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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내여행

서거차도 일기 7

  어김없이 또 하루 섬의 일상은 아침이 밝으면서 어제처럼 반복되며 시작된다. 어제 그 사람이 오늘 또 내 곁에 있고 어제의 일이 또 오늘의 일이다. 단 날씨만 바뀌지 않는다면... 때로는 내륙에 출타하기도 하며 힘들게 찾아왔던 친지들도 힘들게 이곳을 떠나간다. 정기항로는 하루 한 번 진도 팽목에서 떠나는 9시 50분 연락선이 12시 50분경 들어왔다 나간다. 그 외에는 지나가는 연락선에 미리 전화로 연락해서 입항하도록 요청해서 배를 타고 떠나간다. 떠나간 사람은 몰라도 남아있는 사람은 한동안 그만큼의 공허함을 안고 살아가야 할 터이다.

 

  좁은 섬 주변을 쳇바퀴 돌듯, 뺑뺑 돌고 나니, 벌써 무료해진다. 동네의 개들도 이미 낯이 익숙해진 듯 가까이 다가가도 이젠 쳐다보지도 않는다. 처음 영악스럽게 짖어대던 교회의 흰둥이는 이제 멀리서 보기만 해도 반갑게 뛰어든다. 낚시도 기대만큼 잘 되는 것도 아니고, 해안에 던져놓은 통발의 수확도 그리 크지 않다. 낚시를 던지고 세월을 낚았다는 강태공 같은 기다림은 인내하기 힘들다. 낚시에도 물때가 있어 아무 때나 물고기를 낚을 수 있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기다려야 한다. 항만에 정박해 있는 몇 척의 고기잡이 배들도 늘 그렇게 때를 맞춰 나갔다 들어온다. 

 

  주로 수도권과 서남부 지방에 창궐해서 맹위를 떨치고 있는 메르스는 이곳에 없다. 이곳에도 인근의 아무개가 서울 무슨 병원에 다녀왔다는 이야기에 긴장감이 돌기도 했지만 세찬 바람과 파도, 빠르게 흐르는 조수가 중동의 썩은 사막바람을 쉽게 허용할 듯싶지는 않다. 폭염이 몰아친다는 내륙의 뉴스도 머나먼 남의 얘기로 들린다. 한낮엔 햇살만 따가울 뿐, 조석으로 서늘해서 긴팔을 입고 지낸다. 한밤중엔 추워서 요를 꼭 덮고 자야 할 만큼 기온이 낮다.

 

  특이한 것은 내륙에서 흔히 볼 수 있는 나무들이 이 섬에는 없다는 것이다. 흔하디 흔한 아카시아도, 밤나무도 존재하지 않는다. 과일나무라곤 무화과밖에는 볼 수 없다.  바람이 세서 열매를 달고 살 수 없단다. 사람들도  파도와 바람이 너무 세서 성장한 자식들을 슬하에 달고 살 수 없나 보다. 초등학교를 졸업하면 그때부터 파도와 바람을 떠나 내륙의 어느 곳에서 삶의 터전을 마련한다. 되돌아오는 그리움만 가득 안고서...  그래서  젊은이 없는 섬의 대부분의 밭들은 묵밭이다. 얼마 되지 않은 논과 밭에는 잡초만 무성하다. 사람들이 많지 않으니, 농사일이 활성화되지 않는다. 고향을 지키는 연로한 노인들만이 그들의 기력만큼만 집뒤의  텃밭을 가꾸는 것으로 만족할 수밖에...      

 

  이른 아침 서거차마을과 항만

 

 이른 아침 내륙으로 나가는 사람들. 전화요청으로 인근으로 지나가는 배를 불러서 타고 나간다. 육지로 나가는 이곳의 특산품들도 작게 포장되어 택배로 나간다.

 

  같이 왔던 친구가 떠났다. 배를 타기 전 이곳 주민들에게 들은 바로는 물이 빠져 조도로 가지 못하리라 한다. 이배의 최종 목적지는 목포란다. 그래서 아예 목포여객선 터미널로 직항하는 게 나을 것이라고도 했는데, 8시간이 소요된단다. 친구는 어찌할까 망설이다 상황에 따라 대응하기로 하고 오전 7시 30분경 배를 탔다. 연락선을 탄 사람은 친구 포함해서 두 명, 한분은 이곳 주민으로 아예 목포까지 이 배를 타고 가신다고 한다. 목포까지 장장 8시간을 항해하는 것인데, 그 편이 차라리 편타고 하셨다.

 

  뱃전에 선 친구를 바라보려니 괜시리 울컥해졌다. 당장 함께 떠나고 싶은 마음까지 일었다. 그러고 보면 이별의 상황에선 남아있는 사람보다 떠나는 사람의 마음이 가벼울 거란 생각이 들었다. 내 생각이 이럴진대, 이곳에 사는 주민들의 마음은 얼마나 안타까울 것인가. 늘 육지에 그리움만 두고 살아가고 있는 건 아닐지... 

 

  한동안 떠나가는 배를 물끄러미 바라보다 돌아섰다.

 

  다시 서거차마을로 들어서니 아침햇살이 어제 그제처럼 변함없이 넓게 퍼지고 있었다.,

 

  오후에 해안에 나갔더니, 물이 빠져 있었다. 물속에 잠겨있던 갯바위들이 드러나자, 푸른 해조류들이 모습을 보였다.

 

  물가에 나왔다가 되돌아가는 물고기,  커다란 물고기들이 오후 햇살을 받으며, 수면 위로 펄쩍펄쩍 뛰어올랐다. 그러나, 낚시로 한 마리도 낚지 못했다. 대신 고동과 버말, 거북손들을 채취해서 저녁 반찬으로 삼았다.

 

  서거차도와 상죽도의 좁은 해협으로 힘차게 흐르는 조류, 해협 사이로 보이는 섬은 관매도인데, 이곳에서 보면 영락없는 악어의 모습이다.

 

  병풍도 방향으로 힘차게 빠져나가는 물살

 

  떠나간 친구에게서 연락이 왔다. 이웃섬들을 거치지 않고 곧장 조도로 들어가, 팽목가는 배와 쉽게 연결되어 예상보다 빨리 목포에 갔단다. 목포부턴 KTX를 타고 집으로 갈 것이라고... 목포에서 서울까진 두 시간 반 거린데, 지척거리 목포까지 나가기가 그리 힘들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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