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斷想

가을 산책

  올해 단풍은 질기고도 질기다.  가을비가 그렇게 내리고, 강풍이 불어도 꿋꿋하게 정열을 불사르고 있으니 말이다.  서울에 첫눈이 내렸다는데도 곱게 물든 단풍의 뜨거움은 식을 줄 모르니 참으로 대단하다.

  홀로 동네 뒷산길을 걸으며, 한 해를 돌아보니, 참으로 세월이 빠르기도 하다. 이루어 놓은 것 없이 한 해가 훌쩍 지나간다. 학교에 다니는 아이들이라면 커가는 키높이에 비례해서 지식으로 뿌듯해지는 자신의 모습에 성장이 대견스러울 터인데, 이제는 거울을 들여다볼 때마다 주름살만 더해가니, 이른바 인생계급장만 높아져 유수 같은 세월이 그저 야속하기만 하다. 세월 탓으로 위눈꺼풀이 늘어지고 쳐져서 속눈썹이 각막을 찌르는 고통 때문에 보름 전쯤에 눈썹수술을 감행했다.  그동안 10여 년을 참으며 버텨왔었는데, 더 이상 감내할 자신이 없었다.  속눈썹이 각막을 찌를 때마다 안과에 가서 찌르는 눈썹들을 뽑고 나면, 그것도 그때뿐, 한 달이 지나면 눈썹이 다시 자라 각막을 찌르니, 미칠 지경이었다. 병원에 가는 것이 싫어서 눈썹을 찌를 때마다 막내 보고 뽑아달라고 하며 지금까지 버텨왔는데, 한 달에 한 번씩 그 고통을 더 이상 감내할 수 없었다. 노무현 대통령 재임시절, 쌍꺼풀 수술이 언론에 회자되어, 나도 관심을 가졌다가 유야무야 덮어버렸는데, 한 달마다의 미봉책인 눈썹 뽑기로 해결될 일이 아니었다. 미용성형수술이 아니기 때문에 수술비는 보험으로 계산하니 부담은 크지 않았다. 

  안과 수술실 베드에 누워, 얇은 위눈꺼풀에 따끔따끔한 마취주사를 여러 대 맞았다. 그리고 레이저로 눈꺼풀을 태우는 노린내를 맡으며 침상에서 20여분을 긴장 속에 보냈다. 다행히 매몰법으로 시술해서 고생을 덜했다. 수술 뒤의 모습이 너무 흉측해서 두문불출 바깥나들이를 하지 못하고 지냈다. 자연스럽게 자리 잡으려면 6개월이 지나야 한다니, 쌍꺼풀 수술 하나도 보통일은 아니었다.  그러고 보면 아름다움을 위해 성형하는 사람들의 용기가 참으로 위대하다는 생각이다.  앞 트임, 뒤트임은 기본이고, 코수술에, 양악 수술까지 아름다운 얼굴을 위해 생명까지 담보로 잡고 도전한다니 정말 대단한 일이 아닐 수 없다.    2주가 지난 오늘, 눈가를 까맣게 물들였던 어혈은 사라지고, 부기도 많이 빠져, 선글라스 없이 외출이 가능해졌다. 땀이 흐르면 아직 수술 부위가 따끔거리긴 하지만 활동에 지장 없게 되었다. 

  내 한 해의 변화 없는 밋밋한 삶에 비해, 산속에서 강추위와 무더위로 한 해를 마치고, 겨우살이 준비를 하는 나무들을 바라보니, 저절로 알 수 없는 회한의 탄식이 나온다. 그러나, 평범한 범생꾼의 인생이 그렇지 뭐 대단하겠는가 반문하며 아름다운 가을 풍광으로 위로 삼으며 산책을 마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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