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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내여행

주인 없는 청와대 나들이

   길 건너 청와대 쪽 도로에서 신무문을 바라보는 것은 난생처음 있는 일이다. 정말 오래 살고 볼 일이다. 하다 못해 동사무소 직원 한 명도 연줄 없는 내가 그 서슬 퍼렇던 청와대 안을 한가로이 거닌다는 것은 상상조차 하지 못한 일이었다.  80년대 잠시 삼청동에 적을 둔 적이 있었는데, 경복궁에서 삼청동으로 갈라지는 삼거리부터 지나다닐 때, 경찰들이 부리부리한 눈으로 째려보고 있어서 노심초사 조심조심 걸어 다녔었다. 그뿐이었던가. 쿠데타와 광주 학살로 정권을 잡은 전두환은 남산 서울타워 전망대에서 청와대 쪽으로 사진도 찍지 못하게 했고, 삼청동에선 집집마다 호구조사까지 시키며 자기 생명을 철저하게 보존했다.

 

   박정희 대통 땐 북악 스카이웨이 팔각정 부근에서도 청와대 쪽으로는 눈길도 돌리지 못할 정도로 지엄하고 존엄하신 분이 살던 곳이었다. 박근혜 정권 때는 경복궁 안에서 신무문으로 가는 도중에, 선글라스 낀 경찰에게 등에 맨 카메라 배낭 수색까지 당했고, 촛불 시위하면서 삼청동 삼거리에서 청와대 방향으로 이삼백 미터 바리케이드까지 가본 것이 전부였다. 맘씨 좋아 보이는 문재인 대통령이 청와대 앞길을 개방한대서, 일부러 효자동에서 삼청동까지 걸으면서 청와대 안쪽을 기웃거려 보기도 했다. 그때도 선글라스 쓴 경찰관들 시선이 몹시 따가웠었다.  

 

 그랬던 곳이었는데, 금년 5월 당선된 대통령이 느닷없이, 그 엄중하고 요새 같은 구중궁궐에 들어가지 않고 사방이 개방된 용산으로 떠나 서슬 퍼렇던 청와대는 졸지에 무주공산이 되어 순식간에 그 위엄을 잃고 말았다. 그 덕에 청와대 안에 들어가 보긴 하지만, 떨떠름하기도 하고 인터넷으로 예약하니 어쩌니 절차가 번거로웠다. 문통 시절에도 인터넷으로 청와대를 예약 관람하도록 했으니, 주인도 없는 지금은 경복궁 입장하듯 자유롭게 개방하면 될 텐데 인원을 통제하는 이유가 뭘까? 한꺼번에 몰리는 사람들을 안배한다는 뜻은 이해되지만, 이젠 주인 없는 무주공산이 아니던가. 인터넷 예약이 귀찮아서 현장에서 등록하고 들어가기로 했다. 벌써 이 땅에서 오래 살아 나잇살 좀 먹었다고 현장에서 등록하게 해 준다니 그것도 고마운 일이었다. 그런데 현장 등록은 오전 9시 하고, 오후 1시 30분 2회만 한다며, 오후 1시 반까지 기다리라는 것이었다. 어쩔 수 없이 신무문 앞길 건너 청와대 정문 등록처 옆 그늘에서 순서대로 줄 맞춰 50분여를 쭈그려 앉아 그 시각까지 기다렸다.

 

  각지에서 대형 관광버스들이 몰려들고 있었다. 그런데, 사람들의 행렬을 헤집으며, 연세 지긋한 할머니 셋이서 미군 철수 반대 어깨띠를 대각선으로 매고는 사람마다 붙잡고 서명을 하라고 했다. 시간 여유도 있고 해서 그 내용을 보자니까 반가워서인지 불쑥 서명지를 내놓았는데, 서명지 안에는 주한 미군 철수 반대 문구는 눈 씻고 볼 수 도 없었다. 그 내용은 주사파 척결 등 주로 극우론자들의 주장이었다. 주사파가 뭔지나 알고 떠드는 얘긴지 80년대 극우파 논조가 30년이나 지난 오늘날에까지 활개 치는 현실이 안타까웠다. 내 옆에 마산에서 왔다는 노친네들은 주한미군이 철수하면 큰 일이라며 돌려가며 서명지에 사인하고 있었다. 그 할머니들에게 몇 사람이 입 바른 소리를 하자, 서명하지 않는 사람들은 빨갱이라며 그 할머니들이 악다구니를 했다. 어처구니없다. 왜 이렇게 갈라치기를 해야 할까. 내 말만 말이고 나와 다른 의견을 가진 사람은 공적인 빨갱이가 되어야만 하는 것일까. 그 할머니는 알바하는 분일까, 아니면 극렬한 태극기 부대원일까, 제욕심 채우려는 야심가의 하수인일까. 입장 시간을 기다리는 동안 그들의 정체에 대해 골똘히 생각해 보았다.

 

 

  청와대 정문에서 처음으로 바라보는 신무문

 

  드디어 1시 30분이 지나 현장 등록소에서 입장 띠를 받아 개인 입장줄로 청와대 정문에서 태그하고 안으로 들어섰다.

 

  청와대 본관, 건축 설계엔 문외한이나, 외관이 그리 아름답지 않았다. 노태우 대통령 시절인 1991년 9월 준공했다. 

 

  본관 내부 로비

 

   본관 좌측 통로로 이동하며 여러 방들을 지났다. 역대 대통령 초상화가 걸린 방, 공교롭게 네 명 모두 불우한 대통령들이었다. 두 명은 장기 독재로 국민 위에 제왕처럼 군림하며 민중들을 탄압하다가 비극적 종말을 맞았고, 두 명은 임기 초반에 쿠데타로 쫓겨나 대통령직을 잃은 사람들이었다.

 

  역대 영부인 초상화가 걸린 방

 

  본관 2층으로 올라가는 계단, 중앙에 한반도 지도가 걸렸다. 이왕이면 고구려 발해의 옛 땅까지 넣었으면 좋았을 것을... 

 

  대통령 집무실, 대통령 휘장이 마음에 들지 않는다. 볼 때마다 조지훈 시인의 '봉황수'가 떠오른다.  "벌레 먹은 두리기둥/ 빛 낡은 단청(丹靑) 풍경 소리 날아간 추녀 끝에는/ 산새도 비둘기도 둥주리를 마구 쳤다./ 큰 나라 섬기다 거미줄 친 옥좌(玉座) 위엔/ 여의주(如意珠) 희롱하는 쌍룡(雙龍) 대신에/ 두 마리 봉황새를 틀어 올렸다./ 어느 땐들 봉황이 울었으랴만/ 푸르른 하늘 밑 추석(登石)을 밟고 가는 나의 그림자./ 패옥(佩玉) 소리도 없었다./ 품석(品石) 옆에서 정일품(正一品) 종구품(從九品) 어느 줄에도/ 나의 몸 둘 곳은 바이 없었다./ 눈물이 속된 줄을 모를 양이면/ 봉황새야 구천(九天)에 호곡(呼哭)하리라." 옛 시절 국민학교 상장에도 저걸 멋나게 썼었는데, 어느 날 갑자기 지엄하신 모 대통령이 존엄한 휘장을 개나 소나 다 쓴다고 혼쭐 내신 후에는 대통령 외에 쓰지 못하게 됐다. 왕권을 상징하는 것은 분명 용(龍)인데, 중국의 입김으로 쓰지 못하고, 꿩 대신 닭이라고 용(龍) 대신 나약한 봉황을 그 상징으로 삼아 지금까지 이어 쓰고 있으니, 참으로 안타까운 일이다.

 

  벽에 붙은 그림은 제주도를 그린 것 같다.

 

  본관 앞에 새겨 놓은 안내석

 

  본관 오른편 아래, 옛 청와대가 있었던 자리, 일제 때 조선 총독 관저,  미군정 시절에는 군정사령관 숙소, 이승만 때 경무대, 윤보선 대통령 때부터 청와대로 불렀다. 고려 시대 숙종 때부터 이궁(離宮)이 있었고, 조선조에는 경복궁 후원으로 수궁이 있었던 자리란다. 지금은 광장 주변에 간이 화장실과, 휴게소가 있다.

 

  대통령 가족들이 살던 관저로 가는 길

 

  관저의 정문 '인수문' 1990년 10월에 완공한 관저. 인수문이란 현판의 의미는 무엇일까. 어질게 오래 살란 뜻?  

 

  살림채

 

  관저 살림채 뒤꼍에서 창안으로 보이는 살림방들...

 

  관저 뒤꼍으로 한 바퀴 돌아 인수문 앞으로 나왔다.

 

  관저 앞 연못

 

연못을 끼고 왼편으로 계단을 따라, 오운정과 석조여래좌상을 보러 올라갔다.

 

  나무 계단 위의 오운정, 정자 안을 개방했으면 좋았을 텐데, 문을 꼭꼭 닫아 빛 좋은 개살구 꼴이었다.

 

  미남 불상으로 가는 길에서 보이는 남쪽 전경, 관저의 지붕과 멀리 남산과 관악산이 보였다. 

 

  미남불로 불리는 경주 석조여래좌상

 

  되돌아 내려가는 나무계단

 

  숲 사이로 보이는 관저 지붕

 

  계단 중간에서 보는 남쪽 풍경, 경복궁과 관악산이 보였다.

 

  다시 인수문 앞으로 내려와 언덕길 왼편에 있는 침류각으로 향했다.

 

  침류각, 1900년대 초 전통가옥, 경복궁 후원의 옛 부속 건물, 초가집도 한 채 있었다.

 

  녹지원과 상춘재

 

  상춘재, 국내외 귀빈에게 우리나라 전통가옥 양식을 소개하거나 의전행사, 비공식 회의를 하던 장소로 전두환 시절에 만들었다고 한다.

 

  춘추관, 대통령 기자회견 장소

 

  춘추관 왼쪽 샛길로 접어들어 청와대 담장을 끼고 백악정과 청와대 전망대로 향했다. 길이 가파르고 날씨가 더워 힘들었다. 길가엔 철책에 원형 철조망까지 올려져 있어 살벌하기도 했다. 예전에 백성들은 주택 담장 위에 도둑놈의 월담을 막는다고 날카로운 유리조각을 심었었지... 

 

  북악산 정상이 까까이 보였다.

 

  백악정 아래 코스모스 쉼터

 

  쉼터 앞 전경

 

  백악정, 대단한 정자인 줄 알았는데... 잠시 동안 가볍게 비나 눈을 피할 수 있을 간이 구조물이었다.

 

  백악정에서 청와대 전망대를 향해 갈지(之) 자 계단으로 오르며 남쪽으로 내려다보는 전경

 

  고도가 조금 높아지자, 청와대 앞 뜰과 경복궁 경내가 시야에 들어왔다.

 

  드디어 청와대 전망대

 

  청와대 전망대 앞 전경

 

  다시 되내려와 백악정 앞 코스모스 쉼터에서 잠시 쉬었다.

 

  코스모스 쉼터 아래 갈림길에서 칠궁 방향으로 동선을 잡고, 가파른 내리막길을 걸었다. 오른편으로 경복궁의 우백호인 인왕산이 뻗어 있다.

 

  뒤 돌아본 북악산 

 

  영빈관 앞에 있는 봉황 분수대

 

  입구에서 받은 청와대 안내도

 

  수년 전 헝가리 부타페스트를 여행할 때, 다뉴브 강 언덕 위에 있는 어부의 요새에 간 적이 있었다. 그 옆에 헝가리 대통령 관저가 있었는데, 관저 입구에 헝가리 국기 하나만 달랑 꽂혀 있을 뿐, 별다른 경호실이나 경호원들을 볼 수 없었다. 내각책임제이기 때문에 그렇다는 것이었는데, 쉽게 이해되지 않았다. 물론 우리 대통령의 목숨을 호시탐탐 노리는 북적의 소행 때문에 휴전선 인근 철책처럼 무지막지한 철조망을 겹겹이 쌓고, 청와대 경비를 삼엄하게 한 이유도 있었겠지만, 나랏돈으로 구중심처에 숨어 막강한 권력을 행사하며, 자신의 영달과 안위를 위해 거짖과 위선으로 국민들을 겁박한 것들에 대한 반성이 필요하겠다. 

 

  개인적 소견으론, 별로 볼 것도 없는 청와대가 그동안 무소불능의 권력의 상징으로 군림해왔던 작금의 현실이 안타깝다는 것이었다. 그러나, 한 편 국민들의 호기심만 자극하며 무주공산으로 전락한 청와대는 한스러운 공간이 되었고 아까운 국고만 낭비할 뿐이라는 것이다. 지금이라도 주인이 입주하여 우리나라를 한층 더 발전시키는 튼튼한 공관으로 제 역할을 다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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