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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내여행

우포의 겨울

 그동안 얼마나 우포를 보고 싶어 했던가. 그런데, 막상 소문으로 들어 짐작되는, 꽁꽁 얼어붙은 우포는 별로 내키지 않았었다. 부곡에서 하룻밤을 자면서 따뜻하고 매끄러운 온천물에 흠뻑 반해버렸다. 더욱이 우리가 머물던 숙소는 지하 대중탕을 숙소 손님들에게 그대로 개방하고 있었다. 대중탕이 낡긴 했지만 깨끗했으며, 온천수도 맑고 매끄러웠다.  많은 온천을 겪어보지는 않았지만, 국내 온천수 가운데 아마도 최고의 수질이 아닌가 싶다. 온천욕을 한 후 모처럼 따끈한 방에서 숙면을 했다. 아침에 일어나자마자 대중탕으로 내려가 온천욕을 한 번 더하고는 근처 식당에서 조반을 먹으며 일정을 의논했는데, 이구동성으로 우포늪지를 첫째로 꼽았다.

  차를 돌려 왔던 길을 되돌아 북상하여 우포를 찾아갔다. 우포에서는 유감스럽게도 매서운 칼바람이 세차게 불어왔다. 일행 모두가 귀마개와 마스크, 목도리를 단단히 두르고 이정표를 따라 탐방에 나섰다. 사람들의 발길이 뜸한 곳은 빙판이 되어 아예 통행금지 띠를 둘러 출입을 막았다. 평소의 우포 사진처럼 물안개 속에 어부가 거룻배를 타고 그물을 걷는 풍경까지는 기대하지 않았지만, 늪지 앞에 선 첫 감상은 실로 허망했다. 길고 긴 제방 안에 늪지의 광활한 수면은 꽁꽁 얼어붙은 얼음 위에 흰 눈이 내려 있었다. 이런 모습이라면 주변에서 늘 보았던 저수지와 다를 것이 무엇일까. 제방 아래는 친환경 농사를 짓는다는 논배미들이 펼쳐져 있어서 실망감이 컸다. 게다가 이따금 얼음이 갈라지며 내는 소리가 천둥소리처럼 크게 울려왔고, 눈 내린 논배미 위의 창공에는 까마귀들이 높이 떠서 선회하며 날고 있었다.

  찬 바람이 몰아치는 제방을 한참이나 걸으며 황량한 저수지의 얼음만을 바라보았다.  얼음이 얼지 않은 물 위 공간에서 철새들이 쉬고 있을 뿐, 우포는 그동안 상상했던 낭만적 풍경과는 너무 동떨어진 세상이었다. 너무나 아쉬워서 제방 아래로 내려가서 바짝 마른 물풀들과 잡목들을 헤치고 물가로 다가서서 몇 컷 촬영하곤 이내 제자리로 돌아오고 말았다. 처음 들어왔던 곳으로 되돌아와 응달진 서쪽으로 빙판길을 조심해서 걸었다. 그늘진 산밑을 걸어가다가 너무 추워 발길을 되돌려 결국은 우포를 떠나고 말았다. 

  집으로 되돌아와서 우포를 다시 생각하며 자료들을 찾아보니 얼음과 눈으로 덮혔던 그곳이 모두 저수지가 아니라 습지일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고 보면 우포의 참맛은 겨울철 탐방으로는 느낄 수 없겠다.  우포를 방문했다는 성취감만 들었을 뿐, 아름답고 낭만적인 풍경은 못다 푼 숙제처럼 내일을 기약할 수밖에 없었다.    

 

 동쪽 제방 위에서의 우포

 

그늘진 서쪽, 철새 관찰소 부근의 우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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