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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술의 향기

원주 토지문화관

  두루 아시다시피 박경리 선생은 경남 통영사람이다. 1926년 통영에서 태어나 진주에서 여고를 나온 선생은 그녀의 선배가 김동리의 부인이였던 연고로 김동리의 도움으로 1955년 현대문학 8월호에 단편소설 "계산"이 추천되어 문단에 발을 내딛게 되었다고 한다.  그후 많은 작품활동을 거쳐 1969년 현대문학에 연재하기 시작한 "토지"가 세상에 알려지면서 주목을 받았고, 26년만인 1994년에 "토지"를 완성하여 전 16권으로 출판하였다. 이로써 그녀는 한국문단의 거장반열에 오르게 되었고, 그녀가 살며 "토지'를 집필하던 원주에 토지문화관을 세우고 문인들의 집필활동을 지원하는 등, 문화활동을 하던 중 2008년 5월에 이곳에서 타계하였다. 

  통영시 산양면에 선생의 문학관과 유택이 있다. 그리고  "토지"의 의 배경인 경남 하동군 악양면 평사리에는 평사리 문학관이 있다. 평사리 문학관은 박경리(朴景利)선생을 비롯해 이병주(李炳注), 김동리(金東里) 등 한국 문학사의 중요 문인들을 기념하고 평사리 지역 관련 작품 등을 소장·수집 정리하고자 2004년에 개관하였다. 한 사람의 소설가를 기리기 위한 문학관이 그가 살던 원주, 소설의 배경이었던 하동, 그리고 태어나고 죽어서 묻힌 통영, 이렇게 세 곳에 있다는 것은 그의 작품이 얼마나 걸출한 것이었는지를 간접적으로 말해준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통영에 갔을 때 박경리 문학관과 그의 묘소를 찾았었고, 하동 평사리의 최참판댁도 방문했었다. 원주를 지나다닐 때마다 토지문화관을 보고 싶었기에 이번 강릉 가는 길에 문막 IC에서 빠져나와 원주시 흥업면 매지리의 토지문화관을 찾았다.

 

  토지문화관은 강원도 원주시 흥업면 매지리에 있는 소설가 박경리 선생이 세운 문화 시설이다. 박경리 선생은 1998년부터 타계할 때까지 살았던 곳으로 이곳에서 집필 활동을 하면서,  토지문화재단의 이사장을 지내기도 했다.

  토지 문화관이 처음 세워진 것은 1999년이다. 박경리 선생은 숲 속의 맑은 공간에서 국내외 여러 석학 및 예술인들이 모여 현안을 논의하고 미래를 모색하자는 취지로 문화관을 세웠다. 박 선생은 개관 당시 경향신문과의 인터뷰에서 “많은 사람들이 ‘문학관’으로 오해하지만 이건 문화관이다. ‘사는 문제의 전반에 관련된 모든 것’을 할 수 있는 공간이다. 정치, 경제 등 현안을 놓고 격렬한 토론이 이어지는 공간이었으면 한다”고 밝혔다. 박 선생이 17년 동안 살았던 원주시 단구동 자택이 택지지구가 되면서 받은 보상금 7억 5000만 원과 토지 공사의 기부금 40억 원이 문화관 설립의 재원이 됐다.

  문화관의 주요 활동은 학술 및 문화 행사를 개최하는 것이다. 국내외 학자들과 예술가들을 초청해 세미나, 심포지엄, 강연회, 학술회의 등을 열고 한국 사회 현안과 관련한 새로운 대안을 모색한다. 또 신진 학자와 예술가들을 위해 연구 및 창작 활동 공간을 제공한다.

  문화관은 대회의실, 휴게실, 회랑, 도서실, 두 개의 세미나실, 식당 및 온돌방 등 숙박 시설로 구성돼 있다. <오세영 작가와의 대화> 등 다양한 주제의 행사를 개최한다. 사전 예약을 통해 시설을 빌릴 수 있다. 예술인과 학자들은 개인 숙박이 가능하다. 문화관에서 선정한 문인과 예술인, 학자들은 집필실을 무료로 사용할 수 있다. <출처: 네이버 지식백과>

 

 

 

 토지문화관 전경 

 

 

토지문화관 현관 전시실 방향

 

현관, 강당 방향, 이층은 비공개지역으로 연구실과 문인들의 집필실이다. 

 

강당 앞에서 바라본 전시실 방향

 

현관 중앙 계단 앞의 선생의 두상

 

전시실 내부

 

 

 

 

 

 

 

선생이 생전에 늘 바라보고 살았을 문화관 앞 풍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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