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예술의 향기

박수근 미술관

  양구를 찾게 된 것은 순전히 박수근 미술관 때문이었다.

 

  보통학교만 나와 독학으로 그림공부해서 화가로 입신한 그는 가히 하늘이 낸 화가라 싶다. 어려서부터 화가의 자질을 인정받은 탓에 화가로 대성하겠다는 의지를 갖고, 끝내 실현시킨 입지적 인물이 되었다. 간난과 질곡의 역사 속에서 고생을 겪지 않은 이 땅의 서민들이 어디 한둘일까마는 선생의 가난은 이 땅의 역사가 빚어낸 슬픔이었다. 어쩌면 한 끼의 식사를 위해 취업했던 주한미군 초상화부가 오히려 전화위복의 기회가 될 수 있었다. 미군 초상화로 연명하던 그를 알아본 것은 미국인 밀러부인이었다. 이후 그녀는 박수근 화백의 그림을 사주고 후원해 주는 훌륭한 스폰서가 되었다. 밀러부인은 본국으로 돌아가서도 박수근 화백의 그림들을 꾸준히 사주었고, 전시회도 열었는데, 그 그림들이 미국에서 유명해졌다. 덕분에 그는 미국에서 더 유명한 화가가 되었고, 그의 그림은 우리나라에서 가장 비싼 그림이 되었다. 역사의 질곡이 가져다준 아이러니다.

 

  박수근 선생의 호는 '美石'이다. 그는 우리 주변에 지천으로 널려있는 화강암에서 아름다움을 추구했다. 화강암 색깔을 내기 위해서, 캔버스에 덧칠을 하고 긁어내며 색깔을 만들었다. 그리고, 그 화강암 색깔 위에 단순하게 형상화한 인물들을 그렸다. 우리 주변에서 흔히 볼 수 있는 토속적인 풍경들과 이웃 사람들이 그의 그림세계였다. 그러기에 그는 한국의 밀레라 평가받는다. 그는 살아생전에 호강 한 번 못하고 고생하며 그림만을 그렸는데, 그가 돌아 간 지금, 그를 높이 평가하고 기리며 추모하니 정말 다행한 일이다.

 

  전시관 내부는 사진 촬영을 금지했는데, 선생의 목판화 전시실에선 그냥 지나치기 아쉬워 조심스럽게 몇 컷 촬영했다. 부족한 내 소견으로 화백님의 그림들을 알리는 것이 더 좋은 일이라 생각되어 감히 이곳에 몇 장 포스팅해 본다.  

 

  박수근 미술관은 밖으로 성채같이 돌담으로 외벽을 쌓고, 안쪽으로 아기자기한 유리벽으로 지었다. 지붕에는 흙을 덮고... 아마도 돌의 아름다움을 표현하려했던 화백의 뜻을 반영하지 않았을까.  

 

  안내실에서 전시실로 가는 통로

 

 통로에서 내다 본 미술관 안쪽 풍경

 

 

  탄생 100주년 기념 특별전

 

 미술관을 바라보고 앉은 화백의 동상

 

 

 

 

제 2 전시관

 

제2 전시관의 박수근 목판화전

 

 

 

거푸집을 뗀 모양 그대로,  거칠게 방치한 제2 전시관 외벽, 구멍 밖으로 보이는 박수근 미술관 외벽 돌담 

 

 

미술관 주차장에서 바라본 제 2 전시관

 

 이전 포스팅  http://fallsfogs.tistory.com/11

 

박수근 미술관   http://www.parksookeun.

'예술의 향기' 카테고리의 다른 글

반가사유상  (4) 2014.11.14
안동 이육사문학관  (3) 2014.10.03
시(詩)와 철학(哲學)  (4) 2014.06.08
2014 화랑미술제  (4) 2014.03.14
사진과 회화 사이  (8) 2014.03.1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