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韓國의 城

공주 공산성

    청명한 날씨 덕에 석장리에서 가까운 공주 공산성으로 이동했다. 공산성 서문인 금서루에서 북쪽 공산정 방향으로 성곽을 따라 북동쪽 -> 동쪽-> 남쪽-> 서쪽 성벽으로 한 바퀴 돌아 내려왔다. 금강변 남쪽 산세를 따라 성을 쌓아서 높고 낮은 지형에 따라 성벽길의 높낮이 굴곡이 대단했다. 특히 금강변의 북쪽 성곽길은, 높낮이가 심해서 오르내리기가 힘들었다. 동북 쪽의 지형이 높아 북동쪽에 오른 뒤, 남서쪽으로 내려오는 길은 비교적 순탄했다. 지난가을에 이곳 구석구석을 돌아본 탓으로 특별한 새로움은 없었다. 다만 날씨가 좋고 녹음이 어우러져 눈앞 풍경이 풍요로웠다. 

 

 

  공산성은 웅진 백제 시대 왕궁이 있던 곳이다. 고구려 장수왕의 공격으로 한강유역을 빼앗기고 수도 한성 위례가 함락된 백제는 475년에 이곳 웅진으로 수도를 옮겼다. 웅진은 근처에 금강이 있어 방어에 매우 유리한 도시로, 당시 고구려에 쫓기던 백제가 수도로 삼기에 적합하였다. 이후 웅진은 동성왕에서 무령왕을 거쳐 성왕이 수도를 사비로 옮기는 538년까지 60년간 백제의 수도 역할을 하였다. 조선조에 이르러 인조가 반정으로 왕위에 오른 지 10개월 만인 1624년 논공행상에 불만을 품은 이괄이 난을 일으켜 한양에 입성하자 왕이 피란한 곳이 이곳 공산성이었다.

 

  반정 후, 인조는 도원수 장만(張晩)에게 수시로 후금의 동태와 경비 상황을 보고받았고, 경비를 강화하기 위해 당시 공석이던 부원수 자리에 이괄을 임명하면서 평안 병마절도사를 겸하게 했다. 이괄은 평안도 토병(土兵) 및 전라도에서 차출된 부방군(赴防軍) 1만 2,000명, 항왜(降倭, 왜란 때 항복한 왜군) 130여 명을 휘하에 두고 영변에 주둔하여 군사를 훈련시키고, 성채를 보완하는 등 경비를 강화했다.

 

  그러나, 이괄의 아들이 역모혐의로 잡혀갈 처지에 이르자, 이괄은 영변을 찾아온 금부도사 일행을 죽이고, 휘하의 군사들을 이끌고 반란을 일으켰다. 잘 훈련된 이괄의 반군이 승승장구하며 한양 가까이 이르자, 인조는 비빈, 대신들과 함께 이곳 공산성(公山城)으로 피란했다. 이괄이 이끄는 반란군은 영변에서 군사를 일으킨 지 19일 만인 2월 10일 한양에 입성했다. 이괄은 선조의 아들 흥안군(興安君) 제(瑅)를 왕으로 옹립했다.

 

 이괄의 뒤를 쫓아온 장만과 정충신, 남이흥(南以興)이 각지의 관군 연합군을 이끌고 안현(鞍峴, 길마재)에서 진을 치고, 이괄의 반군과 전투를 벌인 결과 날씨와 바람 탓으로 이괄의 군대가 크게 패하였다.  전투에서 패한 이괄은 40여 명을 이끌고 광주를 거쳐 이천 묵방리로 도주했다. 그날 밤 반란군의 이수백(李守白), 기익헌(奇益獻) 등은 이괄과 아들 이전, 한명련 등의 목을 베어 관군에게 투항함으로써 반란은 평정됐다. 하지만 한명련의 아들 한윤이 후금으로 달아나 인조 정권의 부당성과 친명 외교를 거론하며 조선 침략을 종용하면서, 3년 뒤 1627년 1월 후금의 군대 3만을 한양으로 인도하는 길잡이가 되어 정묘호란을 일으켰다. 평안 병마절도사였던 이괄의 반란으로 평안도 병력이 약화되었고, 후금의 군대를 지름길로 인도한 한윤 때문에 조선군은 제대로 싸우지도 못하고 패퇴하여 인조는 또다시 강화로 소현세자는 전주로 피란하기에 이르렀다. 반정으로 왕위에 오른 인조는 이후 병자호란까지 겪으며, 청나라에 굴욕적 항복을 하였고, 시샘과 의심이 많아 아들 소현세자를 죽게 하였고, 세자빈 강씨를 사사하는 등 수많은 사람들을 처형하여, 선조의 뒤를 이어 조선 최악의 왕으로 꼽힌다. 

 

 

공산성 주출입구인 서쪽 성벽과 서문인 금서루

 

공산성 북서쪽 제일 높은 곳의 공산정, 금강의 아름다운 풍경이 한 눈에 내려다 보이는 운치 있는 정자이다. 

 

공산성 북문, 북문 밖은 금강

 

공산성 동북단

 

공산성 동북녘 평지에 자리한 임류각. 웅진백제 시대 왕과 신하들이 풍류를 즐겼다고 한다.

 

동북쪽 끝단부터 한성 백제의 풍납 토성처럼 토성을 쌓았는데, 토성과 석성이 만나는 지점에 위치한 동문 영동루

 

영동루 아래 공산성 남문인 진남루

 

조선시대 이괄의 난을 피해 피란해 온 인조대왕이 이곳에서 시름 걱정했다는 쌍수정

 

서문인 금서루와 공산정

 

 

2020년 가을 공산성 ->  https://fallsfog.tistory.com/76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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