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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의 향기

공주 석장리 선사 유적지

  연사흘 앞이 보이지 않을 정도로 황사와 미세 먼지가 앞을 가리더니, 황사도 기력이 다했는지 모처럼 청명한 일상으로 돌아왔다. 봄빛이 너무 고와 연천군 전곡 선사 유적지와 함께 구석기 유적지로 유명한 석장리에 소위 원족을 나갔다. 도도한 역사처럼 흐르는 석장리 금강, 강변에 즐비한 버드나무에서 날리는 꽃가루가 푸른 하늘에 눈처럼 날렸다. 마스크 덕에 꽃가루 알러지 걱정을 덜 수 있어서 불행중 다행이란 웃픈 생각도 들었다. 

 

  1964년 연세대 박물관팀이 발굴한 이곳은 맨 밑 강바닥 지질층이 30~50 만년 전이었고, 발견된 나무숯은 방사선 연대로 5만 270년 이전 것이었으며, 비탈 쌓임층의 1호 집터에서 나온 화덕의 재는 2만 830년 전의 것으로 추정된다고 한다.

 

  주로 어린이를 동반한 나들이객들이 대부분이었다. 석장리 유적지에 배치된 각종 조형물들이 어린이들 취향에 알맞은 탓도 있으리라 싶었다. 박물관에 전시된 유물들은 그리 많지 않았으나, 선사시대 우리 역사를 유추할 수 있는 계기가 되었다. 

 

 석장리 선사 유적지 입구 

 

입구 체온 검사장, QR코드로 인증하고 들어 갔다.

 

입구 초입, 맘모스 사냥 재현 모형

 

석기를 들고 골똘히 생각하는 원시인

 

고고학자로 연세대 박물관장을 하면서 이곳 유물 발굴에 힘쓴  '파른' 손보기 선생 기념관

 

박물관

 

박물관 내부

 

원시 동굴 모형과 탐험로

 

어린이 체험관

 

석기 체험 놀이장

 

최초 발굴지

 

강변 유채밭과 버드나무 군락

 

 

 

비탈길 3호 집 모형

 

  석장리 선사 유적은 우리나라 구석기시대 대표적 유적지이다. 이곳 유적 발굴 조사는 1964년부터 1974년까지 10차에 걸쳐 연세대학교 박물관팀이 실시하였다. 조사 결과 지층은 27개의 층위로 형성되어 있고 유물을 포함하고 있는 문화층도 11개 층위나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이후 1990년과 1993년에 구체적 발굴조사가 실시되어, 보다 다양한 문화유적이 확인되었다.

 

 

  지질층은 강바닥, 강가, 비탈 쌓임층으로 나뉘며 아래 쌓임층들은 두 개의 다른 간빙기와 제 4빙기에 쌓인 것이었다. 강가 쌓임층의 맨 위층에서 나온 나무뿌리테가 따뜻한 기후에서 이루어진 것이 확인되었고, 나무숯은 방사선 연대로 5만 270년보다 앞서는 것으로 밝혀졌다. 또한, 비탈 쌓임층의 1호 집터에서 나온 화덕의 재는 2만 830년 전의 것이었고, 맨 밑의 강바닥층은 30~50 만년 전의 것으로 추정되었다.

 

 

  12~14개의 문화층은 아래층으로부터 돌감(石材)과 석기 만드는 수법이 발달되어온 과정을 보여준다. 석기의 특징으로 볼 때 전기의 곧선사람들은 차돌과 편마암을 거칠게 떼어내 외날 찍개, 안팎 날 찍개의 무거운 석기를 만들었고 중기의 슬기사람들은 이 밖에 반암도 떼어 좀 더 발달한 긁개, 찌르개, 자르개, 홈날, 톱날 석기를 몸돌과 격지 석기로 만들고 돌려 때기 수법도 쓰게 되었다. 후기의 슬기슬기 사람들은 아주 발달한 간접 떼기-돌날 떼기 수법을 썼으며, 돌날 자르개, 돌날 긁개, 돌날 밀개, 돌날 새기개 등을 만들어 세밀하고 정밀한 작업을 하게 되었다. 돌감도 흑요석과 수정을 멀리서 가져다 쓴 것을 알 수 있다.

<다음 백과 대한민국 구석구석에서 발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