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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외여행

지브롤터 해협

  말라가에서 모처럼 여유 있는 아침 식사를 했다. 아침에 돌아볼 미하스를 어젯밤 미리 본 탓도 있었지만, 지브롤터 해협을 건너는 페리 시간에 맞추어야 하기 때문에 9시 10분에 호텔을 떠나 지브롤터 반도가 보이는 알제시라스 항에서 이른 점심을 먹었다.(시간적 여유가 넉넉한데도 왜 밤중에 미하스를 들렸는지 지금도 이해되지 않는다. 더구나 미하스는 말라가에서 타리파로 가면서 경유할 수 있는 곳인데, 어제저녁 미하스까지 왜 내려갔다가 올라왔는지도 모르겠다.)  그리고, 해협을 건너기 위해 스페인 최남단의 타리파 항으로 갔다. 타리파항에서 EU 출국신고를 하고 고속 페리를 타고 한 시간여를 항해하여 북아프리카 모로코의 탕헤르 항에 도착했다. 모로코는 스페인보다 1시간 빨랐다. 우리나라와는 7시간의 시차가 나는 셈이었다.

 

  알제시라스 항은 713년 스페인을 침공한 아랍인들이 라미엘 강 어구에 세운 항구로 로마의 포르투스알부스가 있었던 곳으로 추정된다.  1344년 카스티야의 알폰소 11세가 이 항구를 장악했으나 1368년 아랍인들이 재정복하여 파괴했다. 히브랄타르에서 온 스페인 난민들이 1704년 이곳을 다시 세웠으며 1760년 카를로스 3세가 지금의 도시로 재건했다. 이 도시의 주요 상업활동은 항구와 관련되며 대서양 횡단 선박의 기항지인 이 항구에는 탕헤르를 비롯한 모로코의 여러 항구를 오가는 승객들을 위한 거룻배가 운항된다. 

 

  지브롤터는 영국령으로 해협을 마주보며 깎아지른 듯한 바위산으로 되어있다. 이 지브롤터 바위(높이 425m)의 북부는 낮고 평평한 모래톱으로 스페인의 안달루시아 지방과 이어져 있는데, 길이 4km, 너비 1.2km의 반도는 해발고도 300m의 석회암 암봉이 5개나 연이어져 있으며, 평지 부분이 거의 없다. 바위산의 절벽과 급사면 위에는 해군기지가 구축되어 있으며 제 2차 세계대전 중에는 바위산의 일부를 닦아 비행장을 만들었다. 또 해면을 간척하여 평지를 확대하였으며, 그와 동시에 운하를 파고, 바위산을 꿰뚫어 터널 수를 늘림으로써 이 요새를 더욱 강화하였다. '바위'의 서쪽은 항구로 이용되고 있으며, 군항 및 자유무역항으로서 붐빈다.

 

  지브롤터의 역사는 그리스·로마 시대부터 시작되는데, 기원 후에도 이 지점을 두고 유럽·아시아·아프리카의 여러 민족이 쟁탈전을 벌인 격전지였다. 711년에는 이슬람교도의 타리크가 이곳을 점령하였으며, 이를 거점으로 하여 스페인을 침공하였다. 로마시대까지 헤라클레스의 기둥, 칼페산(山) 등의 이름으로 알려졌던 이 곳은 이 때부터 타리크의 산, 즉 자발 타리크라고 부르게 되었으며, 이것이 지브롤터라는 지명의 기원이 되었다.

 

  그 후 이곳을 둘러싸고 스페인과 이슬람 사이에 공방과 쟁탈이 계속되었는데, 1704년 스페인 계승 전쟁에 개입하였던 영국이 이곳을 점령하였으며, 그때부터 영국의 주권이 확립되었다. 그러나 그 후에도 여러 차례에 걸쳐 국제분쟁 대상이었으며, 제2차 세계대전 중에는 미국의 아프리카 전전기지로 사용하여 독일 공군이 폭격을 하기도 했다. 1964년부터는 스페인의 영토 반환 요구가 계속되고 있으며, 1969년에는 경제봉쇄가 단행되기도 하였다. <네이버 지식백과>

 

 

   점심을 먹었던 중국식당이 있는 알제시라스 부둣가. 아파트 아래 1층이 상가였는데, 중식당도 그곳에 있었다.

 

  항만 너머로 지브롤터 바위산이 보였다. 알제시라스에서도 탕헤르로 가는 배가 있다는데, 우리가 해협을 건너는 곳은 이 항만의 서남쪽 항구인 타리파여서 식사 후 다시 버스를 타고 이동하였다.

 

 알제시라스에서 타리파항으로 가는 길.  버스의 뒷 유리창 너머 풍경. 곳곳에 풍력 발전기가 있었는데, 스페인에서는 전력의 60%를 풍력으로 충당한다고 한다.

 

  타리파 항으로 들어가는 어귀, 타리파 항도 휴양지로 유명한 곳이다. 이곳 바다는 대서양이다.

 

  타리파 항은  스페인 최남단에 있는 도시로 기원은 정확하지 않으나, 이 지역에 고대 로마 시대에  '훌리아트란스둑타(Julia Transducta)'라는 큰 도시가 있어서 당시의 유적이 아직도 남아 있다. 약 800년 동안 스페인을 지배한 아랍인들이 711년에 가장 먼저 이곳을 정복한 후 에스파냐 최초의 아랍인 거주지를 세웠다. 

 

  유명한 해변 휴양지 코스타데라루스(Costa de la Luz)의 시작점이 되는 도시로 서쪽부터 각각 대서양, 지브롤터 해협(Estrecho de Gibraltar), 알보란해(El Mar de Alborán)에 접한다. 지브롤터 해협을 사이에 두고 아프리카 모로코와 마주 보고 있다.

 

  긴 해안선을 따라 해수욕과 일광욕을 즐기기에 최적의 장소로 알려진 아름다운 해변이 계속 이어져 관광·휴양 도시로 각광받으며, 특히 1년 중 절반은 항상 따뜻한 햇빛을 즐길 수 있어 일조량 부족에 시달리는 북유럽 사람들이 많이 찾는다. 10세기경에 건설한 구스만성(Castillo de Guzmán)과 중세시대의 성벽 등 많은 문화유산이 곳곳에 남아 있다.   <네이버 지식백과>

 

  항만을 방어하는 요새.  아프리카와 최단거리이기 때문에 아랍 계통의 이슬람인들이 스페인을 침공할 때 오히려 교두보 역할을 한 곳이다.

 

 스페인 출국심사대

 

 해협을 건널 준비를 하며 대기 중인 수중익선 고속 페리, 항해 시간은 오직 35분이라는데, 해협을 건너는데 약 한 시간 정도 소요된다.

 

  타리파 항 출국 사무소, 모로코로 귀환하는 아랍인들이 많았다. 스페인은 모로코인들이 선망하는 황금의 땅이란다. 

 

  페리는 타리파를 출항하여 타리파의 등대를 지났다. 배 안에서 두 명의 모로코 관리들이 입국심사를 했는데 어찌나 동작이 꾸물거리는지 짜증이 났다. 

 

  타리파에서 탕헤르로 가는 해협, 멀리 수평선 너머로 아프리카 대륙이 보였다.  이곳은 지중해가 아닌 대서양이다.

 

  한 시간여 만에 모로코의 탕헤르에 도착했다. 이제부터는 아프리카 대륙이다.

 

탕헤르 항만

 

  탕헤르에서 아프리카 대륙에 첫발을 내디뎠다. 아프리카 대륙에 발을 들였다고 해서 달라질 것은 하나도 없었다. 아시아 대륙의 끝 지점이었던 이스탄불에서 유럽과 아시아를 넘나들었어도 달라질 것은 아무것도 없었다. 아시아나 아프리카도 유럽인들에 의해 구분된 대륙의 이름일 뿐이었다.

 

  우리 일행이 타고 온 고속 페리

 

  모로코 입국장, 이곳에서 바이크로 해협을 건넌 중년의 사나이들을 보았다. 여행감이 진하게 묻어나는 낡은 오토바이와 초췌해 보이는 그들의 행색이 오히려 멋있어 보였다. 가까이 다가가서 관심을 보였더니 활짝 웃어주었다. 나는 엄지 손가락을 치켜세워 그들을 격려하였다. 사진을 남기지 못한 것이 아쉬웠다.

 

  탕헤르

 

  탕헤르에서 우리는 스페인으로부터 타고 온 버스로 카사블랑카를 향해 또 다를 여정을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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