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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내여행

철원 한탄강 고석정

  이곳은 내 어렸을 때 추억이 서린 곳이다. 국민학교 때 단골 소풍장소였고, 무료할 때, 친구들과 고석정 바위 위를 오르내리곤 했다. 고석정 바위 위에 옛날 임꺽정이 숨어 지냈다는 조그만 바위굴을 다람쥐처럼 드나들던 곳이었다. 그땐, 주변의 야산은 모두 헐벗은 민둥산이었고, 고석정 위 평원은 거친 서부의 황야 같아서, 마카로니 서부영화가 유행하던 60년대 초에 만주 벌판 배경의 마적 영화 무숙자 시리즈 영화 촬영도 심심치 않게 볼 수 있었다. 또, 외팔이 왕우가 하늘을 날면서 칼을 휘두르며 한 시절을 풍미할 때, 고석정 아래에선 홍콩 영화를 모방한 우리나라 배우들의 칼싸움도 꽤나 많이 구경했었다.  영화나 TV 드라마 배경으로 고석정 주변이 나올 땐 마치 고향을 본 듯 반갑기도 한 곳이다.

 

  지금은 고석정 위 평원에 안보관광관이 세워지고, 자동차를 타고 DMZ 안을 관광하는 출발지이기도 하다. 한국전쟁 당시 사용했던 비행기와 무기들을 야외에 전시하여, 희미해지는 전쟁의 상흔을 일깨우기도 한다. 내 어렸을 때, 동네 어른들의 겨울철 부업은 지뢰 탐지기를 가지고 얼어붙은 논밭을 쏘다니며, 고철을 캐는 일이었다. 포탄 파편이나 껍데기를 캐는 것이었는데, 심심찮게 불발탄도 나오고, 전쟁 때 묻어버린 화약 구덩이도 캐내곤 했다. 따라서 우리들의 장난감은 대포 화약, 수류탄이나 연막탄 꼭지, 총알 등 무기류들이어서 들판에서 그걸 갖고 뛰며 놀았다. 그런 연유로 주민들 중엔 폭발물 사고로 손가락이나 손목을 잃은 사람들이 더러 있었다.  옛날 60년대에는 미군부대가 있던 운천부터 아스팔트가 깔렸었는데, 지금은 마을 안길까지 도로가 포장되었고, 포천 신북면부터 고속도로가 이어지니, 그야말로 상전벽해가 이루어진 셈이다.      

 

  어렸을 때부터 들었던 임꺽정 이야기를 토대로 이곳에 동상을 세웠다. 임꺽정이 고석 바위 동굴에 은신해 있다가 관군이 잡으러 올라오면 꺽지로 변신하여 강물 속으로 숨었다는 설화였는데, 실제 임꺽정이 이곳에서 활동했다는 기록은 홍명희의 임꺽정 전집에서도 보지 못했다. 코로나 바이러스 탓으로 임꺽정 동상에도 커다란 마스크를 씌어 놓았다. 가슴 아픈 시대의 해프닝이다.

 

그 사이 고석정 내려가는 문도 새로 만들었다. 

 

고석정 내려가는 협곡 비탈에 세운 정자

 

협곡 사이에 우뚝 솟은 고석

 

 고석정 아래로 내려가서 처음으로 통통배를 탔다. 1인당 5000 원, 점잖은 사공은 배를 몰며 해설까지 해주었다. 신라 진평왕 때 고석 위에 정자가 있어서 고석정이라 불린다고 이야기 해주었는데, 금시초문이었다. 세월이 흐를수록 고석정엔 전설이 쌓여가는데, 그런 현상이 어찌 고석정뿐만이겠나 싶다. 

 

배를 타고 물위에서 고석정을 바라보는 건 처음 경험하는 일이다. 10월부터는 한탄강을 따라 강 중간에 부교를 띄우고 트레킹 할 수 있도록 한다고 한다. 가을 겨울 경치가 더 아름다울 것 같다.

 

고무보트를 타고 래프팅 하던 사람들의 망중한...

 

배에서 내려 고석정 아래 모래사장으로 내려가 주변을 둘러보았다. 협곡 굽이를 돌아 내려가면 순담계곡이다.

 

협곡 위로 올라와 새로 세워진 세종강무정이란 정자에서 멀리 한탄강 협곡과 고석정을 조망했다. 

 

세종대왕께서 철원평야에서 훈련을 마치고, 이곳에서 대군과 신하 백성들에게 음식을 나누며 주연을 베풀었다고 한다. 재위 기간 19회 93일이나 이곳에서 군사훈련을 했다니, 진정으로 문무를 겸비하신 성군이시다. 그런데, 이곳이 고향인 나도 처음 듣는 이야기라 그저 신기할 뿐이었다. 시간이 지날수록 명승지에는 전설들이 쌓이고 윤색되나 보다.  신라 진평왕 때 고석 바위 위에 정자가 있었다는 이야기도 처음 듣는 이야기였다.  신라 진평왕 때면 삼국시대로 패권경쟁이 치열할 때였는데, 그 시절엔 이곳이 고구려 땅이었을 텐데... 그저 옛이야기들이 하나씩 덧붙으니 앞으로도 이곳의 전설들은 현무암 돌무더기처럼 차곡차곡 쌓여 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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