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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의 향기

남해 충렬사와 거북선

  남해도를 떠나기 전, 마지막으로 남해 나루터 근처에 있는 충무공 충렬사를 찾아갔다.  잘 지어진 안내소 근처에 차를 세우고 언덕길을 올라 충렬사에 도착했는데, 아뿔싸 '가는 날이 장날이라'고 충렬사는 보수 중이었다.  아쉬운 마음에 열린 정문의 쪽문으로 들어서니, 입구부터 공사 중이었다. 보수공사가 아니라 사당으로 들어가는 내삼문을 새로 짓는 것 같았다. 살며시 들여다볼 틈도 없어 하릴없이 되돌아 나오고 말았다.

 

  그 허무함을 달래기 위해 충렬사 안내소 앞바다에 떠있는 거북선 모형을 둘러보며, 500 원을 내고 거북선 안에 들어가 내부를 둘러보았다. 겉에서 보았을 때는 그럴듯해 보였으나, 내부는 엉망이었다. 그리 두껍지 않은 송판으로 대충 짜 맞추고, 싸구려 인형에 조악한 조선 수군의 옷을 입혀 전시하고 있어서 실망감이 컸다. 거북선을 만든 송판들은 왜선과 충돌 시 충격을 이겨내지 못할 것 같았고, 문짝 역시 엉성하게 달려 있어서, 조선의 첨단 병기였던 돌격선 거북선의 모습은 정말 아니었다. 얼마 전 부서져 내렸다는 여수 진남관 앞에 있던 거북선보다 작고 조악했다. 이제 살 만큼 잘 살게 된 마당에 제대로 고증이 된 거북선을 만들어 위풍당당하게 세계인들이 우러러볼 수 있는 모습으로 만들어 전시하는 것이 이충무공의 공적과 과거로부터 이어져 내려온 최고의 조선술을 빛내는 일일 것이다. 

 

 

  남해 충렬사(忠烈祠)는 임진왜란이 끝나던 해 마지막 해전인 노량해전(1598. 11. 19)에서 순국한 충무공 이순신의 충의와 넋을 기리기 위해 세운 사당이다. 충렬사에는 1604년에 선무공신 1등으로 서훈되고 덕풍 부원군, 좌의정의 직위가 내려지고, 1613년에는 영의정으로 책봉된 충무공의 구국충정의 얼이 서려 있다. 남해 충렬사는 통영 충렬사와 함께 ‘충렬’이라는 현판을 처음부터 같이 사용해 왔으며 조선시대 인조 임금 때 지어졌다.
  노량해전에서 순국한 충무공의 시신은 이락사에 최초로 안치되었다가 그해 이곳 남해 충렬사로 이장, 안치되었다. 시신을 충청남도 아산으로 운구하기 전에 3개월간 이곳 가묘 자리에 안치했다. 1599년 2월 11일 유해가 충렬사에서 군영지인 전라도 고금도를 거쳐 아산 현충사로 운구되어 안장되었다. <다음 백과 발췌>

   

 

충렬사 안내소

 

청해루

 

충무공 기림비

 

충렬사 외삼문

 

공사중인 내삼문

 

충렬사 안내문

 

거북선

 

거북선 내부

 

현자총통

 

왜장선의 지휘소를 포격할 거북선의 용두에는 포를 걸어 쏠 공간조차 없어 장식용으로만 보였다.

 

남해대교와 옛 나루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