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斷想

謹弔

 

  20년 전인 1993년 10월 변산 앞바다 위도에서 서해페리호가 과적으로 침몰해서 292명이 사망했다. 위도에서 낚시를 즐기고 돌아오던 강태공들이 대부분이었다. 1994년 10월엔 한강의 성수대교가 무너져 다리 위를 달리던 자동차들이 강물에 추락하여 32 명이 사망했다. 이른 아침 통학 시간이라 통학하던 고등학생들이 대부분 희생되었다. 1995년 6월에는 강남의 삼풍 백화점이 무리하게 증축을 하다가 하중을 이기지 못하고 무너져 502명이 매몰되어 사망했다.  1999년 6월 경기도 화성군 궁평리 바닷가에 컨테이너를 쌓아 올려 만든 씨랜드에서 불이나 23명이 사망했는데, 이 가운데는 체험활동 중이던 유치원 어린이 19명이 부모 곁을 떠나 돌아올 수 없는 곳으로 떠나고 말았다.  2003년 2월 18일 대구 도시철도 1호선 중앙로역에서 방화로 열차에 불이 나서 2개 편성 12량의 전동차가 모두 불탔으며 192명 사망(186명 신원확인, 6명 신원확인 불가), 21명의 실종자와 151명의 부상자가 발생했다.  2010년 3월 16일 인천시 백령도 앞 해상에서 천안함이 두 동강이 나며 침몰하여 선미 쪽에 탔던 수병 40명이 사망했다. 공교롭게도 40명은 모두 의무복무병들인 졸병들로 침몰직후, 한 사람의 생존자도 구하지 못했다. 금년 2월 대학 신입생 행사가 진행 중이던 경주의 리조트 체육관이 무너져 그 안에서 신입생 오리엔테이션을 받던 대학생과 이벤트 회사 직원 등 10명이 숨졌다. 103명이 부상을 입었으며 이 가운데 2명은 중상으로 알려졌다.  4월 16일 인천제주 여객선 세월호 침몰 사고는 아직도 진행 중...

 

  오늘도 승객들을 태운 택시와 버스들이 네 거리에서 슬금슬금 눈치를 보다가 빨간 신호등을 무시하고 교차로를 건너간다. 운전자 홀로 운행하는 택시나 버스가 아니라 무수한 승객들이 타고 있는 대중교통수단임에도 승객들의 생명을 담보로 잡고 넓은 교차로를 건넌다. 버스 안에 승객들도 일상사로 여겨 대부분 암묵적으로 동의한 듯이 항의 한 번 하지 않는다. 입석이 금지된 고속도로에서 승객들을 가득 태운 시외버스들이 고속으로 질주하며 경우에 따라선 추월도 마다하지 않는다. 결박하지 않은 컨테이너를 싣고 질주하는 트레일러, 과적한 짐을 싣고 과속으로 달리며 승용하를 위협하는 덤프트럭...     

 

몇 백 원 아끼려고 규정된 볼트를 사용하지 않고 불량품을 사용하다 무너진 건물, 규정 이하의 철근으로 아파트를 짓는 건축업자. 원자력발전소에 불량부품을 사용하고 대금을 가로채는 업자들과 직원들, 고속전철 선로에 싸구려 불량전선을 사용했다는 건설업자. 급발진으로 목숨을 잃어도 자동차에 결함이 없다는 자동차 회사, 충돌해도 에어백이 터지지 않아 사망했는데도 내 잘못이 아니라는 자동차 회사와 그들을 감싸는 고위 공무원들...  불량 식자재로 눈앞의 이익을 추구하는 우리 이웃의 수많은 식당업주들까지...

 

  엄청난 국방비로 만들었다는 명품 무기들이 불량품으로 판정이 나서 사용하지 못한다는 뉴스들을 아무렇지도 않게 일상으로 들으며 오늘을 살아간다. 주택들과 인접한 대기업의 공장에서 불산깨스가 새나가도 주민들만 공포 속에서 안절부절 떨기만 할 뿐, 책임지는 사람 하나 없이 구렁이 담 넘듯 슬금슬금 잘도 넘어간다. 그런 것들은 그저 남의 일일 뿐, 나와는 거리가 먼 것으로 치부하며 관심조차 갖으려 하지 않는다.

 

  쓰레기 폐선을 타고 제주도를 다녀온 그 숱한 사람들은 얼마나 가슴을 쓸어내렸을까. 인천을 떠나며 선상에서 쏘아 올리는 폭죽을 보며, 아름다운 한 때를 간직하고자 했던 애꿎은 서민들이, 이제 막 피어나려는 어린 학생들이 산 채로 고통 속에 죽어갔다. 뒤집혀 넘어가는 흉물스러운 여객선을 눈앞에 두고 배안에 있던 그 순진한 생명들을 한 명도 살리지 못했다는 현실이 더욱 가슴 아프다. 해경이 와서, 헬리콥터가 도착해서 구조해주기만을 기다리며, 휴대폰을 생명줄로 여기고 살려주기만을 간절히 바랐던 그 많은 사람들의 원망 서린 눈길이 가슴을 친다.  폐선을 탔을 때 벌써 한 번 죽었고, 구조대들이 밖에서 요란을 떨면서 꺼내주지 못할 때 또 한 번 사망했다. 허위사실들을 과장해서 배포한 고위 관료들과 사실 확인 한 번 없이 앵무새로 국민들을 기만한 방송사들이 대한민국 국민들을 죽이고 짓밟았다.

 

  누구를 원망해야 하나. 누구를 탓해야 하나. 그저 팔자소관이라 치부하기엔 너무나 가슴 아프고 억울하지 않은가. 내가 죽고 내 자식들이 죽어가는 마당에 대한민국의 경제발전이 무슨 소용이 있고, 국민소득이 2만 불,  3만 불이 되면 무슨 소용이 있나. 우리는 여전히 짐짝이고 돈 빼먹은 사상누각 앞에 쪼그리고 앉은 가여운 서민들일뿐일 텐데... 이 땅에 태어나 이 땅의 국적으로만 살아갈 수밖에 없는 어찌할 수 없는 슬픔이 너무 가슴 아프다.

 

   언젠가 일어날 수밖에 없었던 이 사고로 돌아가신 가여운 넋들을 위로하며, 삼가 명복을 빕니다. 부디 이다음 세상엔 좋은 나라에 환생하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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