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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내여행

서거차도 일기 4

 아침에 눈을 뜨자마자 창문을 열고 밖을 보니 비가 내리고 있었다. 어제 예보에는 9시부터 12시 사이에 내린다더니, 이른 아침부터 비가 내렸다. 조바심에 예보를 찾아보니 고맙게도 오전 9시 이전에 비가 그친단다. 오히려 잘 된 일이었다. 강수량도 5mm 정도이고, 오늘은 물때가 좋아 입질을 맛볼 수 있으리란다. 간간이 빗방울이 떨어지긴 했으나 신통하게도 9시 넘어 비가 그쳤다. 낚싯대와 취사도구를 챙긴 후, 대웅이 아빠 봉고트럭을 타고 서거차 서쪽 끝지점인 커크래 해변으로 갔다. 커그래는 모래미 동네입구를 지나 해안의 비포장 도로 끝 지점에서 작은 고개 하나를 넘어, 거북처럼 생긴 섬 뒤의 바닷가에 있었다. 우리가 산 위에서 조망했던 거북 모양의 섬은 건너새끼섬으로 서거차도에서 통한의 맹골수로를 바라보며 헤엄치듯 아련히 떠있었다. 낚시의 성패는 포인트일진대, 서거차도의 속성을 모르는 우리들에게 토박이인 대웅이 아빠와 30대 초반처럼 젊어 보이는 용남씨의 조언은 역시 신의 한 수였다.

 

  커크래 바위 위에서 검푸른 파도를 보며 낚시를 시작했는데, 시작부터 입질이 좋았다. 낚시를 담그자마자 입질이 오더니 노래미가 낚여 나왔다. 팽팽한 낚싯줄을 통해 전해지는 노래미의 몸부림이 전기 통하듯 짜릿하게 느껴졌다. 억세게도 재수 없는 노래미었을 터였다. 청정한 서해에서 맹골수로의 힘찬 물살을 온몸으로 받아내던 녀석이었겠다. 바위 틈새를 휘감아 치는 파도를 바라보며, 수려한 서거차의 풍경 속에서 그렇게 낚시를 했다. 의외로 입질이 좋아 노래미만 다섯 마리를 낚았다.

 

  한낮이 다 되어 커크래 바위 위에서 점심을 준비했다. 우리가 있던 바위 건너편 벼랑으로 건너갔던 대웅이 아빠는 월척이 넘는 우럭과 노래미 10수를 낚아왔다. 섬의 곳곳에서 성장하고 바다와 바람과 파도와 한마음으로 소통할 수 있는 섬주민의 능력은 진실로 놀라운 것이었다. 낚시엔 문외한이지만 어쩌다 낚시 채널에서 보는, 화려한 복장을 한 프로 낚시꾼들도 비교할 수 없는 그 이상 낚시꾼들이었다. 게다가 젊은 오빠 용남씨의 화려한 요리 솜씨도 그의 농담 이상으로 구수하고 걸쭉했다. 대웅 아빠가 잡아온 씨알 굵은 생선 두 마리로 회를 치고 가져간 삼겹살을 구웠는데, 회 뜨는 솜씨가 일식집 주방장 이상이어서 집어드는 한 점 한 점 회 조각마다 감칠맛 났다.

 

 흐렸던 하늘이 점차로 맑아지면서 햇볕이 나기 시작했다. 시원한 바닷바람과, 바위를 때리는 파도소리만 있어도 성찬이었을 텐데, 힘찬 맹골수로를 극복하며 단련해 왔을 물고기들의 단단한 육질은 최상의 맛이었다. 용남씨에 의하면 동해 물고기는 이곳 생선의 육질을 따르지 못한다고 한다. 특히 서거차도 부근의 생선들은 거센 조류에 단련되었기 때문에 최고의 육질을 자랑한다고 한다. 그뿐 아니라 이곳에서 생산되는 미역과 김은 양식이 아닌 자연산이기 때문에 무공해 청정 식품으로 맛이 좋아 최고의 상품으로 평가받는다. 자연산이라 생산량이 한정돼 있어서 목포나 광주 지역에서 전량 소비되기 때문에 수도권 일대에서는 구경할 수조차 없다고 한다.

 

  아무튼 육질 단단한 회를 먹고, 삼겹살과 바위에서 채취한 배말을 구워 먹었다. 따개비처럼 생긴 배말은 여기서 처음 보는 것인데 삼겹살 기름에 구워내면 껍질과 속이 자연 분리되어 먹기에도 좋았다. 거기에다 코펠에 채취한 배말과 게를 넣고 팔팔 끓인 뒤, 그 육수에 라면을 넣었는데, 어디에서 먹어보지 못한 최고의 맛이었다. 시중 분식집에서 먹는 라면이 3000원이라면 그 열 배 정도는 돼야 그 값이 적당할 것 같다. 바닷가에선 취사도구 하나만 있으면 민생고가 저절로 해결되다는 용남씨의 말대로 이곳 바닷가는 그야말로 풍요로운 세상이었다. 이 풍요로운 낙도(樂島)에 인구가 점차 줄어드는 것은 현대 산업문명사회의 역설이기도 하다.  

 

 서거차도 서쪽 끝의 건너새끼섬, 섬 너머가 맹골도리

 

커크래 해안에서 바라보는 건너새끼섬과 맹골도

 

커크래해안

 

해안 바위 끝지점에서 낚시를 시작했다.

 

건너편 벼랑에서 낚시하던 대웅이 아빠

 

대웅이 아빠의 조획량

 

 삼겹살과 배말구이 

 

배말과 게로 육수를 내어 끓인 라면, 최상의 맛이었다.

 

날씨가 점차 맑아져서 푸른 하늘이 보이기 시작했다.

 

병풍도, 세월호의 안타까움이 각인되어서인지 자꾸만 바라보게 되었다. 병풍도는 서거차도 남쪽에 있어서 주민들이 사는 거차도 남쪽 어디서나 보였다.

 

길가에서 흔하게 볼 수 있는 야생  방풍나물

 

야생 잔대

 

건너새끼섬과 맹골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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