날씨가 흐려 덥지는 않았지만 푸른 하늘을 볼 수 없어 아쉬웠다.
백제왕조의 마지막 도읍지 부여. 사회 초년병 시절 나홀로 배낭 하나 메고, 고속버스를 타고 부여를 찾은 적이 있었다. 어둠이 내린 밤, 백마강을 건너던 버스에서 '추억의 백마강'이 흘러 나왔다. 학교 다닐 때 막걸리잔에 젓가락 장단으로 즐겨 부르던 '추억의 백마강'이었는데, 그 노래가 구성지게 들려왔다. 차창밖에는 어둠밖에 아무 것도 볼 수 없었음에도 나도 모르게 눈물이 볼을 타고 주르르 흘러 내렸다. 당나라 군대에게 쫓긴 삼천 궁녀들이 두려움에 치마를 뒤집어 쓰고 낙화암에서 꽃잎처럼 떨어져서도 아니었고, 한양에서부터 공주로 부여 사비로 밀려나 망해버린 오백 년 백제 역사 때문도 결코 아니었다. 나도 모르게 그저 울컥 솟았던 슬픈 감정이어서 지금도 무엇이 눈물을 흘리게 했는지 그 이유를 알 수가 없다.
이튿날, 부소산에 오르자 노인 한 분이 지팡이로 사방을 가리키며 곳곳을 설명하고 있었다. 소정방과 김유신, 계백 장군들을 눈앞에 펼쳐놓고 보여주듯, 격정섞인 어조로 풀어내었다. 그 모습이 신기하고 재미있어서 한참을 귀기울이며 경청했었다. 마치 눈 먼 호머루스가 많은 청중들 앞에서 보이지도 않는 눈을 지긋이 감고 신화시대 아킬레스와 헥토르의 장엄한 전투장면들을 재현하는 것같은 모습이었다. 문화해설사도 없던 그 시절 노인은 어려서부터 들어왔을 이야기들을 그렇게 들려주었다. 이후 부여를 방문해선 그와 같은 모습들을 두 번 다시 본 적이 없다. 부소산 밑에 있던 박물관도 다른 곳으로 이사가고 모든 것이 현대적으로 바뀐 지금, 옛날의 감동을 느낄 수 없음은 지나간 세월에 대한 향수때문인지도 모르겠다.
부여 궁남지는 처음 방문하는 곳이었다. 우리나라에서 연밭으로는 제일 넓다고 한다. 연밭사이로 산책길을 만들어 아름다운 공원을 꾸며 놓았다. 연밭 한 가운데는 호수였는데, 주변을 한바퀴 돌며 산책할 수 있도록 배려하였다.
철이 지나 연꽃 사진 하나 제대로 얻지 못했다고 투덜거렸던 나는 궁남지에서 그 동안 보지 못했던 연꽃들을 원없이 만나볼 수 있었다. 궁남지 옆 식당에서 점심으로 연잎정식을 먹었는데, 많은 손님들 때문인지, 기대만큼 만족스럽지 못했던 것이 아쉬움으로 남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