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해외여행

살라망카와 세고비아

  포루투갈 파티마에서 출발하여 다시 스페인의 살라망카를 경유하여 마드리드로 가는 일정이다. 길게 느껴졌던 스페인 여정도 이제는 막바지에 접어들었다. 빡빡한 스케쥴에 장거리를 이동하는 강행군으로 지쳐서 집으로 돌아가고 싶은 마음도 간절했지만, 한편으로 가는 곳마다의 경치들이 모두 신세계였기 때문에 아쉬움도 있었다. 

 

  살로망카는 마드리드 북서쪽에 있는 대학촌을 중심으로 발전한 도시이다. 한니발의 점령 이래, 로마의 군사도시였으나, 고트와 이슬람의 지배를 거쳐 1085년 스페인 영토로 회복되었다. 13세기에 알폰소 대주교에 의해서 살라망카대학이 창립된 이래 학술 ·문화의 중심지로서 발전하였다.

 

  1218년을 기준으로 살라망카 대학교는 유럽에서 세 번째로 오랜 역사를 가졌다. 또  1254년 알폰소 10세에 의해 Universidad라는 이름을 얻어 유럽에서 최초로 ‘대학이라는 이름을 사용하였다.  2011년 현재 살라망카 대학교에는 약 2,500개의 학과가 있다. 살라망카 대학교는 스페인 최상위권의 대학일 뿐 아니라 유럽에서도 손꼽히는 명문대학으로 평가받는다. 유학생들을 위한 스페인어 코스를 잘 갖추고 있어 유학생들이 많다.  15세기 유명한 천문학자인 아브라함 자쿠투, 20세기 스페인을 대표하는 시인 페드로 살리나스 이 세라노 등이 이 학교 출신이다.

 

  살로망카에는 12세기 로마네스크 양식의 대성당을 비롯, 16세기에 건립된 고딕 양식의 대성당과 로마 시대의 다리와 극장 등 수많은 명승고적이 남아 있다. 그 가운데 18세기에 만들어진 마요르 광장은 스페인에서도 가장 아름다운 광장으로 꼽힌다고 한다. <네이버 지식백과>

 

  로마시대 건설했다는 다리를 지나 대성당을 왼쪽으로 돌아 시내 중국식당에서 뷔페식으로 점심을 먹었다. 사람들이 많은 탓에 떨어진 음식들을 빠르게 채워 놓지 않아서 뒤에 섰던 사람들은 음식이 부족했다. 이질적인 사람들이 모여 구성된 여행그룹이라 양보심이 부족한 탓일 게다.  점심을 먹고 골목 밖으로 나오니 중년의 거지가 괴성을 내며 손을 내밀었다. 사회복지시설이 잘 되어 있다는 나라에도 부랑인이 있었다. 대학을 중심으로 이루어진 도시였기에 볼거리도 많았으나 시간의 한계로 자세히 볼 수는 없었다.  짧은 시간 안에 낯선 도시 한가운데서 눈앞의 경치만을 눈으로 주욱 훑고 나서 떠나는 여행도 피로감과 짜증감을 불러왔다. 그러다 보니 개인적 인생사까지 늘어놓는 가이드의 멘트가 오히려 불편해졌다.  아름다운 도시를 스치고 지나는 것이 안타까워 개인적으로 점심 먹는 시간을 줄여서라도 도시들을 더 느껴보고 싶은 심정이었다.  

 

   파티마에서 살로망카로 가는 길

 

  휴게소, 마켓에 걸려있는 하몽

 

  살라망카 시내 '대세계주가'라는 중국식당,  이곳에서 뷔페식 점심을 먹었다. 큰 간판 없이 깔끔한 거리가 그저 부러웠다.

 

  점심을 먹었던 골목 안 식당. 오토바이 청소차가 골목 안을 쓸고 있다. 기동성과 공간성이 좋아 우리나라에도 필요해 보였다.

 

  플라자 마요르로 가는 길목

 

  프라자 마요르

 

  광장의 시청사

 

  광장으로 들어가는 통로

 

  성당 안에 들어가고 싶었지만, 시간 때문에 외양만 보고 떠났다.

 

  마요르 광장 주변

 

  차창밖, 살로망카 대성당을 지나 다음 행선지인 세고비아로 향했다. 건축공학에 대해서 문외한이라 건축물을 보곤, 그저 웅장하다, 우아하다, 예쁘다, 아름답다는 표현밖에 할 수 없는 것이 안타깝다. 도시마다 중세풍의 건물들이 즐비해서 그저 입만 떠억 벌어지곤 했다. 우리나라의 경우 가장 오래된 건축물이 고려 때 지었다는 부석사 무량수전 정도로 알고 있는데, 여기에선 기원전 로마시대 구조물부터 중세 건축물들이 수두룩하니, 그 우열을 가늠하기도 어려울 것 같다. 터키에서 놀랐던 것 이상이었다. 가는 곳마다 아름다운 건물들이 즐비하니, 음식으로 비유한다면 산해진미가 도처에 그저 가득한 모양새다. 역사적 유적이 초라한 우리의 현실을 돌이켜 본다면, 우리나라 관광산업에 대해서 깊이 있게 재고해볼 일이다.  

 

  어린 시절 세고비아 기타로 많이 들었던 이름 세고비아. 그런데, 세고비아엔 기타 제작소가 없단다.  본디 우리 여행 일정엔 세고비아가 없었다. 일핸 중 세고비아를 갔던 분이 세고비아행을 건의해서 의견을 모아 세고비아를 경유하기로 했다. 없던 곳을 들리면 당연히 추가요금이 들어가기 마련이라 1인당 20유로씩 각출하기로 했다. 세고비아는 마드리드 북서쪽 60km 지점에 있는 과다라마산맥 기슭 해발 1,000m 지점에 있다.  BC 700년 무렵부터 이베리아인이 거주하였으며 BC 1세기 말에 로마의 식민지가 되었다.  11세기에 이슬람 세력이 침입하여 도시가 파괴되었으나 카스티야왕국의 알폰소 10세가 이를 회복하고 이곳을 수도로 정하였다. 중세에는 양모공업이 번창하였으며, 현재는 농업을 중심으로 하여 도자기와 직물제조가 이루어진다. 도시 곳곳에 로마인들이 세운 수도교(水道橋)와 알카사르 성, 대성당 등 고대와 중세의 건축물이 많이 남아 있다.

 

  세고비아로 가는 길, 해발 1000m가 넘는 곳이라 산 위에 흰 눈이 덮여있었다. 1936년부터 1939년까지 일어났던 스페인 내란 때 이곳에 왔던  미국의 종군기자 헤밍웨이는 이 지방을 배경으로 "누구를 위해 종은 울리나"를 창작했다고 가이드가 전했다. 

 

   세고비아 알카사르 성(백설공주의 성)

  알카사르 성은 로마시대부터 비롯된 것으로 짐작하며 12세기, 13세기, 19세기에 확장 복원되었다. 높이 80m의 망루와 궁전 등이 갖추어져 있으며 움직이는 다리를 지나 성으로 들어갈 수 있다. 스페인에서 가장 아름다운 성으로 불리지만 수많은 전쟁을 치른 요새로 사용되기도 하였다. 월트 디즈니의 영화 《백설공주》에 나오는 성의 모델이 되었다고 해서 '백설공주성'이라고 불리기도 한다. 세고비아 서쪽 시내를 끼고 흐르는 에레스마강과 클라모레스강이 내려다보이는 언덕 위에 있다.   아름답기가 독일 퓌센의 노바인슈타인성과 쌍벽을 이룬다는데, 내 보기에는 퓌센의 노바인슈타인 성(백조의 성)이 훨씬 낫다.

 

  이곳은 옛날 전략상 요새가 있던 곳이며, 14세기 중엽 처음으로 성이 건축된 뒤 수세기에 걸쳐 알카사르에 살았던 왕들에 의하여 증축과 개축이 거듭되었다. 1 6~18세기에는 알카사르 일부가 감옥으로 이용되기도 했으며, 1862년에 화재로 불탄 것을 복원했다. 스페인 전성기에 즉위한 펠리페 2세는 1570년 11월 14일 이곳에서 아나 데 아우스트리아와 결혼식을 올리기도 했다. 성 내부의 방들에는 옛 가구와 갑옷, 무기류가 전시되어 있고 회화·태피스트리들이 있단다. 

 

  수도원 담장 위에서 찍은 사진, 전망이 제일 좋다는 가이드의 말을 쫓아서 수도원 안을 헤집고 다녔으나, 헛말이었다. 그래서 언제나 가이드 말은 믿거나 말거나...

 

  알카사르 성 옆에 있는 수도원

 

  알카사르 주변으로 들어오는 도로의 관문, 빗방울이 오락가락하더니 갑자기 우박이 쏟아졌다. 고원지대라 비 대신에 우박이 내리나 보았다. 내겐 비보다 우박이 갑절은 나았다.

 

  버스를 타고 이동하여 로마시대의 수도교(水道橋)를 보러 갔다. 이 수도교는 로마 트라야누스 황제(재위 98∼117년) 때 건설되었으며 1906년까지 고지대에 물을 공급하는 역할을 하였다. 128개의 2층 아치로 이루어져 있으며 전체 길이 813m, 최고 높이 약 30m로서 다듬은 화강암을 끼워 쌓아 올렸다. 아치 윗단 니치 부분에는 성인 조각상이 모셔져 있다.  터키 이스탄불에 있는 로마 수도교보다 그 규모가 높고 넓어 그저 놀랍기만 했다.  또, 지금까지 보존되고 있다는 현실도 우리로서는 상상하기 어려운 일이었고...

 

  화강암으로 까마득히 아치 형태로 쌓아 올려 물길을 잇는 다리를 만들었는데, 그것이 현재까지 보존되고 있다는 것이 놀라울 뿐이었다. 수도교 가운데 세운 성인 조각상이 있다.

 

  수도교와 이어진 로마의 성곽

 

  수도교 밖 풍경

 

  수도교 밖에 있는 기념 조각상- 늑대 젖을 먹고 자랐다는 로마 건국 설화를 조각으로 기념하고 있었다.

 

  인근의 작은 성당들

 

 세고비아 대성당. 대성당은 1525∼1768년에 걸쳐 고딕 양식으로 건설되어  1985년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되었다.

 

  세고비아 대성당과 거리의 조각상, 조각상의 주인공은 세고비아의 유명한 요리사란다.  스페인은 거리마다 분수대가 넘치고 정교한 조각상들이 도시를 아름답게 꾸미고 있었다. 세월이 가면 , 흘러간 세월만큼 고고한 아름다움이 넘쳐흐를 것이다. 요란한 광고판들과 성냥갑같이 일률적인 시멘트 고층 건물들만 넘치는 우리나라 도시들의 현실들을 보면 고상함이나 예술성들을 찾아보기 어렵다. 마래를 내다보고 아름다운 건축물들을 짓는다면 그것들이 미래에 우리의 관광자원이 될 텐데...  조급증에 빠져 멀리 보지 못하고 눈앞의 이익만 좇는 우리의 세태가 그저 안타까웠다.

'해외여행' 카테고리의 다른 글

중세 성곽 도시 톨레도  (4) 2014.02.12
콘수에그라  (4) 2014.02.11
포루투갈  (2) 2014.02.09
세비아  (4) 2014.02.08
모로코  (8) 2014.02.0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