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국내여행

예산 오석산 화암사

 추사기념관에서 길을 물어 8분 여 거리에 있는 오석산 화암사에 들렸다. 화암사는 추사의 증조부인 김한신이 중건하여 집안의 원찰로 사용했었다. 겉으로는 절집보다는 사대부 저택처럼 보였다. 바깥채를 통해 안으로 들어서자 대웅전과 약사전이 나타났다. 절의 규모는 암자처럼 작고 아담했다. 텅 빈 주차장에 나 홀로 차를 대니 절집의 털북숭이 백구가 짖지도 않고 반가운 듯 앞발을 번쩍 들고 달려들었다. 행여 물릴까 살살 달래며 이리저리 피했다. 인기척에 안에서 비구니 스님과 여보살님이 나오셨다. 인적이 드물다 보니 불현듯 들어서는 탐방객조차 낯선 모양이다. 담장처럼 둘러싸인 바깥채 가운데 원통보전이 있고, 문안으로 들어서니 비로소 법당을 만날 수 있었다.

 

 대웅전 뒤에 병풍처럼 바위가 둘러 섰는데, 이곳에 추사가 돌에 새긴 글씨가 두 점 남아있다. 그리고 병풍바위에서 300여미터 거리의 내리막길 능선 큰 바위에도 한 점 새겨져 있었다. 아마도 추사는 소년시절, 집에서 가까운 이 화암사에 들러, 병풍바위 능선을 오르내리며 상상의 나래를 펼친 듯하다. 24 세대 중국사신으로 가는 아버지를 따라 연경에 갔다가 스승으로 삼은 노학자 옹방강을 흠모했었던 모양이다. 바위에 새긴 글씨들은 모두 옹방강을 따르려는 자신의 의지를 새긴 것으로 보인다.  '소봉래'라 쓰인 바위까지 능선을 따라 내려갔다가 화암사로 되돌아왔다. 병풍바위 위에서 내려다보니, 스산한 서쪽 하늘에서 기울어가는 저녁 햇살이 화암사와 그 아래로 희뿌연 겨울 들판에 어둠을 재촉하고 있었다.   

 

  화암사 안내문

 

 사대부 살림집 같은 바깥채, 가운데 원통보전이 있다.

 

 

대웅전 뒤, 병풍바위

 

 

  화암사에서 오석산 능선을 타고 300여 미터 아래 바위에 암각한 추사 글씨, 노스승 옹방강을 몹시 흠모했었는 듯...  옹방강이 '봉래'니까 추사는 자신을 '소봉래'라 적었다.

 

오석산 능선을 잇는 암석들.

 

 

병풍바위 위에서 내려다 본 화암사와 그 앞풍경

 

 

  주차장에서 올려다 본 화암사

 

바위에 새긴 글자들을 보고 나니, 평소 좋아했던 추사에 대한 존경심이 사라졌다. 추사의 사대관(事大觀)이 놀랍다. 그 시절엔 실학사상이 널리 퍼졌을 때임에도 추사는 모화사상에 취하여 고루한 특권의식으로, 중국 문인화풍을 최고의 가치로 여기며 본받으려 했다. 그런 연유로 추사는 중국 문인화와 관계없이 주체적으로 그림을 그리거나 직업적으로 그렸던 화가들을 업신여겼다. 그러고 보면. 제주도 유배지에서 자신의 곧은 절개를 표상화했다는 '세한도'도, 그림을 받은 이상적이 이듬해 북경에 가서 장악진(章岳鎭), 조진조(趙振祚) 등 중국의 명사 16명의 찬시(讚詩)를 곁들어 놓은 덕에 힘입어 우리 조선에서 더욱 유명해진 건 아닌지 모르겠다.   

  동양화에 대하여 문외한이지만 소동파를 석가님과 동격으로 생각하며 연모하고, 스승으로 삼은 청나라 옹방강을 흠모하여 조선의 옹방앙이 되고자 했던 추사는, '봉래'가 호인 옹방강을 따라 자신을 '소봉래'라 했다는 것은 그의 사대관을 단적으로 보이는 예이다.  그러고 보면 당대 조선의 풍속을 그리던 단원 김홍도나 혜원 신윤복, 그리고 중국 화풍과는 달리 창의적으로 눈앞의 자연을 있는 그대로 그리려 노력했던 겸재 정선이 독창적이며 한국적인 화가들이었다. 중국 북송의 미불, 원말의 황공망과 예찬, 청나라 석도 등의 화풍과 남종문인화의 정신이 바탕이었다는 추사의 세계관이 그의 제자 소치 허련에게로 이어졌다는 청해 선생의 이야기를 듣고는 그만 할 말을 잃고 말았다. 진도 운림산방에서 좋은 감정으로 감상했던 소치 허련은 원말의 '대치' 황공망을 본받으라고 '소치'라는 호를 내려 준 추사와 함께 중국화풍을 모방하고 흉내 낸 것에 지나지 않겠다는 생각에 마음이 편치 않았다.

 

'국내여행' 카테고리의 다른 글

화성시 매향리 역사 기념관  (3) 2020.03.24
화성시 우정면 매향리  (3) 2020.02.29
예산 추사고택  (0) 2020.01.15
예산 화순옹주 홍문  (2) 2020.01.15
대관령 하늘목장  (2) 2019.10.1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