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학에 대해서는 문외한이지만 그것은 조선왕조의 통치철학이었던 만큼 그 영향은 컸었다. 현대에 이르러서 유학은 탁상공론으로 평가절하되곤 하지만, 당대에는 목숨을 걸고 논쟁하던 사상이었다. 인조반정을 못마땅하게 생각하지만 서인의 학문적 스승이자 정신적 지주로 추앙되는 김장생 선생의 평가는 논외로 하고 싶다. 서인세력들은 임진왜란 이후 혼란스러운 정국임에도 명분 없는 쿠데타를 일으켜 실리 없는 외교로 어려웠던 백성들을 참혹한 정묘 병자호란에 빠트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서인 세력들의 권력에 대한 집착은 조선왕조가 망할 때까지 이어졌으니 안타까운 일이다.
돈암서원은 그야말로 서인들의 거룩한 성전같은 곳이어서 대원군의 서원철폐령에도 살아남았다. 대전 논산간 국도변에 있는 탓에 지나는 길에 자주 들려 보지만, 서원의 풍경은 언제 보아도 아름답다. 건물의 모양도 특이해서 다른 서원보다 특별해 보인다. 서원 앞에서 유생들이 자연을 희롱하며 음풍농월하던 산앙루도 아름답고, 거대한 강당인 응도당의 모습도 위풍당당한 모습이어서 보기만 해도 압도당하는 느낌이다.
현대에 이르러 나라의 정세가 위태롭지 않은 때가 거의 없다. 정치가 순리대로 풀려야 백성들도 편안할 터인데, 정치가 대부분 아전인수격으로 내것만 탐하여 소탐대실하고 있으니, 보잘것없는 나 같은 민초까지도 오히려 나라의 안위를 걱정하고 있어, 쓸데없는 내 오지랖이 뒷털미를 치고 간다.
입구 한옥마을 체험촌
돈암서원 입구 홍살문
산앙루
서원의 정문인 입덕문
유생들의 강당이었던 응도당, 맞배지붕 양 측면에 눈썹 추녀를 붙여 비바람을 가리고 있다.
정회당
장판각
사당인 숭례사
유생들의 기숙공간인 거경재와 공부하는 집 양성당
진사청
좌로부터 거경재와 양성당 정의재
사무실인 경회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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