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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악산 천불동 계곡

  모처럼 산악회 따라 설악산을 올랐다. 천왕봉을 오르는 최단거리인 오색에서 천불동을 통과하여 설악동 소공원까지 가는 코스였다. 오색 입구에는 단풍이 한창이었다. 열 시경 버스에서 내려 등반길에 올랐다. 일행들의 첫걸음이 모두 경쾌하다. 단풍 골짜기 물소리를 들으면서, 계곡 옆구리에 걸어 놓은 등산로를 따라 단풍 숲으로 들어갔다.

 

단풍잎이 빨갛게 가을을 불태운다. 나무들의 일 년 삶의 마지막 열정이다. 

 

고도가 높아지자 단풍잎이 성글어졌다. 서리라도 맞았는지 길 위에 단풍잎이 수북하게 쌓였다. 

 

멀리 산 능선이 보였다. 정상에라도 오른 듯 가슴이 벅차오른다. 하지만 심장의 박동은 가파르게 뛰어올랐다. 

 

  이른바 깔딱 고개, 가파른 계단이 정말로 길다. 함께 오르던 사람들은 이미 흩어진 지 오래다. 나 홀로 스틱에 의지하며 한 걸음씩 오른다. 

 

  가파른 계단 위에 기다리는 것은 또 가파른 돌길이다. 등산화 안에 깔창 하나를 더 덧댔지만 발바닥이 아프고 무릎이 삐걱대며 비명을 지른다. 황톳길 언덕배기도 힘든데, 돌길은 정말 힘들다. 나무 가지 사이로 하늘이 보인다. 정상은 멀지 않았는데, 무릎 압박이 너무 크다.

 

  뒤돌아 본 오색 방면, 잠시 쉬어 간다. 한눈에 보일 듯 가까운 거리건만, 가파르고 거친 돌길에 요동치는 심장을 잠시 진정시켰다. 

 

정상이 가까워지는 듯... 고지가 바로 저 곳이다.

 

  오른쪽 능선 너머로 동해의 푸른 바다가 보였다. 저절로 기운이 나는 듯 힘을 내 본다.

 

 지나온 오색 방향이 일망무제로 탁 트여 시원하다. 호연지기가 느껴진다. 산에 오르는 묘미가 바로 이것이 아닐까...

 

  해발 1708m, 드디 대청봉 정상이다. 오후 한 시로 접어든다. 사람이 뜸한 틈을 타서 인증샷 하나를 남겼다. 오색 출발점에서 이곳까지 무려 세 시간이 걸렸다.

 

  바로 아래 남쪽으로 중청봉이 보이고 그 앞에 중청 대피소가 보였다. 더 오를 수 없으니 아쉽지만 오래 머물 수없이 하산하기 시작했다.

 

  대청봉에서 내려가며 공룡 능선의 등뼈를 굽어 보았다. 얼마나 꿈꾸었는지 모른다. 저 등뼈를 오르는 꿈을... 그 꿈은 내 생전에 결코 이루지 못할 것 같다. 공룡능선 너머로 울산암이 손가락 하나 길이로 작게 보였다.

 

발아래 공룡능선이 삐죽삐죽한 등뼈를 드러내 보였다. 울산암도 제법 웅장한 모습으로 다가섰다.

 

중청 산장 부근에서 공룡의 등뼈를 한참이나 바라보았다.

 

 멀리 우측으로 속초시가가 보였다.

 

공룡 능선이 올려다 보인다. 

 

 희운각 대피소를 지나 천불동 방향으로 내려 간다. 벌써 세 시가 넘었다. 빨리 내려가지 않으면 어둠 속에 길을 잃는다.

 

  무너미 고개를 넘어 천당 폭포를 지난다.  해가 기울어 골짜기가 서늘하다.

 

 높은 봉우리에만 햇볕이 든다.  네시로 접어든다.

 

  여러 골짜기들이 모여 큰 골을 이룬다. 다시 빨갛게 농익어가는 단풍이 보였다.

 

  천불동 계곡, 골짜기가 깊다. 중턱의 철제 잔도로 아래로 내려 가며 바라보는 풍경에 취해 고단함도 잊은 듯 싶다. 

 

  급류에 깎이고 쓸려 골짜기에 널브러진 돌들

 

  비선대까지 이르는 기인 골짜기. 참으로 절경이다. 골짜기 아래로 내려 왔다. 너무 아름다운데, 다리가 아프다. 무릎 관절만 지탱해주는 로봇이라도 있으면 좋겠다.

 

  갖가지 색깔을 뿜어내는 나뭇잎들과 기암괴석, 원시의 모습으로 비바람에 깎여 가는 수많은 돌덩어리들이 어우러져 장관을 이루고 있다.

 

  계곡이 점점 넓어진다. 비선대까지 참으로 기인 골짜기였다. 옛날엔 산에서 밥도 지어먹었다. 배낭 위에 텐트 메고, 석유통 들고, 버너 예열용 알콜까지 들고 이 산 저 산들을 찾았었다. 등산객들이 밥해먹다 불냈다는 얘기는 못 들어 본 것 같다.  담뱃불에 불냈다는 얘기는 들었어도... 그 시절이 그리워지기도 한다. 가난하고 가진 것 없어 어렵던 그 시절이었지만, 지나고 보면, 그것도 낭만이다.

 

  드디어 비선대를 통과했다. 날은 점점 어두워졌다. 지나온 길을 배경으로 비선대 골짜기를 올려다보았다. 대청봉에서부터 약 4시간 경과. 다섯 시가 조금 넘었다. 이제 곧 어두워질 텐데... 

 

 

  비선대 아래부터 평탄한 길이어서 소공원까지는 어렵지 않았다. 소공원 주차장에 도착한 시간이 다섯 시 반이 넘었다. 벌써 상점엔 전등불이 켜졌다. 기력을 소진한 끝이라 배가 고팠지만 따끈한 식사보다도 뜨거운 물이 가득 담긴 욕조가 그립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