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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의 향기

남해 관음포 이충무공 전몰 유허지

  그동안 몇 번이나 노량을 건너 남해도에 갔었지만, 충무공께서 전사하신 곳이 노량해협 쯤으로 알고 있었다. 그런데, 관음포 앞바다가 격전지였고 전투 중 순국하신 충무공 유해가 이곳 관음포에 처음 내려졌었다는 걸 최근에야 알았다. 내 무지함을 탓하며, 새로 건설된 노량대교를 건너서 관음포 충무공 유허지에 도착했다. 공원처럼 잘 꾸며진 주차장에 차를 세우고, 안내소 직원에게 길을 물었다. 관음포는 포구 한가운데 서쪽으로 길게 뻗은 반도가 있는데, 그곳에 이순신 장군의 죽음을 추모하는  '이락사(李落祠)'라는 유허지가 있다는 것이었다. 

 

  충무공께서 순국하신 지 234년 후, 순조 32년(1832년)에 이순신 장군의 8대손으로 이항권이 삼도 수군통제사로 부임하였다. 그는 통제사로 부임한 후 왕명을 받들어 단을 쌓아 제사하고 충무공의 진충보국의 뜻을 기리는 이충무공 유허비를 세웠다. 비와 비각을 세워 추모하고 이곳을 ‘이락사’라 했다.

 

  1598년 11월 19일 새벽 2시경 조선과 명나라 연합수군은 관음포에서 조명 연합함대 150척이 일본 전함 500여 척과 전투를 벌였다. 이순신 장군은 노량 앞바다로 가 적선 50여 척을 격파하고 200여 명의 일본군을 물리쳤다. 이때 일본 수군은 이순신 장군의 대장선을 포위하려 했으나 도리어 명나라 수군 전함과 조선군의 협공을 받게 되자 후퇴했다. 

  이순신 장군은 적선의 퇴로를 막고 이곳 관음포 앞바다에서 도주하는 적선을 추격하던 중 오전 9시경 일본군의 총탄에 왼쪽 가슴을 맞고 쓰러졌다. 장군은 싸움 형세가 급하니 나의 죽음을 말하지 말라는 유언을 하고 10시경 전사했다. 노량대첩 후, 전사한 이순신 장군의 유해를 이곳 관음포로 운구되어 가까운 남해 충렬사에 안치되었다가 본영이 있던 고금도에 임시로 안장하였다. 그러다 1599년 아산 금성산에 장사되었다가 1614년 현충사에서 9㎞ 떨어진 음봉면 어라산에 이장되었다.

 

  관음 포구는 서쪽으로 길게 뻗은 반도를 가운데 두고 북쪽 포구에는 이순신 장군 동상과 벽화가 있는 광장이 있고, 남쪽에는 주차장과 체험 공간이 있었다.  햇빛이 강하고 날씨가 더워 땀이 줄줄 흘렀지만, 망국의 기로에서 자신의 목숨 대신 나라를 구하신 장군의 살신성인을 생각하며, 모퉁이를 돌아 유허지로 들어섰다.  

 

 

유허지로 들어가는 입구에 세워진 사적비

 

1998년 12월 20일 충무공 순국 400주년 추모식 때, 돌아가시기 직전 남기신 유언을 돌에 새겨 세웠다. 우리 글로 새겼더라면 더 좋았을 것을 한자로 적어 넣은 것이 아쉽다. 

 

  1950년 남해군 주민 7,000여 명이 모금하여 유허의 정원과 참배 도로를 정비했다. 그 후 1965년 4월 13일 대통령이던 박정희가 ‘큰 별이 바다에 떨어지다’라는 뜻인 ‘대성운해(大星殞海)’와 ‘이순신 순국하다’라는 뜻의 ‘이락사(李落祠)’ 액자 2개를 친필로 써서 이락사에 걸었다. 박정희가 성역화한 아산 현충사와 마찬가지로 한국 역사의 아이러니다.

  이순신 장군 전몰지인 이곳은 1973년 6월 11일 사적 제232호로 지정면서 경역 정화사업을 시작하였다. 이때부터 ‘관음포 이충무공 전몰유허(觀音浦李忠武公戰歿遺墟)’라고 부르기 시작했다.

 

  이락사 왼편에 건립한 유허비

 

  박정희 친필 현판의 비각

 

  비각 안에 있는 같은 모양의 비석, 어느 것이 진본인지 알 수 없어 답답했다. 설마 박정희가 세운 비석을 비각 안에 두지 않았으리라 믿고 싶다. 

 

  이락사 오른쪽에 첨망대 안내문이 있었다.

 

  첨망대 가는 길

 

  첨망대, 1991년 2월 16일, 이순신 장군께서 순국하신 바다가 보이는 언덕에 2층으로 된 누각을 세웠다.

 

  첨망대 서쪽, 장군께서 순국하신 관음포 앞바다. 잡목이 웃자라 시야를 가렸다. 멀리 이순신 대교와 광양만이 보였다. 

 

  관음포 북쪽 포구

 

  거북선 모양의 영상관

 

  이순신 광장, 판옥선 위에서 전투를 지휘하는 장군의 모습을 형상화했는데, 보기에 만족스럽지 않았다. 좀 더 멋지게 만들어 성웅 이순신 장군을 빛나게 할 수는 없었을까 아쉬움이 그득했다. 

 

  타일로 만든 노량해전 벽화

 

  명나라 제독 진린과 조선 삼도수군통제사 이순신 장군

 

  벽화 뒤의 구조물

 

  관음포 남쪽 포구 주차장이 있는 추모공원

 

관음포 유적지 지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