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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내여행

서거차도 일기 5

  넓지 않은 섬이라 동쪽 끝 산등성이로 걸어서 갔다. 우리가 통발을 놓던 동남쪽 해안에서 빤히 보이는 동쪽 산등성이까지는 그리 멀지 않았다. 다만 이곳 대부분의 산길이 그렇지만 사람들의 통행이 거의 없어 도로의 흔적만 남아 있기 때문에 우거진 잡초 사이를 헤치고 걸어야 했다. 조심스러운 것은 곳곳에 살모사나 까치 독사들이 서식하고 있어 까딱하면 물릴 수 있다는 것이었다. 그렇다고 섬주민들처럼 장화 신고 산을 오를 수 없는 일이어서 각별히 조심해야 했다. 동쪽 끝 산 위에서 바라보는 바다는 망망한 수평선 위에 크고 작은 무수한 섬들을 띄우고 있었다. 해무 때문에 시계는 그리 좋지 않았지만 올망졸망 떠있는 검푸른 섬들의 풍경은 아름다웠다. 지도를 보며 익힌 섬이 눈앞의 상죽도와 동거차도, 감투 두 개가 산 꼭대기에 얹혀있는 듯한 섬이 관매도, 그 옆의 대마도 정도인데...  그나마 제대로 짚었는지는 내 자신도 확실하진 않지만 나름대로 짐작해 보았다. 산 정상 아래 동쪽 해안은 깎아지른 벼랑이었다. 수십 길 아찔한 절벽 아래로 시퍼런 파도가 들이치곤 했다. 더 이상 앞으로 갈 수도 없는 처지라 돌아서 내려오다가 산구비 길바닥에 딱 붙어있는 까치독사를 만났다. 순간 등골이 오싹하니 소름이 돋았는데, 녀석도 놀란 듯 고개를 빠짝 들고 미동도 안한채 쳐다보고 있다가 카메라들 들이대자 잽싸게 풀숲으로 도망치고 말았다. 뱀은 참으로 징그런 동물이다. 얼마나 미웠으면 이브를 꼬여내던 사탄으로 묘사했을까... 인간의 원죄를 불러온 무섭고도 징그러운 녀석이다.

 

  따가운 햇살을 한 몸에 받으며, 다시 거차도 항만으로 내려와 항만을 품은 거차마을을 한 바퀴 돌았다. 한 바퀴 돈다고 해야 이삼십 분 정도... 항만에 바로 붙어 오른쪽 한 켠에 해양경찰 출장소, 보건진료소, 복지회관이 있다. 작년 세월호 참사 때 구조되었던 생존자 80여 명이 이곳 복지회관에 잠깐 머물다 후송되었다고 전한다. 해양경찰서 측면에 서거차마을 표지석이 넓은 광장을 외롭게 지키고 섰으며, 부두의 넓은 광장 뒤편으로 정자가 있고 그 뒤에 서거차항 준공기념비가 잡초 속에 서있다.  그 뒤에 비로소 민가들이 항만의 넓이만큼 부두를 바라보며 약간 휘어진 곡선으로 도열해 있다. 왼쪽 산 아래 갈림길이 있는데, 오른쪽이 거차마을로 들어가는 진입로이다. 이 길목에 행정기관인 진도군 조도면 출장소가 마을주민들의 일반행정을 돕고 있다. 그 길을 따라 조금 더 가면 서거차발전소가 있고 그 맞은편이 서거차마을이다. 마을의 맨 위쪽에는 저수지가 있어서 이곳 주민들의 생활식수를 공급하고 있다. 마을 토박이 용남씨가 말해준 섬 북쪽 한반도 지형과 사자바위를 찾으러 나섰다가 산 아래에서 길을 못 찾고 헤매다 되돌아오고 말았다.

 

  햇살은 따가운데도 웬만해선 땀이 흐르지 않았다. 염분 탓으로 조금은 끈적하며 비릿한 해풍이 늘 불고 있어서 응달에만 들어서면 언제나 시원하다. 아침저녁으로는 기온이 떨어져 추위를 많이 타는 나는 긴팔셔츠를 입어야 했다. 한여름이라도 날씨가 서늘해서 그 여름이 언제 찾아왔다 가는지 눈치챌 사이도 없다고 전한다. 여름에는 농어가 몰려들고, 가을에는 학꽁치 떼가 부두에 가득 찾아든다. 씨알 굵은 농어를 혼자서 하루 100마리 낚는 것은 일도 아니라는 거차도 낚시꾼들의 입담에 기대어, 육지의 낚시꾼도도 이때를 한 번 노려볼 만하겠다. 겨울에도 춥지 않아 열대식물이 자란다.  이만하면 살기 좋고 힐링하기 좋은 최상의 낙도(樂島)가 아닐는지...

 

 서거차도 동쪽으로 가는 도로에서 바라보는 해안과 멀리 흐릿하게 보이는 섬이 병풍도. 오른편이 서거차도 왼편이 죽도, 서거차에서 생산된 전기가 상하죽도를 통과하여 동거차도로 간다.

 

서거차 동쪽 끝 등성이로 오르며 뒤돌아 본 서거차도 멀리 고압선 철주 너머로  맹골도가 보인다. 왼편이 서거차 동쪽의 상죽도다.

 

동쪽 산정에서 바라보는 동거차도, 멀리 해무 위에 떠있는 섬이 관매도.

 

서거차도 동쪽 벼랑 중턱에도 하얀 등대가 있었다.

 

 왼편 큰 섬이 대마도 그 옆의 큰 섬이 관매도 오른편 귀퉁이 섬이 동거차도.

 

 대마도와 관매도, 다도해의 많은 섬 가운데 아는 것이 요것뿐이라 그저 아쉽다.

 

길가에 여기저기 흐드러지게 핀 무우 꽃. 무꽃이 이리 예쁜 줄 미처 몰랐다.

 

산딸기가 아닌 참딸기. 붉게 익어 달콤함이 복분자 이상이었다.

 

담쟁이가 소나무를 온통 휘감아, 말라죽이고 있다. 여기 소나무는 담쟁이에, 제선충에 마냥 대책 없이 고사하고 있었다. 명색이 국립공원인데 그 많은 소나무들의 고사를 방관만 하고 있으니...

 

 산에서 서거차항으로 내려오며, 거차항 부근 산길에서 바라본 마을 전경. 왼 편이 서거차항 마을, 오른편 산 아래가 거차분교, 가운데가 서거차 웃마을, 가운데 산 아래 제방 너머가 상수도 공급원인 저수지이다.

 

다시 서거차항만으로 내려왔다. 부두 한 켠의  보건진료소와 해양경찰지소

 

보건진료소 곁의 어민 복지회관

 

한낮 텅 빈 부두 광장에 고양이 한 마리만 어슬렁거리고 있었다. 가운데 정자와 항구준공기념비. 모든 것이 한낮의 태양 아래 정적에 빠져 있었다.

 

서거차항 준공기념비

 

항만을 바라보고 일직선으로 도열한 주택들, 주택 전면은 항만으로부터 불어오는 바람을 막는 방풍림이 성채처럼 버티고 있었다.

 

거차마을로 들어가는 길목에 있는 진도군 조도면 거차출장소

 

  서거차 발전소, 생산한 전기를 서거차도와 상하죽도, 동거차도에 공급한다.

 

서거차 웃마을

 

마을 속의 폐가

 

항만을 바라보고 있는 아랫마을, 빨간 지붕은 서거차중앙교회

 

 방목 중인 염소, 해조류도 뜯어먹기 때문에 최고급 육질을 지녔다고 한다. 개중에는 탈출해서 지들만의 가정을 꾸리는 놈들도 있단다.

 

서거차 웃마을. 마을 위에 상수도원인 저수지 제방이 있다. 저수지 안에는 샘물이 나와서 사시사철 물이 마르지 않는다고 한다.

 

다시 서거차항, 좁은 지역이라 다람쥐 쳇바퀴 돌리듯 항만 주위만 맴돈다. 도시로 치면 모든 편의 시설들이 밀집해 있는 중심센터 격이다.

 

  해진 뒤의 서거차항, 보름달이 밝았다. 밝은 하늘 가운데엔 별이 총총 박혔다.

 

항만의 주택들, 보름달이 휘영청 밝은 가운데, 검푸른 하늘엔 별들이 총총하고 숲에선 반딧불들이 짝을 찾아 춤추고 있었다. 이따금 개 짖는 소리가 간간이 들릴 뿐 모든 것이 정적 속에 빠져있는 듯, 시간도 멈춰버린 듯싶다.

 

  1960-70년대 섬의 전성기를 뒤로하고 현재는 50여 호 100여 명의 주민들이 모여산다는 서거차도. 항만이 넓고 남쪽을 향한 평지가 발달해 있어서 사람살기에 좋은 천혜적 조건을 갖고 있다. 한 때 물고기가 많이 잡힐 땐, 부둣가에 파시가 형성되었고, 해군 기지가 들어섰을 때는 술집과 다방까지 있어서 제법 흥청거리는 풍경도 있었다고 전한다. 어획량이 줄고 해군기지가 철수하자, 사람들도 썰물처럼 빠져나가 소수의 사람들만이 사는 작은 섬이 돼버렸다. 학교도 1943년 보통학교가 설립되었었는데, 현재는 어린이 3명만이 학생인 분교로 전락하고 말았다. 교통과 생활의 불편 때문에 초등학교를 졸업하면 목포나 광주로 유학하기에 저절로 섬은 공동화되고 주민들은 고령화 돼간다. 한 번 떠난 사람들은 쉬 돌아오지 않는 것은 이곳도 마찬가지이다. 섬의 특산물로는 미역과 김 정도인데, 섬 안에 두 곳의 미역 작업장이 미역생산을 도맡아 생산하고 있다. 고기잡이하는 집도 두어 집 정도이고, 대부분의 논과 밭은 경작하지 않아 휴경지로 잡초만 무성하게 자라고 있다. 육지의 전기가 들어오지 않기 때문에 서거차도에 발전소를 두고 전기를 생산하여 동거차도까지 보낸다. 예전엔 서거차도에 주민들이 많았으나, 요즘엔 역전되어 동거차도에 약 150여 호 주민들이 어업에 종사하며 살고 있다. 동거차도는 대부분 돌섬이어서 삶의 환경은 서서차도만큼 좋지 않으나, 인근에 어장이 발달되어 있어 어업에 종사하는 사람들이 많은 까닭이라고 한다. 아무튼 진도 팽목항에서 25Km 밖의 거리임에도 세 시간여 소요되는 교통환경이 아름다운 이 섬을 더욱 고립시키고 있는 것이다. 파고가 높아도, 안개가 끼어도 연락선들이 움직이지 않기 때문에 소외감감이 더 커진다.

 

  향후 해상 교통이 개선되고 해양 레저산업이 발전한다면 이 서거차항은 다도해 해상국립공원을 아우르는 천혜의 수상공원이 될 수 있을 것이다. 드넓은 항만에 요트들이 들어서고 청정지역인 이곳에서 육지의 손님들이 편안하게 휴양하며 힐링할 수 있다면 예전의 활기를 되찾을 것이고, 서거차도는 많은 사람들이 선호하는 살기 좋은 섬으로 변모할 수 있을 것이다. 국민소득 삼만 불 이상이면 해양레저산업이 발달해서 요트 인구가 확산된다는데, 이 서거차도가 바로 그런 레저활동의 최적의 섬이 아닐까 나름 생각해 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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