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국내여행

도담삼봉

  영월읍에서 하룻밤을 자고 단양으로 향했다. 요즘 드라마 "정도전"에 흠뻑 빠져 조선개국공신인 그의 기반이었던 도담삼봉 때문이었다. 정도전(鄭道傳, 1342∼1398)은 이성계를 도와 고려를 무너뜨리고 조선왕조를 세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성계의 세자책봉을 지지한 탓에 이방원(태종)에게 숙청되었다. 오히려 조선 왕조 내내, 고려를 지지하던 정몽주보다도 못한 대접을 받다가 왕조의 말미인 고종 때에서야 신원되었다는 것은 역사의 아이러니가 아닐 수 없다. 방원의 입장에서는 죽 쒀서 개를 줄 수 없듯이, 아버지를 도와 창업한 왕조가 정도전 때문에 이복동생에게 넘어가는 것을 도저히 용납할 수 없는 일이었을 것이다. 그러고 보면, 수많은 고려의 충신들을 살해하고 새 왕조의 주인이 된 이성계 역시, 다섯째 아들 방원에게 죽임을 당한 강비 소생 두 아들을 눈앞에서 볼 수밖에 없었는데, 그 역시 인간으로서 참을 수 없는 피눈물을 쏟았을 것이니, 성공한 쿠데타의 주인공으로서 너무나 슬픈 운명을 지닌 비극적 인물이었다.

 

  정도전의 집안은 본래 봉화 지역의 향리였는데, 고려시대까지 향리는 조선의 향리와는 달리, 지방의 토착세력이었단다. 그의 어머니는 노비로 알려져 있다. 관직생활을 하는 동안, 미천한 출신 성분 때문에 갈등도 많았다고 한다. 정도전의 호가 삼봉(三峯)인데, 이는 어린 시절 그가 좋아했던 도담삼봉에서 따온 것이라 한다. 도담삼봉(島潭三峯)은 남한강이 유유히 흐르는 한가운데 높이 6m의 늠름한 장군봉(남편봉)을 중심으로 왼쪽에는 첩봉(딸봉)과 오른쪽의 얌전하게 돌아앉은 처봉(아들봉) 등 세 봉우리가 물 위에 솟아있다. 삼봉은 원래 강원도 정선군의 삼봉산이 홍수 때 떠내려와 지금의 도담삼봉이 되었으며, 그 이후 매년 단양에서는 정선군에 세금을 내고 있었는데 어린 소년 정도전이 '우리가 삼봉을 정선에서 떠 내려오라 한 것도 아니요, 오히려 물길을 막아 피해를 보고 있어 아무 소용이 없는 봉우리에 세금을 낼 이유가 없으니 필요하면 도로 가져가라'고 한 뒤부터 세금을 내지 않게 되었다는 이야기가 전해지고 있다.

 

  도담삼봉 앞에 주차장이 넓게 자리 잡고 있었다. 주변의 시설물들에도 신경을 많이 쓴 듯, 아름답게 정비되어 있었다. 한 때, 충주댐이 들어선 뒤, 수몰된다고 했는데, 남한강을 따라 뻗어간 도로의 교각들과 고층 건물들이 그간 세월의 흐름을 보여주고 있었을 뿐, 뾰족뾰족한 삼봉의 모습과 정자는 옛 모습 그대로 의연히 그 자리를 지키고 있었다. 

 

 

  인터넷 검색 중 발견한 사진, 훼손되지 않은 주변의 경관과 잘 어울리는 그야말로 한국적인 아름다움을 느끼게 한다. 허락받지 않은 사진이라 죄송......

 

석문으로 가는 도중, 산 위의 정자 옆 벼랑에서 내려본 도담 삼봉, 남한강을 따라 산자락에 세운 도로의 교각들이 흉물스러워 보였다. 

 

무지개 모양의 바위문

'국내여행' 카테고리의 다른 글

청풍문화재단지  (2) 2014.05.14
단양 장회나루  (2) 2014.05.13
영월 풍경  (4) 2014.05.11
공세리 성당  (2) 2014.03.31
만리포 해변  (4) 2014.01.1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