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부터 해무는 남쪽바다로부터 끊임없이 몰려와 오후에 연락선이 올 수 있을지 염려스러웠으나, 햇살이 퍼지자 소강상태를 보였다. 점심식사 후 짐을 꾸려 부두로 나왔더니, 정기여객선 한림페리가 벌써 들어와 정박한 채 출항을 기다리고 있었다. 친구의 일로 서거차도 행정수부인 조도로 나갔다가 게서 1박 하기로 한 탓에 예정보다 하루 일찍 이곳을 떠나게 되었다. 우리 국토의 서남부 끝 먼바다 작은 섬, 높은 산 정상에 올라서면 한 눈아래 섬전체를 볼 수 있는 곳이었다. 50여 호의 주택 가운데 40여 호에 주민들이 살고 있는데 대부분이 노인들이다. 어업에 종사하는 가구가 두서너 집, 미역양식하는 집이 두 집, 그 외 발전소와 관공서에 근무하는 직원들 몇 사람... 장년세대도 거의 없는 외로운 섬이다. 자연환경이 열악한 동거차도에 150여 호 거주하고 있는데, 이들은 섬 주변의 어장에 종사하며 생활하는데 소득도 비교적 높다고 전한다. 과거에, 물고기가 많이 잡힐 때가 서거차도의 전성기였단다. 많은 평지의 전답들은 대부분 휴경지이다. 젊은이들이 없다 보니, 어린이들이 네 명, 그중 3명이 거차분교에 다닌다. 얼마 전 대웅이 여동생이 태어나, 섬식구가 한 사람 더 늘었다. 중학생 고등학생은 이 섬에 없다. 아가씨도 청년도 없다. 주민들은 대부분 목포나 광주에 가족들과 이어져 생활한다. 산에 오르내리며 몇 기의 분묘들도 보았는데 비교적 관리가 잘 되고 있었다. 고군산군도에서 보았던 풍장의 흔적은 보지 못했다. 이장해 간 묘도 볼 수 있었는데, 아마도 전가족이 뭍으로 이사했기에 조상님들도 모셔간 것일 게다. 서남해의 먼바다인 이곳 주민들은 그저 고향이기 때문에, 바람과 파도와 해무와 함께 사는 이웃들이었다.
부두에 나왔더니 조도로 나가는 주민 5-6명이 대합실에서 연락선을 기다리고 있었다. 짝수날만 운행하는 섬사랑호는 조도까지만 간다. 팽목까지 가는 한림페리를 탈 필요가 없기 때문에 섬사랑 9호를 탔는데, 의외로 속도가 빨랐다.
서거차항에서 빠져나와 하죽도와 동거차도 사이 수로를 통과하여 연안으로 향하는데, 해무가 떼로 몰려들었다. 서거차도가 서남해 먼바다로 불리는 데는 이런 이유도 있었나 보다. 안개는 가까운 바다로부터 먼바다로 철새처럼 떼를 지어 춤추듯 몰려다녔다. 연락선이 안갯속으로 들어서서 안개에 갇혀 사방이 어두워졌다. 안갯속에서 안개를 헤치며 한참을 전진하자, 조도 인근 다도해의 섬들이 안개 사이로 드문드문 나타났다. 서거차도에서 다른 곳을 들리지 않고 조도로 직항하여 50여 분 만에 하조도 창유항에 도착했다. 행정선으로 직항하면 조도에서 30분이면 도달하는 거리라니 낙도 오지라는 것도 결국 교통환경 때문이겠다.
4일 한낮 서거차항
떠나는 연락선에서 바라본 서거차도. 그동안 쏘다녔던 항구의 방파제며, 해안 산봉우리들이 빠르게 뒤로 물러났다. 우리가 처음 올랐던 레이더 기지가 있는 상마산 봉우리는 안개에 덮여 있었다.
안녕! 서거차...
하죽도 끝머리를 돌아가자, 동편에서 해무가 떼로 몰려들었다.
하죽도를 돌아가니 서거차 동편 벼랑 해안 중간에 있던 흰 등대가 해무 속에서 시야에 들어왔다.
서거차는 점점 멀어지며 해무에 묻혀가고 있었다. 해무 때문에 초점도 제대로 잡히지 않았다.
망원렌즈를 준비하지 않은 것이 애석했다. 최대한 가까이 들여다보았다.
상죽도와 서거차 사이에 보이는 흰 도로. 몇 번을 왕복했던 곳이었다. 최초로 까치독사를 만났던 곳이기도 하고... 언제 다시 볼 수 있으려나, 서 거 차 도.
상조도 도리산 전망대에서 바라본 서거차도. 해무 때문에 서거차는 안개 위에 떠서 뿌옇고 희미하게만 보였다. 맑은 날, 서거차에서 이곳 조도 도리산 전망대까지 선명히 보였었는데...
안녕! 서거차... 다시 볼 날이 있겠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