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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술의 향기

시(詩)와 철학(哲學)

 해안분지에서 되돌아 나올 때는 무겁던 하늘에서 기어코 빗방울이 떨어졌다. 양구에서 하룻밤을 묵으려는데, 숙소 찾기가 어려웠다. 양구 읍내로 나와 시장통 안으로 들어섰으나, 주차장 있는 모텔이 눈에 뜨지 않아 좁은 시내를 몇 바퀴 빙글빙글 돌았다. 모처럼 들어갔던 곳은 방이 없다고 하기도 하고... 이유인즉슨 양구에서 무슨 체육대회가 열린단다. 체육대회가 열리면 지역경제야 다소 활성화되겠지만 찾아드는 나그네들은 푸대접을 받게 되니 여행자 입장으론 그리 반가운 일은 아닐 터였다. 이윽고 군청 부근 야산 아래에 있는 모텔에 숙소를 정했는데, 방이 여간 깔끔한 게 아니었다. 대부분 모텔들이 하룻밤 대충 재우고 돈이나 받는 현실임에 비해, 주인의 깔끔함이 드러나는 곳이어서 고마운 생각까지 들었다.  

 

 

 저녁 식사 후, 일찍이 잠들었다가 새벽녘에 깼는데, TV를 켜면 잠자는 식구들이 깰까 봐, 살며시 핸드폰을 열어 개표상황을 보았다. 점잖지 못하게 몸을 꼬며 상대측 성대모사까지 하면서 네거티브에 열중하던 시장 후보는 일찌감치 나가떨어진 모양이었다. 그런 사람이 대통령까지 넘본다는 현실이 한심스럽다. 우리 지역은 박빙의 승부여서 괜스레 긴장이 되고 가슴이 조마조마해졌다. 투표만 끝나면 누가 되어도 나와는 거리가 먼 사람들이 되고 말 것이었다. 선택된 사람들은 다시 나으리가 되어 거들먹거릴 것이고, 서민들은 멀리서 그들을 바라만 보다가 어쩌다 그들이 내미는 악수에 머리를 조아리며 황공해할 것이었다. 그래도 백성들이 쬐끔이라도 존중받는 나으리를 보고 싶다. 진정으로 서민들을 위해 노력하는 공복들을 지척에 두고 살고 싶다.

 

 

 날이 밝아 양구군 관광 안내 팸플릿을 펼쳐보며 행선지를 찾았는데, 이해인 시문학과 안병욱 김형석 철학의 집이 있대서 그곳에 가보기로 마음먹었다. 그리고 한반도 정중앙이라는 양구에서 인위적으로 만든 인공습지 한반도 섬도 찾아볼 것이었다.  

 

 

 

  이해인 수녀님이 양구사람이라는 것은 여기서 처음 알았다. 이해인 시인은 1945년 6월에 양구에서 태어났는데, 6.25 때 아버지가 납북되었고, 가족은 부산으로 피난을 갔다. 그 때문에 부산성남초등학교에 다니다가 서울이 수복된 후 서울 창경초등학교에 다녔다. 이때 언니가 가르멜 수녀원에 들어갔다. 이후 1958년 풍문여중에 다니면서 시 〈들국화〉를 썼다고 한다. 이후 성의여고를 졸업한 후, 1964년 올리베 타니의 성 베네딕토 수도회에 입회하였다. 세례명은 클라우디아이다. 입회한 이후부터 '해인'이라는 필명으로 가톨릭에서 발간하는 《소년》지에 작품을 투고하기 시작했다. 1968년에 수도자로 살 것을 서원한 후, 한국 천주교 중앙협의회에서 경리과 보조 일을 하였다.

 

 

  이후 필리핀의 성 루이스 대학교에서 영문학과 종교학을 공부하고, 귀국 후 1976년에 첫 시집인 《민들레의 영토》를 발간하였다. 서강대학교 대학원에서 종교학을 공부하면서 타 종교까지 시야를 넓혔고, 〈시경에 나타난 福 사상 연구〉라는 논문을 집필했다. 1983년 가을에는 세 번째 시집 《오늘은 내가 반달로 떠도》를 발간하였다. 1992년에 수녀회 총비서가 되었다. 비서직이 끝난 1997년에 '해인글방'을 열어두고 문서 선교를 시작했다. 1998년부터 2002년까지 부산 가톨릭대학교의 교수로 지산교정에서 '생활 속의 시와 영성'을 강의하였다. 2008년에 직장암으로 항암 방사선 치료를 받으며 부산에서 장기요양 중이다. -'위키 백과'에서 발췌

 

  강원 양구군 양구읍 동수리 소재 '이해인 시문학과 안병욱 김형석 철학의 집'

 

 

  현관 안내소

 

  1층 로비에 있는 김용철의 그림과 시, 김용철 화가는 양구 사람으로 이수근 화백의 화풍을 재현하는 화가로 활동하고 있다. 화강암 돌덩이에 직접 그림을 그린 작품들을 시와 함께 전시하고 있었다. 

 

 

 

 

 

 

 

  온통 민들레꽃 노란색으로 단장한 이해인 문학관

 

 

 

 

 

 

 

 

 

 

 

 철학가이자 수필가인 안병욱 김형석 교수의 방

 

 

  김형석(金亨錫, 1920년 ~ )은 수필가 및 철학자이다. 평안남도 대동 군에서 출생한 뒤 1943년 일본 조치대학 철학과를 졸업하였다. 수많은 철학적 수필을 발표하여 독자에게 큰 감명을 주었으며, 1959년 간행한 수필집 《고독이라는 병》은 베스트셀러가 되기도 하였다. 그의 수필은 현대인의 삶의 지표를 제시하기 위해 기독교적 실존주의를 배경으로 현대의 인간 조건을 추구하여 부드럽고 시적인 문장으로 엮어 독자들에게 감명을 주고 있다. 수필집으로는 《영원과 사랑의 대화》, 《오늘을 사는 지혜》, 《현대인과 그 과제》 등이 있다. -위키 백과에서

 

  김형석 교수의 방

 

 

  안병욱(安秉煜, 1920년 6월 26일 ~ 2013년 10월 7일) 철학자. 호는 이당(怡堂)이며 평안남도 용강군에서 태어났다. 1943년 일본 와세다 대학교 문학부 철학과를 졸업하였다. 1958년〈사상계〉의 주간을 거쳐 연세대와 서울대 강사를 지냈으며, 1969년 숭전대학교 교수가 되었다. 1961년부터 1962년에는 미국의 코넬 대학과 배서 대학에 교환 교수로 초빙되어 한국의 문화사를 소개하였으며, 귀국 후 숭실대 교수로 있으면서 많은 철학서를 집필·발표하였다. 1992년부터 안중근의사기념사업회 이사, 도산 아카데미 연구원 설립 대표를 맡았다. 주요 저서로 <인생사전>,〈현대사상〉,〈철학 노트〉,〈사색인의 향연〉등이 있다. 2013년 지병으로 세상을 떠났다. -'위키 백과'에서

 

  김형석 교수의 맞은 편에 있는 안병욱 교수의 방

 

 

 

 

 

 

  옥상에 있는 회의실

 

  옥상에서 바라본 양구읍 풍경

 

 철학관 앞, 오른편 산자락에 있는 안병욱 선생의 묘 표지석

 

  안병욱 교수의 묘, 작년에 조성한 탓으로 아직 떼가 정착되지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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