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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명산

  동네 뒷산 청명산을 걷노라면 산중턱 양지바른 공터에 철쭉과 황매화 진달래 군락지를 지난다. 봄이면 이곳은 풍요로운 봄향기를 만끽하게 만나는 곳이다. 이 군락지 초입에 커다란 생강나무가 있어서 철쭉보다 황매화보다 진달래보다도 노오란 새봄맞이 꽃으로 겨울을 털어내는 기쁨을 누릴 수 있었는데, 작년 극심한 가뭄 속에 말라죽고 말았다. 바라만 보는 내 처지가 너무나 안타까웠지만 어쩔 도리가 없었다. 그나마 이번 겨울 강풍에 제 몸의 무게를 이기지 못해 쓰러져 제 스스로 뿌리를 내렸던 산비탈 등성이에 눕고 말았다. 

 

  십 년이면 강산도 변한다는 말이 헛말이 아니었다. 초목들도 제 목숨을 보존하기가 그리 쉬운 건 아닌 성싶다. 이동하지 못하고 제자리에서 바람을 맞고 쓰러지거나, 비바람에 가지들이 부러지고 생채기 나며, 가뭄에 비틀어져 생명을 유지하기가 동물보다도 어렵다. 초목들을 지지해 주고 중심을 잡아주는 토양이 기름진 것도 아니다. 그저 척박해서 푸석푸석한 마사토에 무슨 자양성분이 있을까 싶다. 제 잎을 떨구어 흙과 뒤섞어 거름을 삼는 것도 그리 만만한 일은 아니다. 방부제 섞인 풀처럼 잘 썩지도 않는 제 잎사귀 때문에 영양도 공급받지 못하고, 도시의 매연과 희뿌연 황사에 햇볕도 제대로 받지 못하고 시름없이 말라만 간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연두색 이파리를 싹 틔워 푸른 숨을 쉬는 것이 참으로 용하다 싶다.

 

  양지바른 남향에 옹기종기 모여 때맞춰 꽃을 피워내는 봄꽃들... 매년 싱싱한 모습을 보이는 것이 아니다. 금년엔 무성했던 황매화 군락들이 눈에 띄게 줄어들었다. 개체수가 성글어지고 줄기에도 힘이 없어 보였다. 그러다 보니 꽃봉오리들도 생기를 잃고 시들시들한 것 같다. 멀리서 바라보면 화사해 보이지만, 가가이 다가서서 살펴보면 상처 입은 꽃잎들이 부지기수이다. 도시 주변의 숲도 생채기난 채 앓는 신음 소리를 내고 있다. 스스로 생명을 보존하기도 어려운데 사람들이 산자락부터 야금야금 개발의 삽질로 생명들을 죽이고 있다. 오늘 걷던 산속의 오솔길이 언제 쇠울타리가 쳐지고 포클레인의 삽날에 찍혀나갈지도 모르는 공포 속에 살아가고 있다. 

 

  산을 걷는 소시민들은 그저, 혀를 차며 안타까워할 뿐이다. 자연을 파헤치는 개발업자들과 지자체의 거대한 삽질을 멈출 수 없다. 간혹 등산로 입구에 개발방지 현수막을 내걸지만 사유지를 개발한다는데 어쩔 도리가 없다. 그저 그렇게 나무들은 시름시름 앓아가고, 사람들의 탐욕에 허리를 잘려가며 가뿐 숨을 쉬며 살아가고 있다.            

 

 

 

 

 

 

 

LG G3로 촬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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