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0년대 초반 친구와 사직공원 사격장에서 공기소총으로 표적지에 납탄을 맞추며 놀았는데, 점수가 좋아 사격에 소질이 있다고 자신했었다. 그런데, 논산 훈련소 사격장에서 M16 소총 영점 사격을 할 때 세 발씩 9번을 쐈는데 모두 실패했다. 옆에 있던 조교가 주먹으로 아구창을 날려 입안이 터져 피가 흘렸다. 이빨이라도 나간듯 싶었는데, 다행히 입안이 찢어진 모양이었다. 그 조교 녀석은 옆에 붙어서 어찌나 잔소리를 하던지 머리가 아팠었다. 총소리는 왜 그리 컸는지, 귀가 울려 정신이 혼미했었다. 잔소리와 총소리에 세 발 중 한 발이 자꾸만 엇나갔다. 피를 보고선 나도 모르게 피를 뱉으며 쌍소리로 조교를 노려봤었나 보다. 화난 내 서슬에 움칫 놀라 악마 같던 조교가 움찔 뒤로 물러서던 모습이 선하다. 하얀 눈 위에 내가 내뱉은 선혈이 햇살에 빛나고 있었다. 자대 가서 새로 지급받은 총으로 영점 사격을 했을 때는 여섯 발로 끝냈다. 세 발씩 모두 아름다운 탄착군을 형성하고 있었다. 윽박지르고 욕한다고 능사는 아니다. 자율에 맡겼을 때 능력 이상의 결과를 얻을 수 있다는 것이다.
각설하고 그랬던 공원이 본디의 모습으로 복구공사를 한다는 소식을 듣고 끝나기를 기다렸는데, 알 수가 없었다. 궁금해서 차일피일 미루던 숙제를 해결한 것처럼 오늘에야 방문하게 되었다. 사직단 정문을 찾아 입장하려 했으나 문이 잠겨 있었다. 크게 당황하여 지나가는 동네 사람에게 물으니 대문 옆으로 들어갈 수 있다고 알려 주었다. 사직단은 두 겹의 담장으로 둘러싸여 있었다. 사방에 문이 있어 북쪽문으로 들어가 보려 했으나 역시 문이 잠겨 있었다. 난감하여 담장이라도 한 바퀴 돌아볼 요량으로 서편으로 갔더니 제례음식을 만드는 진사청이 있었다. 개방된 진사청을 돌아보고 허망한 마음으로 돌아가려 하다가 동쪽 초소 안에 근무하는 직원이 보였다. 행여 정보라도 얻어갈 겸 문이 잠긴 사연을 물었다. 이곳은 개방하는 곳이 아니라서 상시로 담장의 네 신문들을 잠근다는 것이었다. 안에 들어가 볼 수 없겠냐는 요청에 고맙게도 응대해 주셨다. 그분의 안내로 남신문으로 들어가 사직단 담장 안을 두루 돌아볼 수 있었다. 담장 안에 또 작은 담장으로 둘러 싸여 모셔진 작은 규모의 동쪽 사단과 서편 직단을 보며 사진 몇 장을 촬영했다. 감사 인사를 드리고 사직단 서편 언덕에 있다는 단군성전을 향해 걸음을 옮겼다.
우리가 사극 드라마에서 흔히 들을 수 있는 '종묘사직'이란 말이 있다. 종묘는 조선왕들의 위패를 모신 곳으로 경복궁 동쪽 종로 3가에 있으며, 사직단은 토지의 神인 '사(社)'과 곡식의 '神 직(稷)'에 국가에서 제사를 지내는 제단으로 경복궁 서편 이곳에 두었다.
조선을 세운 태조 이성계는 한양에 수도를 정하고, 경복궁을 중심으로 동쪽엔 종묘를 두고 서편에 사직단을 함께 만들었다. 토지의 신에게 제사 지내는 국사단은 동쪽에, 곡식의 신에게 제사 지내는 국직단은 서쪽에 배치하였으며, 신좌는 각각 북쪽에 모셨다. 제사는 2월과 8월 그리고 동지와 섣달그믐에 지냈다. 나라에 큰일이 있을 때나 가뭄에 비를 기원하는 기우제 그리고 풍년을 비는 기곡제들을 이곳에서 지냈다. 1902년 사직단과 사직단의 임무를 맡는 사직서가 다른 곳으로 옮겨지고, 일본인들은 우리나라의 사직을 끊고 우리 민족을 업신여기기 위하여 사직단의 격을 낮추고 공원으로 삼았다. 1940년 정식으로 공원이 된 사직공원이 옛 사직단의 자리이다. 1963년 국가 사적으로 지정하고 1980년대 담장과 부속시설을 복구하였다.
사직단 정문- 정문이긴 하지만 폐쇄되어 있다. 우측 건물 옆으로 돌아가면 사직단 담장이 나타난다.

북신문에서 바라본 유문과 유문 담장 안 社壇과 稷壇

북유문과 서유문 밖 신실, 홍살문 모양의 네 개의 유문과 유문 담장 안에 두 개의 밋밋한 제단이 마련되어 있다.

동유문에서 바라본 사직단


유문 담장 안에 있는 전면 동쪽의 사단과 그 뒤 서쪽의 직단

동유문에서 바라본 사직단과 왼쪽의 신실

왼편의 사단과 오른쪽의 직단

사직단 밖 전사청 안 일부, 오래된 프로젝션 TV에선 제례행사 영상이, 오른쪽 방안에는 제례 때 입는 의복이 전시되었다.

사직단 구성도


단군성전은 우리 민족의 시조인 단군왕검의 영정과 위패를 모신 사당이다. 인왕산 자락 사직단 위 언덕에 일제강점기 정신적 침탈에 맞서 건립된 곳으로, 해방 이후 민족정신을 되살리는 데 중요한 역할을 했다. 1968년 이숙봉 여사가 주축이 되어 건립했으며, 이후 1990년 쌍용그룹의 지원으로 개축되어 서울시에 기증되었고, 현재는 현정회에서 관리하고 있다.
단군성전은 일제강점기 끊겼던 단군 제례를 복원하는 노력이 이어지면서 1962년부터 공식적인 행사를 진행해 왔다. 매년 개천절과 단군이 승천한 날인 어천절(음력 3월 15일)에 제례를 올린다.
단군성전은 단순히 제사를 지내는 공간을 넘어, 일제에 의해 훼손된 민족의 뿌리를 되찾고 민족의 정체성을 이어가는 상징적인 장소로 중요한 의미를 지닌다. 일제를 미화하고 그들을 찬양하는 토착 왜구 뉴라이트 집단은 이러한 노력들을 어떻게 평가할까 궁금스럽다.
단군성전 대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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