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촉사 은진미륵, 국민학교 시절에 배웠던 불상이었다. 부여에서 가까운 거리인 논산에 있음에도 그동안 찾아보지 못했었다. 관촉사는 국도 곁, 작은 산 중턱에 있어서 쉽게 찾을 수 있었다. 그 유명한 은진미륵 입상은 야트막한 야산 중턱에 공장 굴뚝처럼 우뚝 솟아 있어서, 쉽게 알아볼 수 있었다. 가는 비가 부슬부슬 내리는 가운데 관촉사 경내 주차장에서 계단을 올라 우뚝 마주친 미륵상은 첫눈에도 범상치 않았다. 커다란 입상의 미륵상은 인체구조와 달리 얼굴과 머리가 특히 과장된 모습이었는데, 큰 얼굴엔 화장한 듯 눈이 그려지고 입술엔 흐리지만 검붉은 색이 칠해져 있었다. 그리고 몸통보다도 더 긴 이단의 머리, 그 위에 쓴 팔각형의 관과 이층 구조의 사각 보관도 보통 미륵상과 매우 다른 특이한 모습이었다.
절집들을 둘러싼 산자락이 높지 않은 야산임에도 기암들이 병풍처럼 둘러 있고, 구불구불 뒤틀어진 장송들이 그 뒤를 받치고 있는 등, 뛰어난 산세를 보이고 있었다. 법당은 북동향이었는데 대웅전이 아니라 대광명전 현판을 단 이층 누각으로 크고 화려하진 않았지만 기품이 있어 보였다.
미륵상은 38년간의 불사로, 높이 18.1m, 둘레 11m , 귀의 길이만 해도 3.3m에 이르는 동양 최대의 불상이 1006년(고려 목종)에 완성되었다. 그때 미륵부처님의 미간의 백호 수정(水晶)에서 찬란한 빛이 나와, 중국 宋나라까지 뻗쳤는데, 송나라 지안(智安)이라는 고승이 그 빛을 따라 이곳까지 찾아와 배례한 뒤 "마치 촛불을 보는 것 같이 미륵이 빛난다"라고 하면서 사찰 이름을 관촉사(灌燭寺)라고 하였다고 한다. '은진'이란 미륵 앞의 수식어는 과거 논산의 행정지명이었다.
석등과 미륵상, 미륵상은 화강암 반석 위에 허리 아랫부분, 상체와 머리 부분을 각각 하나의 돌로 조각하여 연결하였다. 머리에는 구름무늬 같은 머리카락이 조각되었고, 관은 8 각형으로 깎았다. 그 위에 2중의 보관을 올리고 관의 네 귀에는 청동제 풍경을 달았다. 얼굴은 이마가 좁고 턱이 넓은 역제형(사다리꼴)으로 눈이 옆으로 길게 돌아갔고 코, 입, 귀는 모두 크다. 목이 굵고 귀는 어깨까지 내려오며, 좁은 어깨에는 법의가 걸쳐져 있고, 양손은 가슴까지 들어 올려 한 손에는 연꽃가지를 들고 있고 왼손은 엄지와 중지를 맞대고 있다.
대광명전, 광명전의 방향이 북동향이었다. 산세에 따라 어쩔 수 없었던 모양이다.
오른쪽부터 미륵전, 계단 위의 삼성각, 왼쪽의 명부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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