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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내여행

귀로

  갑자기 일이 생겨 일정을 당길 수밖에 없었다. 그 덕에 서거차도에서 일주일여 머물다 떠난다. 좁은 섬이어서 딱히 다닐 곳도 많지 않지만, 레이다 기지가 있는 상마산조차 올라가지 못했다. 가장 멀리 가본 것이 용남 씨를 따라 상마산 너머 커그래 부근 벼랑이었다. 반나절의 벼랑체험에도 얼굴과 손등이 까맣게 그슬렸다. 흐린 날씨에 안개가 상마산 등을 타고 몰려드는 상황에서도 자외선은 살갗을 사정없이 태웠었다. 구름 없이 맑은 날을 기다려 상마산에서 올망졸망 아름다운 다도해를 담으려 했는데, 그동안 맑은 날을 만나지 못한 탓이다. 숲이 우거지고 가시나무 넝쿨들이 얽혀 산길이 험하기도 했지만 제일 두려운 것이 뱀이었다. 커크래에서 돌아오던 산고개길에서 큰 지렁이만한 새끼뱀을 발견하곤 기겁한 적이 있었다. 목이 긴 장화가 안전하다지만 익숙하지 않아 여간 불편한 게 아니어서 등산화를 신었었다.

 

  떠나기 전날 저녁에 아침배 선장에게 전화를 했다. 아침배는 하루 전에 서거차항으로 배가 들어오도록 미리 전화로 요청을 해야 한다. 새벽에 귓전을 울리는 모기소리에 손바닥으로 뺨을 치며 쫓았지만 끊이지 않고 반복해서 잉잉거렸다. 모기잡으려는 내 뺨치기 때문에 잠을 설쳤다는 내 말에 친구는 박장대소하며 풍력발전기 돌아가는 소리일 것이란다. 그것이 작년에 설치한 풍력발전기 소음이라면 청정 에너지원이라고 무작정 좋아할 일도 아닐 성싶었다. 일찍 잠을 깨서 뒤척이다가 6시에 다시 선장에게 전화를 했다. 혹시 선장이 잊었을까 봐 확인전화를 하는 것이 관습이랜다. 이른 확인 전화에 선장이 짜증을 냈지만, 배는 틀림없이 들어올 것이었다. 친구가 챙겨주는 조반을 건성으로 먹고 부두로 나와 7시 20분 배를 기다렸다. 떠나는 날 아침, 하늘엔 구름 한 점 보이지 않았고 바람도 없이 안개조차 없었다. 아쉬움이 뒤털미를 잡았지만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

 

  이른 아침 서거차 방파제 안의 물결은 호수처럼 잔잔했다.

 

 잔잔한 물결을 가르면서 어선이 파문을 일으키며 밖으로 나갔다. 출렁이는 물결에 부딪히는 아침햇살이 참으로 고왔다.

 

  아침햇살이 긴 그림자를 뻗으며 마을에 내리지만, 정적만 감돌고 있어 서남부 먼바다 작은 이 섬엔 시간조차 멈춘 듯했다.

 

  새벽조업을 마친 작은 어선은 벌써 항구로 들어오고 있었다.

 

  배웅하는 친구를 멀리하고, 드디어 배에 올라 서거차항을 빠져나갔다. 이제부터 집까지 가야 할 고단한 여정을 계산하며 3층 갑판에 올라 먼바다를 바라보았다. 배가 항만 밖으로 나가자 제일 먼저 병풍도와 세월호 인양작업선이 눈에 들어왔다. 

 

 

 

섬사랑 10호 뒤쪽으로 보이는 맹골군도

 

  배 뒤편으로 상하죽도와 서거차도 동쪽 벼랑이 점점 멀어졌다.

 

  전방에 관매도가 뿌옇게 앉아있고 동거차도 하늘엔 멀리 제주에서 서울 가는 여객기가 비행운을 뿜으며 날고 있었다. 저 비행기 안에 있는 사람들은 40분 후면 김포에 도착할 텐데, 내 도착시간은  가늠할 수 없었다. 

 

  서거차도는 점점 멀어지고 배는 동거차도 항만으로 들어갔다.

 

  동거차 항만 안에서 바라보이는 조도 부근의 바다

 

  동거차도를 벗어나려 하자, 여객선 오른편에 마의 구간인 세월호 침몰해역이 보였다.

 

  세월호 인양작업을 하는 바지선과 오른쪽 끝에서 대기하고 있는 보급선, 서거차도에서 보였던 것이 인양보급선 뒤꽁무니였었다.

 

 

 

 

 

  여객선은 멀리 병풍도와 동거차도를 남겨두고, 오른쪽에 있는 관매도를 들리지 않고 조도 방면으로 방향을 틀었다.  

 

  호수처럼 잔잔한 전방의 조도 해역

 

  대마도에 들려 할머니 두 분을 태웠다. 해안가에  집들이 올망졸망한데, 사람이 살지 않는 폐가들이 간간이 보였다.

 

  배 오른편에 상조도 전망대가 보였다. 날 좋은 날이면 서거차도에서도 뚜렷이 보이는 전망대이다.

 

  배는 소마도를 들려 손님 몇 분을 태우곤 경적을 울리며 관사도를 경유했다. 눈앞에 섬들을 모두 들리는 여객선에 조도에서 출항하는 배를 행여 놓칠까 봐 조바심이 일었지만, 그 섬에서 기다리는 손님들도 배가 들어오기를 학수고대할 생각을 하면 내입장만을 생각할 수 없는 일이었다. 

 

  관사도에서 조도로 행하는 여객선 후미에서 거차군도는 아련해 보였다.

 

 

  하늘에는 남쪽을 향하는 여객기 비행운이 경주하듯 날리고 있었다.

 

  상하조도를 잇는 다리를 지나 하조도 창유항을 목전에 두고 입항준비를 하고 있었다.

 

  조도 창유항에 9시 15분경에 내렸다. 팽목가는 배는 9시 30분.  얼른 매표소에서 표를 사서 배를 타곤 객실에서 팽목까지 누워서 갔다. 10시 10분 팽목항에 발을 딛자 내륙에 다달았다는 안도감에 마음이 편안해졌다. 모로 가도 서울에 간다고 여기서부터는 교통이 기상조건과 별 상관없이 이루어질 터였다. 여객선 손님들을 기다리고 있던 시내버스로 진도읍에 11시쯤 도착했다. 서거차도에서 진도읍까지 네 시간쯤 소요되었다. 진도터미널에서 서울 가는 직행버스가 네 번 있는데, 나랑은 시간이 맞지 않았다. 정안휴게소에서 환승하려던 생각은 그저 생각으로만 끝났을 뿐이었다.  

 

  다음 경유지를 목포와 광주를 두고 갈등하다가 수원행 버스가 많을 광주로 가기로 했다. 광주행 11시 15분 버스를 탔다. 광주까지 두 시간 정도 소요된다니까 검색해 본 13시 30분 수원행 버스를 탈 수 있겠다 싶었다.  

 

  진도읍 터미널 시내버스 시간표

 

  13시 10분에 광주에 도착, 곧바로 매표소에서 13시 30분 수원행 고속버스 승차권을 구입했다. 대기 시간이 짧아 점심을 먹을 수 없었다. 대합실 편의점에서 간단한 요기거리와 음료를 사서 13시 30분 버스를 탔다. 수원까지는 세 시간 십분 정도 소요된단다. 도착시간이 16시 40분 경이라고 버스 TV에 안내문이 나왔다. 여객기 비행 안내처럼 버스 안  TV 아래 자막으로 틈틈이 출발 시간, 도착예정시간이 안내되었다. 정안 휴게소에서 잠깐 쉰 다음 수원까지 직행했으나, 천안 삼거리부터 정체되어, 오후 다섯 시가 조금 넘어 수원 터미널에 도착했다. 스피드 시대임에도 점심 먹을 시간도 없이 열 시간을 넘겨 집에 도착하고 보니, 오늘 하루의 여정이 그저 아득하게만 느껴졌다.  

 

  서늘하고 청정한 서남부 먼바다 도서지역보다 도시의 열기는 뜨거웠고, 매캐한 미세먼지에 시야까지 답답했다. 일주일여 만에 다시 답답한 도시의 일상으로 돌아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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