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 높고 골 깊어 옛날엔 귀양을 가거나 속세를 등진 사람들이 찾던 마을이 이젠 관광명소가 되었다. 우리나라 방방곡곡 5일장이 서지 않는 곳이 어디 있으랴만, 정선 5일장이 전통재래시장의 대명사가 된 듯하다. 마치 잘 보존된 민속마을처럼 심심치 않게 매스컴에 오르내린다. 높은 산등성이와 그 산등성이를 휘어 감아 흐르는 개울 덕에 손바닥만 한 모래톱이 두 곳 생기고, 그곳을 의지하여 정선읍이 들어섰다. 그리고, 장터 가까운 곳인 조양강변에 주차장을 마련하고, 장터 골목에 지붕을 올려 전천후로 장을 볼 수 있도록 하였다.
정선을 처음 찾은 나로서는 이곳 풍경이 아름답다거나 신기하다는 느낌은 없었다. 그저 그런, 작은 마을일 뿐이었다. 장날이 아니어서 장거리는 한산했다. 황기, 더덕, 도라지, 곤드레, 취나물 등 산나물 말린 것들과 잡곡들이 대부분이었다. 신토불이로 모두 우리 몸에 좋다는 것들이다.
조반을 먹은지 얼마 되지 않은 탓에 정선의 토속음식을 시식할 수 있는 기회는 없었다. 다만, 시장에서 곤드레 나물 한 봉지와 갓 따온 찰 옥수수를 두 자루 사서 승용차 뒤에 실었다. 언젠가 태백에서 먹어본 곤드레 밥맛을 잊지 못하고 있었던 차에, 마트에서 즉석식품으로 가공한 곤드레밥을 본 적이 있어서 곤드레 나물을 구입해 봤다. 주인에게 부탁하니 나물요리법이 인쇄된 설명서와 상점 스티커를 봉지에 넣어 주었다.
장터 구경 후, 읍내 아라리촌에 갔다. 읍의 외곽지대에 널찍하게 마련한 아라리촌은 '정선아리랑'과 연암 박지원의 '양반전'을 테마로 한 마을이었다. 우리나라 아리랑 중에 가장 구성지고, 맺힌 한이 뚝뚝 떨어져 흐르는 정선아리랑 가락이 스피커를 타고 흘러나왔다. "바람 불려나아 비가 올라나아 억수장마 질려나아. 만수산(萬壽山) 검은 구름이 막 모여든다~...... "
한 때 하춘화가 "아리랑아리랑아라리요. 아리랑 고개로 나를 넘겨 주소. 강원도 금강산 일만 이천봉 팔만 구암자 유점사 법당뒤 칠성단에 모두모여 팔자에 없는 아들 딸 낳아 달라고 백일 정성을 말고 타관 객지 외로이 떠난 사람 괄시를 마소 정산읍에 물나들이 허풍선이 글글대는 사시장천 물거품을 안고 빙글빙글 뱅글뱅글 요리조리 조리요리 비빙 배뱅글 돌아가는데 우리 집의 그 사람은 돌아올 줄 모르네..."라는 정선 아리랑이 유행한 적이 있었는데, 실제 정선 아리랑은 그보다 더 구성지고, 원색적이며, 한이 많은 노래이다. 그리고 가락에 맞춰서 상황에 맞게 개사해 부르는 노랫말들이 다양해서 재미도 있다.
아라리촌은 입장료가 3000원이었다. 그런데, 입장권으로 준 것이 정선에서 현금처럼 사용할 수 있는 3000원짜리 상품권이었다. 대단한 창의적 발상이었다. 결국 아라리촌은 무료입장이고 입장객들이 낸 돈은 정선 주민들에게 돌아간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입장료를 더 올려 받아도 좋을 듯하다. 입장객들도 어차피 정선 장터에 가서 쓸 수 있으니 손해 볼 것 없고, 정선 상인들도 좀 더 혜택을 볼 것이기 때문이다. 지역주민들을 위한 훌륭한 아이디어였다.
풍경이 그리 썩 아름다운 것은 아니로되, 재래장과 아라리촌으로 관광상품을 개발하고 주민들을 위해 노력하는 관청이 있다면, 민과 관이 어우러져 아름다운 고장으로 발돋움할 수 있으리라 생각하며 아라리촌을 떠나왔다. 산 높고 물 맑아 공기까지 청정한 정선이 더욱 살기 좋은 마을이 되길 바랐다.
아라리촌 앞의 조양강
아라리촌 입구
너와집
아리랑 공연장
체험 가옥
물레방아
양반 증서 발급
양반전 테마 조각전시장
아라리 학당
친일파 이범익 영세 불망비, 어느 세상에나 이처럼 아첨하는 군상들이 겨레의 정신을 탁하게 하고 있다. 이 불망비로 아니러니 하게도 이범익은 겨레의 정신을 더럽힌 친일파로 영원히 잊지 못하게 될 것이다.
아라리촌 옆에 건설 중인 정선 아리랑 공연장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