자 호프가르텐 공원에 가서
커피를 들며 한 시간 동안 이야기 했다.
나는 러시아인이 아니오. 출생은 리투아니아이지만
진짜 독일인이요.
어려서 사촌 태공집에 머물렀을 때
썰매를 태워 줬는 데 겁이 났어요.
그는 말했죠, 마리 마리 꼭 잡아.
그리곤 쏜살같이 내려갔지요.
산에 오면 자유로운 느낌이 드는군요.
밤에는 대개 책을 읽고 겨울엔 남쪽에 갑니다.
이 움켜잡은 뿌리는 무엇이며,
이 자갈더미에서 무슨 가지가 자라 나오는가?
인자여, 너는 말하기는커녕 짐작도 못하리라
네가 아는 것은 파괴된 우상더미뿐..
그곳엔 해가 쪼아대고 죽은 나무에는 쉼터도 없고
귀뚜라미도 위안을 주지 않고
메마른 돌엔 물소리도 없느니라.
단지 이 붉은 바위 아래 그늘이 있을 뿐..
(이 붉은 바위 그늘로 들어오너라)..
그러면 너에게 아침 네 뒤를 따르는 그림자나
저녁에 너를 맞으러 일어서는 네 그림자와는 다른
그 무엇을 보여 주리라.
한줌의 먼지 속에서 공포를 보여 주리라.
<바람은 상쾌하게
고향으로 불어요
아일랜드 님아
어디서 날 기다려주나? ........!>
<일년 전 당신이 저에게 처음으로 히아신스를 줬지요.
다들 저를 히아신스 아가씨라 불렀어요>
......허지만 히아신스 정원에서 밤늦게
한아름 꽃을 안고 머리칼 젖은 너와 함께 돌아왔을 때
나는 말도 못하고 눈도 안 보여
산 것도 죽은 것도 아니었다.
빛의 핵심인 정적을 들여다보며 아무것도 알 수 없었다.
<황량하고 쓸쓸합니다, 바다는........>
유명한 천리안 소소스트리스 부인은
독감에 걸렸다. 허지만
영특한 카드 한 벌을 가지고
유럽에서 가장 슬기로운 여자로 알려져 있다.
이것 보세요, 그네가 말했다.
여기 당신 패가 있어요. 페니키아 수부군요.
(보세요, 그의 눈은 진주로 변했어요)
이건 벨라돈나, 암석의 여인 수상한 여인이에요.
이건 지팡이 셋 짚은 사나이, 이건 바퀴...
이건 눈 하나밖에 없는 상인
그리고 아무것도 안 그린 이 패는 그가 짊어지고 가는 무엇인데
내가 보지 못하도록 되어 있습니다.
교살당한 사내의 패가 안 보이는군요.
물에 빠져 죽는 걸 조심하세요.
수많은 사람들이 원을 그리며 돌고 있군요.
또 오세요. 에퀴톤 부인을 만나시거든
천궁도를 직접 갖고 가겠다고 전해 주세요.
요새는 조심해야죠.
현실감 없는 도시,
겨울 새벽의 갈색 안개 밑으로
한떼의 사람들이 런던 교 위로 흘러갔다.
그처럼 많은 사람을 죽음이 망쳤다고 나는 생각도 못했다.
이따금 짧은 한숨들을 내쉬며
각자 발치만 내려보면서
언덕을 넘어 킹 윌리엄 가를 내려가
성 메어리 울노스 성당이 죽은 소리로
드디어 아홉시를 알리는 곳으로.
거기서 나는 낯익은 자를 만나
소리쳐서 그를 세웠다. <스텐슨!
자네 밀라에 해전 때 나와 같은 배에 탔었지!
작년 뜰에 심은 시체에 싹이 트기 시작했나?
올해엔 꽃이 필까.......?
혹시 때아닌 서리가 묘상을 망쳤나?
오오 개를 멀리하게 비록 놈이 인간의 친구이긴 해도
그렇잖으면 놈이 발톱으로 시체를 다시 파헤칠 걸세!
그대!! 위선적인 독자여!! 나와 같은 자 나의 형제여!~~> 1922년
문득 엘리엇의 난해한 독백시 "황무지"의 첫구절이 생각이 났다. "4월은 가장 잔인한 달..."이라는 첫구절이 송곳처럼 가슴을 찌른다. 60년대에는 4.19 혁명때 이승만 정권의 총부리에 희생되어 숨져간 젊은이들이 떠올라 한국인들에게 크게 어필했던 시였다. 그래서 기억하고 있던 이 시가 2014년 4월16일 일본산 쓰레기 고철 폐선 속에 갇혀 숨져간 단원고 어린 학생들의 참상에 다시금 세월을 뛰어넘어 뇌리를 들치고 기억밖으로 뛰쳐 나왔다. 엘리엇에게 4월이 왜 잔인했는지 구태여 알고 싶지도 않지만, 영국에서 이역만리 떨어진 코리아엔 시간을 뛰어넘어 현재진행형으로 잔인한 4월이 지속되고 있다. 엘리엇이 살았더라면 우리의 현실을 빗대어 뭐라고 했을까...
아아아~ 정말로 잔인한, 코리아의 4월이다... ... ...
영문도 모르고 여행의 낭만을 꿈꾸다 300명이 넘는 시민과 학생들이 희생된 가운데, 4월의 햇살은 따갑고, 꽃들은 지상에서 화려하게 피어나고 있었다. 참으로 잔인한 4월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