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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의 향기

가을비 내리는 경복궁

 박석 위에 떨어지는 빗줄기를 하염없이 바라봐도 별다른 감동이 일지 않았다. 그것이 내 한계였다. 빗줄기 속에서도 근정전을 배경으로 사진 찍는 사람들이 더러 있었다. 여행자의 스케줄은 날씨와 별 관계가 없으니, 비 오는 오늘의 일정이 그저 운 나쁠 뿐이겠다. 파란 하늘 아래 고색창연한 한국의 궁궐이 배경이 되었더라면 멋진 추억이 될 텐데, 아쉬운 일이었다. 한동안 비를 피해 근정전 회랑의 한 구석에서 비 내리는 근정전을 바라보며 상념에 빠져 있다가, 우산을 펼쳐 들고 근정전 뒤 사정전부터 경복궁 순례를 시작했다. 비 때문에 사정전부터는 인적이 뜸해서 좋았다. 경복궁 휴무일에 인적 끊긴 궐내에서 멋진 전각들을 호젓하게 마주한다면 정말 행복할 것 같다. 정적에 빠진 교태전을 지나면서 비는 멈추었다. 우산을 접어들고 자경전, 동궁전, 경회루를 지나 향원정으로 갔다. 건청궁에서 향원정으로 새로 놓은 하얀 다리의 색깔이 주변과 어울리지 않는다는 생각이 문득 들었다. 그곳에도 단청무늬 교각이 들어섰더라면 더 아름다웠을 것이란 생각이다. 고증에 충실한 복구작업이라니 뭐라 할 말도 없지만... 건청궁을 거쳐 신무문 근처까지 걷다가 지름길을 통해 불국사의 백운교 청운교와 법주사 팔상전을 섞어 만든 육중한 민속박물관의 모습에 안쓰러운 생각을 하며 광화문 앞으로 나왔다. 때마침 수문장 교대식이 한창이었다. 

 우리나라 문화재 대부분이 원형대로 보전되는 것이 별로 없는 것은 수많은 전쟁과 일제에 의해 철저하게 파괴되었기 때문이다. 경복궁 전각들도 임진왜란 때 불탔던 것을 대원군이 재건했지만, 조선을 강탈한 일제가 철저하게 훼손하였다. 지금도 발굴조사와 부분적 복구 사업을 진행하고 있으나 과거의 모습을 회복하는 것은 아직 요원한 일이다. 조선 왕실의 정궁인 경복궁, 오욕의 역사를 극복하고 아름다운 모습으로 재현될 그날의 모습을 고대해 보며, 먹구름 가득한 고궁 안에서 자동차 소음과 인파 속의 왁자지껄한 광화문밖 도심의 현실 속으로 되돌아 나왔다.        

 

사정전은 임금께서 국정을 보살피던 집무실이다. 봄에는 동쪽 별채 만춘전에서 가을에는 서쪽 별채 천추전에서 지내셨다고 한다.

 

강녕전은 임금님이 생활하시던 주거 공간이고, 경성전은 강녕전의 보조 공간이다. 

 

응지당 - 바로 왕의 식사를 데워 수라상에 올려 들이던 중간 부엌. 음식을 만드는 소주방과 강녕전 간 거리가 꽤 있어 상을 가지고 오는 동안 음식이 식을 수 있었기 때문에 중간에 음식을 한 번 더 데우던 부엌이다. 그런 탓으로 곁에 우물이 있다.

 

교태전은 중전께서 머무르던 공간이라 좌우의 전각들과 서로 이어져 있어서 아기자기해 보인다.

 

교태전 뒤뜰, 아미산, 뒤뜰에 눈높이의 계단을 쌓고 꽃과 나무를 심어 정원을 만들어 아미산이라 불렀다. 작은 돌그릇에 물을 담아 계단에 두고 낙하담과 함월지라 연못처럼 이르고 이를 즐겼으니 그 과장스러움이 애교스럽다. 구중궁궐에 갇혀 외부와 닫힌 세계에서 돌함지에 비친 저녁노을과 달을 즐겼으니, 이만하면 안빈낙도의 표상이라 할 만하겠다. 

 

교태전에서 대비마마의 처소인 자경전으로 이어지는 통로

 

자경전 - 대비마마의 처소

 

자경전 뒷담, 열 개의 작고 검은 굴뚝과 대비의 만수무강을 기원하는 십장생 벽화

 

자경전 앞 소주방, 그 앞에 동궁전과 나란히 위치한 비현각 - 왕세자의 공부방이다.

 

비현각 서쪽에 나란히 있는 동궁전인 자선당 - 왕세자의 처소

 

자선당에서 강녕전과 천추전을 지나 경회루로 동선을 옮겼다.

 

경회루

 

임금 내외분의 정원이었던 향원정

 

향원정 뒤쪽에 있는 건청궁 장안당 - 고종이 머무르던 처소

 

곤녕합과 옥호루 - 고종의 정비 명성왕후 민비가 살던 처소. 민비는 옥호루에서 일본 낭인들에 의해 시해되어, 동쪽 숲 속에서 소각되었다.(을미사변) 

 

일제가 뜯어갔던 자선당(동궁전) 석자재

 

팔우재 집옥재 협길당

 

수문장 교대식이 열리고 있는 광화문 월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