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종서 장군( 1383 ~1453)은 조선 초기의 정치인으로 문관이자 군인으로서 세종 재위 시절 1433년부터 1437년까지 6진을 개척했으며 단종이 즉위한 뒤 좌의정이 되어 섭정을 했다. 수양대군이 왕위찬탈을 위해 일으킨 계유정난(1453년) 때, 두 아들과 함께 제일 먼저 살해되었다. 그 뒤 1678년(숙종 4) 후손들이 관직에 등용되었고, 장군은 1746년(영조 22)에 복관되었다. 시호는 충익(忠翼)이다.
본디 이곳은 공주 장기면이었으나, 2012년 세종시로 편입되면서 장군면으로 개칭되었다.
재실과 사당
재실의 정문인 진무문
진무문 양쪽에 장군의 시가 걸려 그의 호창한 기운을 보여준다.
"朔風(삭풍)은 나모 끝에 불고 明月(명월)은 눈 속에 찬데/ 萬里邊城(만리변성)에 一長劍(일장검) 짚고 서서/ 긴 파람 큰 한 소리에 거칠 것이 없어라."
"長白山(장백산)에 旗(기)를 꽂고 豆滿江(두만강)에 말을 씻겨/ 썩은 저 선비야 우리 아니 사나희냐/ 어떻다 인각화상(麟閣畵像)을 누가 먼저 하리오."
사당에서 재실로 들어가는 측문
사당인 충익사
영조가 내린 정려문을 보호하는 정려각
김종서의 11대손 김지복(金志復)이 상언하여 1781년(정조 5)에 효자 정려를 받게 되었다.
장군의 신도비, 이곳의 지형이 지네를 닮아 그를 누르기 위해 비석 받침을 두꺼비로 만들어 세웠다.
장군의 묘로 올라가는 계단 길
돌길 옆에 있는 안내문
계단위에 있는 장군의 묘
사실적인 문인석
장군의 묘
장군의 묘 옆 골짜기 건너에 있는 아버지 김수의 묘, 그 뒤에는 조부 김태영의 묘가 있다.
조부 김태영의 묘
조부의 묘비- 조선 사헌부 시평, 순천 김씨 태영지묘
비문 전문
사당 충익사 뒤 언덕에서 보는 전경
충익사 뒤에 후손들이 세운 제단
사당과 재실의 뒷면
정려각과 신도비, 사당, 재실
사당의 정문인 충의문
주차장 부근의 관리사
김종서 장군의 흉상- 출처 나무위키(전쟁기념관 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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