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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원화성

정조의 꿈

  모처럼 화성문화제 야간 행사 구경을 나갔다. 화성 행궁마당과 방화수류정 용연, 창룡문 앞뜰에서 각각 행사가 진행된다고 해서, 창룡문 앞 연무대로 나갔다. 차량통행을 제한해서 시내버스를 타고 가, 창룡문 앞에서 내려걸어 들어갔다. 행사 한 시간 전임에도 행사장 앞자리는 이미 다 차버려 사진 찍을 자리 찾기가 어려웠다. 하는 수없이 가장자리 셋째 줄에 앉아서 시작을 기다렸다. 앞으로 두 줄은 일반인들이 앉지 못하도록 제한하고 있었다. 시작시간이 임박해지자 한 무리의 사람들이 앞자리에 앉았는데, 그들의 정체가 궁금해졌다. 잠시 후 시장이 나와서 질서정리하는 경찰들을 격려하며 악수를 건넨 후, 앞자리 앉은 사람들과 손을 잡으며 인사하고는 휑하니 사라져 버렸다.  

 

  민주화된 세상임에도  늦게와서 선택받은 앞자리에 미안함도 없이 앉는 사람들은 누구였을까. 그리고 시장은 그들에게만 인사하고 사라져야 하는 건지 쉽게 납득되지 않았다.  뽑히기 전과 뽑힌 후의 행동이 저리 다르다는 것이 그저 놀라울 뿐이었다. 대선을 앞두고 대선 후보들이 재래시장을 비롯하여 곳곳을 방문하며 악수하고 눈 맞추며 머리를 숙이던데, 선거 전에만 그렇게 행동하곤 뽑힌 후엔 독불장군 안하무인이 되는 우리나라 정치현실이 우습기만 하다. 인기투표 하는 것도 아닌데, 정책이 아닌 동정과 인정으로 표를 얻으려 하고, 당선된 뒤에 오리발을 내밀어도 찍어준 자신의 탓을 하지 못하는 어리석음은 선거 때마다 반복된다.

 

  행사가 시작될 무렵, 비어있는 측면의 맨 앞자리로 이동했다. 뭘 먹고 살자고 하는 짓도 아닌데, 그까짓 사진 찍는답시고, 요란을 떠는 내 자신이 우습기도 했다. 사진 찍는 사람들이 우르르 몰려들어 경쟁하듯 카메라를 들이대고 있었다. 측면이다 보니, 우리 앞에서는 크레인을 타고 TV 촬영하는 사람과 보조 스텝들이 어지럽게 공연장의 동선을 자주 막아섰다. 너무 짜증이 나서 도중에 포기하고 집에 오려 마음먹기도 했었다.  무거운 삼각대도 동작 촬영에 도움이 되지 않아 중간에 접어버렸다. 대신에 감도를 올려 초점을 맞추려 애썼다. 망원 줌을 바꿔가면서 찍었는데, 렌즈 바꾸는 것도 쉽지 않았다. 결국 사진은 거칠고, 초점이 빗나간 것이 많았다. 빠른 동작을 찍기 위해선 고속 촬영이 되어야 할 텐데... 그것도 원거리에서 망원 줌으로 해결하려 하다 보니 시행착오를 겪고 말았다. 수시로 바꾸는 조명 때문에 감도 조절도 쉽지 않았고...  

 

  행사 내용은 "정조의 꿈"으로 화성 축성 후, 정조대왕이 화성 연무대에서 장용군 군사들의 야간 훈련을 독려하며, 훈련 후 병사들에게 연회를 베푼다는 것이었다. 수많은 병사들과 무용수들이 출연하고, 연출을 위한 조명과 각종 설비에 꽤 많은 예산이 들었겠다.

 

  10월 6일 오후 8시-9시 30분  수원화성 창룡문 앞  

 

 기마 무술 시범

 

 

 

 

정조의 호위부대 장용영 군사들의 무술 시범

 

정조대왕 행차 의식

 

 

 

 

 

 

 

 

 

 

 

 

 

 

 

 

 

군사 동원 전투 훈련

 

 

 

 

 

 

 

 

 

 

 

 

 

 

 

군사훈련후, 병사들을 위한 위로 공연

 

 

 

 

 

 

 

 

  특권의식이 없는 사회가 되었으면 좋겠다. 아군과 적군의 전투 훈련 시범을 할 때, 성문 앞에서 미소를 지으며 구경하는 사람들을 자세히 봤더니 군복 입은 군인들이었다.  아마도 아군과 적군으로 분장한 군졸들은 군인들이었나 보다. 그러고 보니 수백의 민간인들을 이렇게 동원하기가 쉽진 않았겠다 싶다. 그래서인지 성문 앞에서 부하들의 활극을 높으신 양반께서 즐기고 계셨던 모양인데, 전체적으로 보면 옥의 티로 보였다. 참관을 하려면 객석 앞에서 관람을 하던지, 아니면 무대의 측면에서 지켜보면 될 것을, 무대의 한가운데, 성문 앞에서 아래를 내려다보는 모습은 옳지 않다고 생각한다.

 

  여름에 서안에 갔을 때, 서안 화청궁에서 자연을 무대로 "장한몽"을 공연하던데, 이야기 줄거리는 웃기지도 않았지만 그 연출이 황홀하도록 아름다웠었다.  화성문화제 "정조의 꿈"을 보니 이것도 이야기를 만들어 좀더 극적인 연출을 한다면, 훌륭한 공연예술로 승화시킬 수 있을 성싶다. 자신의 개혁의지를 실험하다 완성하지 못하고 비운에 돌아간 정조대왕의 이루지 못한 꿈 이야기는 봉건시대의 패륜적 불륜을, 현대에 들어서 돈벌이를 위해(그것도 공산주의 국가에서) 아름다운 사랑으로 그려낸 당현종과 양귀비의 어설픈 사랑놀음보다 더 뛰어난 걸작이 될 수 있을 것이란 생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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