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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내여행

서거차도 가을 1

  야간열차로 새벽 4시 20분 목포역에 내렸다. 차창밖으로 아무런 풍경도 보이지 않는 밤기차여행은 무료하기 그지없었다. 무거운 배낭 때문에 마음대로 이동할 수 없어, 열차의자에 몸을 붙이고 졸아가며 간간 차창밖의 어둠을 바라보곤 했었다. 차창밖으론 지난 세월들이 불빛처럼 번지며 빠르게 지나가고 있었다.  목포역 도착 시각이 너무 일러 대합실에서 시외버스터미널을 검색했으나 초행인 데다 어둠 속이라 방향을 몰라 당황하기도 했었다. 생각 끝에 핸드폰 내비게이션을 켜고 걸었지만 보행자용으로는 젬병이었다. 알량한 내비 때문에 목포역 부근에서 20여분을 허비했으나 여전히 시내버스도 다니지 않는 새벽이었다. 생각 끝에 지도검색으로 길 찾기를 해놓고 걸어서 가기로 했다. 이른 새벽 목포역 앞에서 청소를 하던 미화원에게 터미널 가는 길을 물으니, 한 시간도 더 걸린다며, 기다렸다가 버스를 타라며 방향을 가르쳐 주었다. 어둠 속에 안개 낀 목포시내를 걸으며 갈림길마다 핸드폰 지도로 방향을 찾았다. 최단거리로 4. 5km 정도, 약 한 시간 정도 아침운동으로 적당한 거리였다. 인적도 없고 어두운 고개까지 하나 넘어 터미널에 도착하자마자 곧바로 6시 15분 진도행 시외버스를 탔다. 7시 20분, 진도공용터미널에 내려서서는 시동을 켠 채로 대기하고 있던 팽목행 시내버스를 탔다. 서두르지 않아도 될 텐데, 다음 차가 8시 지나 있다는 말에 조바심을 낸 탓이었다. 아침식사를 하고 천천히 움직여도 좋았을 것을... 버스는 안개 자욱한 진도의 들판을 가로질러 35분여 만에 팽목항에 도착했다. 팽목으로 가는 도중 안개가 짙어 행여 배가 뜨지 않을까 걱정되어 기사에게 물었더니, 팽목에는 안개가 옅어서 여객선이 출항할 거라고 일러주었다.

 

 오전 8시 팽목항은 적막했다. 진도항(팽목)에 하나밖에 없는 식당에서 별 맛도 없는 아침 식사로 허기를 채우고 항만 주위를 한바퀴 돌았다. 남도 음식이 반찬 많고 맛있다는 말도 믿을 게 없는 허언이다. 개인적으로 반찬 많고 맛있다는 남도의 서민적 음식은 아직까지 먹어보지 못했다.  몇 번 겪어본 바로는 진도 섬안의 식당들은 대부분 친절하지 않았다. 팽목항 등대 주변에 매달려 나부끼던 숱한 노랑 리본들은 철거되고, 세월호 아픔을 타일에 그린 그림들만이 지난해 참사를 추억하고 있었다. 팽목항의 등대 주변에 빛바래고 해풍에 찢긴 노랑 천들이 세월에 씻겨 사람들의 뇌리에서도 지워지고 있을 터였다. 세월호 사고 이후에 엄청 호들갑을 떨었지만, 달라진 게 별로 없다. 간혹, 배를 타고 섬으로 떠나려는 여행객 몇 사람들이 좁은 진도항을 이곳저곳 기웃거리며 뱃시간을 기다리고 있을 뿐이었다.

 

  9시 50분 서거차도행 정기여객선인 한림 페리호를 떠나보낸 후, 10시 30분 조도직행 여객선을 타고 조도 창유항에서, 바로 서거차로 직행하는 섬사랑 9호로 갈아탔다. 섬사랑 9호는 창유항 매표소에서 표를 팔지도 않고, 배안에서 직접 배삯을 받는다. 뱃전에 행선지를 써붙인 것도 아니고 운항 시간표가 대합실에 붙어있는 것도 아니어서 초행자는 그 존재조차 알 수 없는 애매한 여객선이었다. 이 배는 목포항만청에서 운행하는 배로 주로 낙도 주민들의 농수산물 수송을 담당한다. 맹골도 방면인 서거차도는 짝수날만 운항하기 때문에 날짜를 잘 맞추어야 직항 여객선인 섬사랑호로 1시간 이상을 절약할 수 있다. 창유항에서 여덟 명이 탔는데, 다섯 분이 서거차 옆의 하죽도 주민이었고, 세 명이 서거차도에 내렸다. 커다란 여객선이 열 명도 안 되는 승객들을 태우고 운항한다니, 계산기를 아무리 두드려도 수지타산이 맞지 않을 터였다. 12시를 갓지나 드디어, 서거차도항에서 기다리던 친구와 반가운 해후를 했다.

 

  봄철에 비해 달라진 것은 없었다. 다만 가을 해무로 시야가 맑지 않았고 싱싱하던 초목들이 쇄락의 빛깔로 다소 쓸쓸한 느낌을 주고 있었다. 그런데 가을이라서인지 물고기 입질이 좋아 저녁 무렵에 잠깐 낚시를 나가면, 1시간 정도에 열댓마리는 기본이었다. 노래미, 우럭, 망치... 이따금 바닷장어까지 심심할 틈이 없어 손맛이 아주 좋았다. 아쉽다면 씨알이 굵은 놈은 한 마리도 만나지 못했지만... 간간이 학꽁치도 물려 그야말로 풍요로운 낚시질이었다. 망치도 심심치 않게 잡혔으나 모양만 돔 비슷하게 생겼을 뿐, 육질이 단단하지 못하고 맛이 없었다. 그래서 망치란다. 

 

  모래미 해안 너머 서쪽 해안가 산등성이에서 바라본 서거차항만

 

  정오를 전후해서 여객선이 들락거려, 제법 분주해 보인다.

 

 

  서거차도 서쪽 해안

 

  곳곳에 재선충 걸린 소나무들이 방치되어 말라죽고 있었다. 국립공원답게 관리되지 않는 현실이 안타까웠다.

 

 

 

 

 

 

 

회 뜨고 남은 물고기들을 구워 먹는 맛도 제법 일품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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