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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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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이장군의 묘 조선초 풍운아 남이는 태종의 넷째 딸 정선공주의 손자였고 할아버지는 의산군 남휘였다. 아버지 남빈은 벼슬이 군수에 그쳤으나 장인이 세조의 총신 권람이었다. 남이는 왕가의 인척으로 권문세가에서 태어나 어려서부터 총명하여 궁궐에 출입할 때면 세종대왕으로부터 귀여움을 듬뿍 받으며 성장했다고 전한다. 남이는 총명하고 기개가 뛰어나 17세에 무과에 급제한 후, 25세에 이시애의 난을 평정하고 28세에 일약 병조판서가 되어 왕가를 지키는 든든한 종친세력이 되었다. 예종이 19세로 즉위하자 남이를 시기한 유자광일파가 모함하여, 28세에 역신으로 몰려 졸지에 능지처참되고, 집안은 풍비박산 거들나고 말았다. 1818년(순조 18년) 관작이 복원되고 충무 시호를 하사 받았다. 창녕의 구봉서원(龜峯書院), 서울용산의 용문사..
유관순 기념관 미세 먼지 때문에 망설이다 햇살이 퍼진 뒤에야 집을 나섰다. 봄날씨가 완연해서 차창을 열어도 전혀 춥지 않았다. 아우내에 도착했더니 때마침 장날이어서 어찌나 사람들이 많은지 주차할 곳이 마땅치 않아 한참을 뺑뺑이 돌았다. 유명하다는 병천 순대장터에서 순댓국으로 점심을 먹고, 장마당을 한 바퀴 돌았는데, 장터의 인심들이 넉넉해 보였다. 시골답게 농기구를 비롯해서 죽제품, 과일, 간식거리, 작업복 등등... 도시 재래장터보다 물건도 많고 사람들도 흥청거리는 느낌이었다. 울긋불긋한 천막들이 도열한 좁은 샛길 사이로 세월을 주름잡아 과거로 돌아선 분위기였다. 다만, 시골 5일장도 예전과 다른 공산품들과 수입 농산물들이 자리들을 차지하고 있어서 국제화된 시류를 외면할 수는 없나 보았다. 유관순 열사 기념관은 예전..
삼월의 방화수류정 양력 삼월 삼짇날이지만 음력 삼짇날 못지않게 날씨가 따뜻했다. 봄햇살에 철이른 상춘객들이 많아 도로마다 차가 밀렸다. 추울 줄 알고 입고나간 겨울 옷이 민망스러워 자동차 안에 벗어 놓고 방화수류정 주변을 걸었다. 봄맞이가 제일 즐거운 것은 어린이들이었다. 겨울잠자는 양서류처럼 겨우내 방 안에서 움츠리다 따뜻한 햇살을 만나니 바깥세상이 곧 놀이터인 셈이다. 할머니 엄마 손을 잡고 밖으로 나들이를 나온 어린이들 모습이 무척이나 행복스러워 보였다. 방화슈류정부근 달인에 나왔다는 탕수육집을 스마트 폰에 의지해서 겨우 찾아 갔더니, 예약이 많아 더 이상 손님을 받지 않는단다. 게으르게 하루하루를 임기응변으로 살아가는 나같은 사람은 평생을 TV에서 소개하는 맛집에서 식사는 못할 성 싶다. 줄서서 기다리는 노고도 싫..
정월 보름달 맑은 하늘 덕에 보름달을 볼 수 있으리라는 예보는 빗나갔다. 저녁 무렵부터 늦은 밤까지 구름 때문에 촬영을 포기했다. 이른 아침 창밖을 보니 구름 한 점 없는 맑은 서쪽 중천에 휘영청 보름달이 걸려 있었다. 떠오르는 보름달은 아니었지만, 맑은 하늘에 감사하며, 몇 컷 촬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