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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외여행

장가계에서 무한까지

  날씨가 참 얄궂었다. 장가계를 떠나는 날, 비가 그치고 구름이 높게 덮인 흐린 날이었다.  멀리 보이는 천문산 위에도 구름이 활짝 높이 떠 있어 산 전체가 훤히 드러나 보였다. 하루 더 머물러 천자산에 다시 오르면 좋으련만 어쩔 수 없이 떠날 수밖에 없는 일이었다. 장가계에서 무한까지 일곱 시간을 버스 창밖으로 농촌 풍경을 감상하며 갔다. 여정의 전 지역이 노오란 유채꽃이 만발하여 아름답고 평화스러웠다. 때로는 도시의 솟아오르는 고층 아파트들을 보며 중국의 현대화를 느낄 수도 있었다. 이제는 자전거가 아닌 수많은 자동차들이 도로를 가득 메운 시가와 고층빌딩들이 즐비한 현대의 도시들이었다.   

 

   장가계에서 무한에 이르는 논밭엔 3모작이 가능하다는데, 가는 곳마다 유채꽃이 흐드러지게 피었다.

 

  우리를 태우고 다녔던 중국제 리무진 버스, 우리나라 관광버스보다 크고 우람했으나, 우리나라 우등버스보다 편안하진 않았다.  1층이 운전석과 짐칸이고 2층이 승객칸인데 승강대 계단이 너무 가팔라 조심스러웠으며,  좌석이 넓어 보기엔 좋았으나 생각보다 불편했다. 대부분 뒷자리에 앉아서 다녔는데 좌석 쿠션에 문제가 있는 듯 엉덩이가 앞으로 쏠려 편치 않았다.  

 

    무한시는 장강 동안(東岸)의 무창구(武昌區), 서안(西岸)의 한양구(漢陽區), 한구구(漢口區)가 합쳐진 인구 600여만의 도시로 호북성의 성도이다. 무창구(武昌區)는 1천700년 전 오나라 손권의 마지막 수도였고, 한양구(漢陽區)는 공업지역이며 한구구(漢口區)는 1858년 톈진 조약으로 영국, 독일, 러시아, 프랑스의 조계지가 있었던 곳으로 각 지역마다 독특한 특색을 가지고 있다.  

 

  중국 6대 도시 중의 하나로, 중국 중부의 공업, 금융, 상업, 과학, 문화교육의 중심도시다. 무한의 자연은 독특하면서도 사계절이 분명하고 100여 개의 호수와 많은 산들이 있다. 또 자연경관에 못지않게 특색 있는 초(楚) 나라 문화와 노자, 장자의 철학사상이 어우러진 인문 경관도 볼 만하다. 무한은 동서로는 상해와 중경을 연결하고, 남북으로는 북경과 광주를 연결하는 교통 요지로서 예로부터 구성통구(九省通衢)라 불렸다. 그런 만큼 역사적 무대에서도 빠지지 않고 등장하는데, 1852년의 태평천국(太平天國)과 1911년의 신해혁명(申亥革命)의 무대가 되었던 곳이다. 현재는 방직, 식품에서부터 철강, 기계, 조선에 이르기까지 공업의 중심지가 되었다. 

 

 

  무한 한구구(漢口區) 보행거리 초입에 있는 무한 해관, 영국인들이 세운 시계탑이란다. 이곳은 아편전쟁 후 서구의 조계지가 되었는데, 그때 세워진 유럽식 건물들 때문에 보행거리로 유명해졌다고 한다.

 

 중심 상업지역, 길 가운데 세운 동상, 근대의 풍물인 물장수 요리사 등을 재현해 놓았다.

 

  중심 상업지역에서 장강으로 가는 길가에 있는 무한 과학기술관

 

  장강의 야경을 즐길 수 있는 강한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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