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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외여행

포루투갈

 

  꾸물꾸물하던 날씨는 기어코 비를 뿌렸다. 겨울이 우기라고는 하나 그동안 큰 비를 만나지 않아 다행이다 싶었는데 리스본으로 들어가는 길목부터 빗방울이 떨어지기 시작했다..  바르셀로나에서도 비 때문에 시내 관광이 어려웠었는데... 비올 때 제일 큰 애로점이 카메라가 젖는다는 것이었다. 샌프란시스코의 금문교를 닮았다는 거대한 현수교를 건너 리스본에 들어갔다.  교량 아래는 바다 같은 떼주강이 흐르고 있었다. 한강만큼이나 넓은 강은 바다로 이어져 크고 작은 배들이 리스본까지 입항을 할 수 있는 천혜적 조건을 갖추어 리스본이 해양대국의 진출기지 역할을 다할 수 있었다.

 

  포르투갈 왕국은 1143년에 세워졌다.  15~16세기 해양왕국 지위를 확립하면서 세계 최대의 영토를 소유했지만 18세기 중반 나폴레옹의 침입, 브라질의 독립 이후 국력이 쇠퇴하였다. 1910년 공화제가 시행되고, 정식 국호는 포르투갈 공화국. 인구는 천백만여 명, GDP  2만여 불이며, 이베리아 반도의 본토 이외에 대서양의 아조레스 제도와 마데이라 제도를 영토로 한다. 1974∼1975년에 아프리카의 기니비사우·모잠비크·카보베르데·상투메프린시페·앙골라가 잇달아 독립하고, 1976년 동(東) 티모르가 인도네시아에 병합되었으며, 1999년에는 마카오가 중국에 반환되어 총면적 209만㎢에 이르던 전성기의 해외 영토가 대폭 축소되었다. 지중해·북서유럽·아프리카·아메리카의 네 지역을 잇는 해상교통의 결절점(結節點)에 위치하여 지리상의 발견 시대에는 스페인과 더불어 큰 역할을 하였지만, 오늘날 유럽 후진국으로 전락하였다. 나라 이름은 국가 형성에 중요한 역할을 한 도시 포르투(오포르토)에서 유래했다. 행정구역은 18개 주, 2개 자치지역으로 구성되었다.

 

 

 

1. 리스본

 

  버스는 빗 속에 다리를 건넜다. 다리 아래의 리스본 부두가 시야에 들어왔다.  바다로 연결된 이 강이야말로 포르투갈이 해양제국을 건설할 수 있었던 천혜적 조건이다. 

 

  점심을 먹던 식당

 

  비가 내리는 차창밖 풍경

 

  피게이라 광장  중앙에 있는 동 주앙 1세의 기마상. 로마시대의 성(城)인 상 조르제(Castelo de Sao Jorge)가 산꼭대기에 보인다. 

 

  1385년 왕위에 오른 동 주앙 1세(Dom. João I)는 포르투갈의 가장 위대한 왕 중 하나란다. 포르투갈의 제10대 왕으로, 아비스 왕조의 시조이다. 제9대 왕인 페르난두 1세가 죽자, 그의 아내 레오노르 텔레스가 안 데이로 백작과 더불어 왕권을 잡았다. 이에 주앙은 안데 이루와 싸워 승리하였는데, 이때 침입한 카스티야(스페인) 왕국의 대군을 물리치고 포르투갈의 독립을 지켰다. 1385년 국민의회의 선거로 왕위에 올랐다. 해외 사업을 추진하였으며 왕자 엔히크에게 명하여 아프리카 탐험을 도모하였다.

 

  피게이라 광장 옆에 있는 동 페트로 광장. 탑 위의 동상은 동 페트로 4세로 브라질의 첫 번째 왕이다. 나폴레옹 침공 때 브라질로 도피하여 브라질의 왕이 되었다고 한다. 포르투갈과 브라질의 관계를 보여주는 것 같아 그 의미가 심장해 보인다.

 

  때마침 인부들이 빗속에 분수대를 청소하고 있었다. 정상적인 모습이면 좋았을 것을 가는 날이 장날이라고 운이 없었다. 작업이 끝날 때까지 기다리려 했으나, 기약이 없어 아름다운 분수대 사진 욕심은 접을 수밖에 없었다.

 

  광장 끝에 정차해 있는 트램, 외양이 고풍스럽다. 옛날 우리나라에 있던 전차와 모양이 비슷해 보였다.

 

   리스본의 떼주 강가에 있는 벨렘 타워. 비바람이 어찌나 거센지 우산을 펼 수가 없었다. 빗속을 헤치고 탑 근처에 가서 비를 맞으며 어렵게 촬영했다. 렌즈 표면에 빗방울이 떨어져 더 이상 촬영이 불가능한 상황까지 되어서 당혹스러웠다. 벨렘 탑은 4층 등대로서 1515~1521년 프란시스코 데 알다가 가마의 업적을 추모하여 건물 모퉁이마다 감시탑을 세우는 형식으로 지었다.  밧줄, 조개, 바다풀 등의 장식을 새겨 넣고 총 안을 둔 흉벽 등을 설치하였다. 1983년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되었다.

 

  우리가 건넜던 리스본 다리.  떼주강은 스페인 중부에서 리스본을 거쳐 대서양으로 들어가는 길이가 1,008km나 된단다. 1966년 완공될 당시 이 다리 이름은 독재자의 이름을 따서 살리자교라고 했었는데 1974년 4월 25일 포르투갈 혁명을 기념하기 위하여 "4월 25일 다리"라고 명명했다고 한다. 미국 샌프란시스코에 있는 금문교와  같은 회사에서 건설했기 때문에 서로 비슷한 모습이라고 한다.

 

2. 유럽의 서쪽 땅끝마을 "까보 다 로까"

 

  리스본 관광 후 유럽 서쪽의 땅끝 마을이라는 까 보다 로까로 이동했는데,  빗줄기가 어찌나 거센지 버스에서 내려 기념비로 가지 못하고 카페 안에서 비를 피했다. 생전 다시 올 수도 없는 이곳을 비 때문에 볼 수 없다는 것이 안타까워 비 내리는 창밖만 바라보고 있었는데, 잠시 후 거짓말같이 극성스럽던 비가 개었다.  어찌나 반가웠던지 한 걸음에 기념비까지 달려갔다. 

 

  까보 다 로까 기념비.  먼 서북쪽 바다에 무지개까지 떠올라 감격스러웠다. 변덕스러운 날씨가 오히려 신비롭기까지 했다. 

 

  기념비 명문

 

   기념비 아래에서 바라본 등대, 서북쪽 방향

 

  서남쪽 대서양

 

  기념비와 등대

 

   돌아오며 뒤돌아 본 까보다 로까. 중세의 아름다운 건축물들로 이루어진 신트라로 이동하는데, 빗방울은 계속 오락가락하고 있었다.

 

 

 

3. 아름다운 건축도시 "신트라"

 

  언덕 구비로 접어들자마자 중세풍의 건축물들이 시야에 들어왔다. 버스에서 내리자마자 이곳저곳에서 감탄의 소리가 나왔다.  비는 그쳤으나 구름이 잔뜩 내려앉아 산 위의 풍경들은 보이지 않았다. 걸어서 신트라 왕궁 방향으로 전진하면서 경치들을 둘러보았다.

 

  신트라는 포르투갈의 수도 리스본에서 북서쪽으로 28km 떨어진 인구 2만 명의 작은 도시다. 이슬람과 기독교 문명, 자연과 건축물의 조화가 아름다운 마을로 울창한 숲에 둘러 싸여있다. 녹음이 우거진 숲 속에 옛 왕궁인 신트라 성과 독일 노이슈반슈타인 성의 모델이 되었다는 페냐 성, 아름다운 정원 몬세라테 등 독특한 정취가 가득하다. 타고난 자연환경과 인간이 만든 건축물이 조화를 이루어 마을 전체가 아름다우며,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되었다. 신트라는 초기 이베리아 인들의 컬트 예배의 중심지였고, 북아프리카 무어인들의 정착지였으며, 중세에는 수도사들의 은둔처였으며, 19세기에는 유럽의 낭만주의 건축의 모범이 되었다고 한다.

 

  신트라 왕궁 가까운 곳의 성당

 

  산 위로 걸으면서 내려다본 신트라 왕궁과 주변 경치

 

  광장에서 무어인의 성으로 오르는 골목길 풍경

 

  신트라 왕궁, 엎어진 깔때기 모양이 왕궁 주방의 굴뚝이다. 

 

  내려오는 길, 그 사이 구름이 걷혀 보이지 않던 산 정상의 무어인들의 성채가 윤곽을 드러내었다. 

 

  아래 오른쪽 전망

 

  왼쪽 아래 방향. 신트라 왕궁의 원뿔형 굴뚝이 이채로워 보였다.

 

 

 

4. 성모 발현지 "파티마"

 

  신트라를 떠나 어둠이 깔린 뒤에야 성모 발현지로 유명한 파티마에 도착했다. 어둠 속 관광이란 소경 코끼리 다리 더듬는 격이라 탐탁지 않지만 어쩌는 도리가 없었다. 워낙 빡빡한 일정의 장거리 여행이다 보니, 점찍고 다니는 행사도 감수할 수밖에...  겨울철이라 해가 일찍 지는 것도 제대로 볼 수 없는 이유가 될  있겠지만... 이곳은 로마 가톨릭 교황청에서 성모 발현지로서 인정한 후로 세계적인 가톨릭 성지가 되었다.

 

  1917년 5월부터 10월까지 매달 13일이 되면 3명의 어린 목동 앞에 성모 마리아가 나타나 죄의 회개와 로사리오의 기도를 권하였다는 유래 때문에 순례지로서 알려지게 되었다. 정부는 목동들을 체포하고 순례를 금지시켰으나 1930년 레이리아의 주교가 이 사실의 신빙성을 인정하게 되면서 파티마의 로사리오 성모에 대한 숭앙은 세계적으로 확산되었다. 큰 십자가를 꼭대기에 세운 높이 65m의 탑이 있다. 네이버 지식백과>

 

  성모 출현시 공산주의 몰락을 예언했다고 한다. 그 증거로 무너진 베를린 장벽의 조각을 전시해 두고 있었다. 북녘의 공산주의는 언제쯤 무너지려나.  성모님의 예언이 하루바삐 우리민족에게도 실현되기를 바라는 염원으로 대성당을 찾아 내려갔다.

 

  어둠 속의 파티마 대성당

 

  성당의 내부

 

  성당 왼편에 있는 성모 발현지. 성모 마리아가 나타났다는 이곳에 한쪽 면이 터진, 작은 야외 성당을 마련하여 순례자들의 방문을 돕고 있다.

 

  발현지에서 올려다본 대성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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