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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내여행

서거차도 일기 8

  일찍 잠든 탓으로 새벽 닭소리에 잠에서 깼다. 밖에 나가보니 아직 밝지 않았는데, 항만의 불빛만 가물거린다. 방안에 들어왔다가 다시 나갔더니 망망한 바다를 타고 올라온 해무가 지네처럼 엎드려 기어가고 있었다. 멀리 동편 하늘이 밝아오고.... 내륙엔 폭염과 가뭄이 극성이라는데, 이곳도 아침 안개 덕분에 제법 뜨거운 하루가 되리라 예상해 보았다. 그러나, 한낮이 되어도 뜨겁지 않았다. 하늘도 쾌청하지 않았고...  간간이 지나가는 구름 덕에 하늘의 색깔이 변화무쌍하기만 했다. 

 

  하릴없어 섬의 이곳저곳을 이리저리 걸어다녔다. 걸어서 움직이는 건 부두 광장을 가로질러 어슬렁거리는 고양이와 교회의 흰둥이, 그리고 우리 뿐이었다. 서쪽 해안으로 갔다가 성과가 없어 라면만 끓여 먹고 돌아와서 다시 북동쪽해안으로 가서 낚시를 던졌으나, 낚시만 끊어먹곤 소득이 별로였다. 다행이도 섭섭하지 말라고 용왕님이 베푸셨는지, 손바닥만한 우럭 하나가 올라왔다. 항만에 나가 소요하다가 저물무렵 동북해안에서 통발을 올리니 속이 꽉 찬 숫게 한 마리와 중간 크기의 문어 한 마리가 따라왔다. 바다는 우리에게 풍요를 주시는 법이 없었다. 언제나 그저 한두 마리...저녁 먹을 만큼의 찬거리를 올려 주셨다. 많이 먹진 못했어도 사방이 비린내로 가득했다. 배낭도 옷에서도 장갑에서도, 저녁먹은 그릇에서도, 칼과 도마에서도, 심지어 카메라에서도...이러다가 사진에서까지 비릿내가 풍기지 않을지 모르겠다. 

 

 날마다 통발을 건질 때마다 기대감이 큰데, 바다는 실망하지 않을 정도로 조금씩 소량만 공급해주었다. 그마저 없었다면 반찬없는 맨밥을 된장이나 고추장 반찬삼아 먹어야만 했을 것이다.  다른 반찬 없이 생선회를 상추에 싸먹는 식사 하나만으로도 내륙에서 누리지 못하는 호사라 여기며 그저 웃을 수 있었다.

 

이른 아침 서거차마을을 기어가는 안개

 

  흐린 날씨, 태초부터 파도와 싸워온 해안의 바위는 날카로우며 사나웠다.

 

발려먹은 생선 뼈처럼 말라죽어가는 서거차도 소나무...

 

  우리를 보고도 도망치지도 않고 고개를 세운 채, 디오게네스처럼 일광욕을 즐기던 까치독사... 단매로 다스리고 싶었지만, 그 태도가 하도 당당해서 알렉산더처럼 무안해서 조용히 비켜주었다.

 

북동쪽 해안의 다도해

 

서거차항 등대

 

동거차도와 병풍도

 

상하죽도

 

바람에 날려 바위틈에 박힌 작은 잡초씨 하나가 바위를 쪼개기도 한다. 

 

 통발 속에 얌전히 앉은 게 한마리...

 

  문어 동생도 한 마리... 

 

 운 없어서 횡사한 녀석들...짜릿하고 팽팽한 손맛을 보여주었다... 

 

 씨알 굵은 우럭, 세찬 조류 속에서 단련된 근육질의 단단한 놈들이었다.

 

  이곳에서 처음 본 민어... 이직 덜 자란 놈이라는데 그 크기가 장난이 아닌 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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