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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의 향기

충익공 김종서 장군의 묘, 김종서 장군 역사 테마 공원

 김종서 장군( 1383 ~1453)은 조선 초기의 정치인으로 문관이자 군인으로서 세종 재위 시절 1433년부터 1437년까지 6진을 개척했으며 단종이 즉위한 뒤 좌의정이 되어 섭정을 했다. 수양대군이 왕위찬탈을 위해 일으킨 계유정난(1453년) 때, 두 아들과 함께 제일 먼저 살해되었다. 그 뒤 1678년(숙종 4) 후손들이 관직에 등용되었고, 장군은 1746년(영조 22)에 복권되었다. 시호는 충익(忠翼)이다. 

  장군은 6진 개척으로 무신의 이미지가 강하지만 16세 문과에 급제하여 관직에 진출한 문신이었다. 장군이 개척한 6진은 두만강 하류에 위치한 종성·온성·회령·경원·경흥·부령의 여섯 진이다. 이곳은 조선 왕조의 입장에서 왕조 건설의 모태가 되었던 중요한 의미를 갖는 지역이었다. 그는 세종 때인 1433년 12월 함길도 도관찰사에 제수되었다. 당시 여진족의 일파인 우디거족이 알목하(斡木河 : 지금의 하령) 지방의 오도리족을 습격해 그 추장인 건주좌위도독 동맹가티무르(童猛哥帖木兒) 부자를 죽이고 달아난 사건이 일어났다. 세종은 여진족의 내분을 이용해 북방 개척에 착수, 그 책임자로 김종서를 임명하였다. 장군은 이곳에 진을 설치하는 한편, 남방 지역의 백성을 이주시켜 정착 생활을 하도록 하였다. 6진의 설치는 우리나라 북쪽 경계가 두만강 연안에까지 이르게 하는 중요한 사적이 되었다.

 장군은 또한 문종 대에는 [고려사절요]의 편찬을 주도하였다. 조선조 건국 이후 이전 왕조의 역사를 정리하는 작업은 이미 태조 대부터 시작되어 1395년 [고려국사]가 편찬된 바 있고 이것이 이후 약 5차례의 개수 과정을 거쳐 1451년 [고려사]로 완성되었다. 이때 김종서 장군은 [고려사]가 주제별로 편찬되어 열람에 불편하니 일자별로 기록한 사서를 편찬하자고 건의하였다. 그리고 5개월 만에 [고려사절요] 35권을 완성해 올렸다. 고려 왕조 역대의 역사에서 정치에 귀감 되는 내용을 중심으로 편찬한 [고려사절요]는 후대 임금들이 정치에 참고하기 위해 편찬한 것이므로 상당히 교훈적인 역사책이다. 아울러 편찬 주체가 [고려사]는 국왕이 중심이 된 데 비하여 [고려사절요]는 신하들이 중심이 되었으므로 신하 중심의 사서라고 평가된다.


 문종은 승하 직전 영의정에 황보인을, 좌의정에는 김종서를, 우의정에는 정분을 각각 임명하였다. 문종이 승하하고 그 뒤를 열두 살의 단종이 왕위에 올랐다. 이때 수양대군은 후일을 도모하기 위해 전국에서 책략가와 한량들을 모았다. 한명회∙권람∙홍윤성 등이 바로 그들이었다. 수양대군의 야심에 장애가 되는 인물이 바로 좌의정 김종서였다. 수양대군은 마침내 계유정란을 일으켜 친히 양정, 유숙을 비롯한 무사를 대동하고, 새문 밖 김종서의 사저에서 김종서 장군을 살해하였다.


 그로부터 300여 년 후, 영조 22년에 김종서 장군이 복권됨으로써 사육신과 마찬가지로 충의(忠義)의 상징적인 인물이 되었다. 출처 : [네이버 지식백과] 김종서 [金宗瑞] - 문무를 겸비한 큰 호랑이 (인물한국사, 이근호, 장선환)을 바탕으로 첨삭함.

 본디 이곳은 공주 장기면이었으나, 2012년 세종시로 편입되면서 장군면으로 개칭되었다.

 

재실과 사당

 

충의와 정절을 기리는 홍살문이 이곳은 흑살문이었다. 처음보는 흑살문이었다.

 

재실의 정문인 진무문

 

진무문 양쪽에 장군의 시가 걸려 그의 호창한 기운을 보여준다.

"朔風(삭풍)은 나모 끝에 불고 明月(명월)은 눈 속에 찬데/ 萬里邊城(만리변성)에 一長劍(일장검) 짚고 서서/ 긴 파람 큰 한 소리에 거칠 것이 없어라."

"長白山(장백산)에 旗(기)를 꽂고 豆滿江(두만강)에 말을 씻겨/ 썩은 저 선비야 우리 아니 사나희냐/ 어떻다 인각화상(麟閣畵像)을 누가 먼저 하리오."

 

사당에서 재실로 들어가는 측문

 

사당인 충익사

 

영조가 내린 정려문을 보호하는 정려각

 

김종서의 11대손 김지복(金志復)이 상언하여 1781년(정조 5)에 효자 정려를 받게 되었다.

 

장군의 신도비, 이곳의 지형이 지네를 닮아 그를 누르기 위해 비석 받침을 두꺼비로 만들어 세웠다.

 

장군의 묘로 올라가는 계단 길

 

돌길 옆에 있는 안내문

 

계단 위에 있는 장군의 묘

 

사실적인 문인석

 

장군의 묘

 

장군의 묘 옆 골짜기 건너에 있는 아버지 김수의 묘, 그 뒤에는 조부 김태영의 묘가 있다.

 

조부 김태영의 묘

 

조부의 묘비- 조선 사헌부 시평, 순천 김씨 태영지묘

 

비문 전문

 

사당 충익사 뒤 언덕에서 보는 전경

 

충익사 뒤에 후손들이 세운 제단 

 

사당과 재실의 뒷면

 

정려각과 신도비, 사당, 재실

 

사당의 정문인 충의문

 

주차장 부근의 관리사

 

김종서 장군의 흉상- 출처 나무위키(전쟁기념관 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