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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의 향기

오산 궐리사

 오산 궐리사는 공자의 64 세손인 공서린이 서재를 세워 후학을 지도하던 곳이다. 공서린은 조선 중종 때 문인으로 기묘사화에 연루되어 투옥되기도 했다. 정조대왕은 이곳에 사당을 짓도록 하고 '궐리사'라는 현판을 하사하였다. 조선으로 이주한 공자의 후손들이 이곳에서 집성촌을 이루고 살았기 때문에 중국 산동성 곡부현에서 태어난 공자의 고향 지명을 그대로 내린 것이다. 

 

 궐리사는 고종 8년(1871) 흥선군의 서원 철폐령으로 헐렸다가, 고종 31년(1894)에 다시 제단을 마련하여 제향을 올리기 시작하다가 고종 37년(1900) 건물을 짓고 성적도를 모셨다. 성적도는 공자(孔子, BC 551~479)의 행적을 여러 장면으로 도해한 그림으로, 공자성적도 또는 공부자 성적도라고도 불린다. 104폭의 그림으로 구성된 오산 궐리사 성적도는 공자의 일생을 담은 국내 유일의 목판본이다. 1904년 중국 산동성에 있는 성적도를 가져와 다시 새긴 것으로, 그 가치를 인정받아 현재 경기도 유형문화재 제62호로 지정받았다.

 

 현재 궐리사에는 성묘라는 편액이 걸려 있고, 입구 계단 아래 하마비가 있다. 경내에는 공자의 영정을 모신 사당과 성적도를 모신 장각이 있다. 사당 옆에는 1993년 중국 산동성 곡부현에서 기증한 공자상이 있다.  1996년 강당인 행단과 양현재를 지어 세웠다. 오산 궐리사는 논산에 있는 노성 궐리사와 함께 우리나라에 있는 2대 궐리사이다.

 

 오산 궐리사

 

 안내도

 

 외삼문과 현판

 

 공묘(공자 사당)로 가는 계단

 

 사당으로 들어가는 문

 

 공자 사당

 

 뒤틀린 향나무와 나무 뒤의 사당, 정면에 성적도를 모신 장각

 

 1993년 중국 산동성 곡부현에서 기증한 공자석상

 

 석상 앞에 있는 비석들

 

 공자 석상이 있는 곳에서 나오는 문

 

 석상 계단 아래에 있는 공자문화전시관-문이 잠겨 들어가지 못했다.

 

 오른쪽 공자의 64 세손 공서린의 글씨와 왼쪽 궐리사 건립 위원회 임원 명단을 새긴 돌.

 

 기와가 없어진 사무실 지붕과 강당인 행단

 

 강당인 행단

 

 사무실

 

 은행나무 아래 이곳에 살며 후학들을 가르쳤던 공자의 64 세손 공서린 유허비가 있다.

 

 오래된 은행나무

 

 양현재

 

 오산 궐리사는 중수한 지 얼마 되지 않았으나 대체로 관리가 되고 있지 않은 느낌이었다. 입구 외삼문 앞에 세운 홍살문의 윗살이 부러지거나 삐뚤어져 있고, 사무실 지붕은 기와도 없이 방수막으로 대충 덮여 있었다. 사당문과 전시관도 자물쇠로 꼭꼭 잠궈 모처럼 찾은 사람들도 겉만 기웃대다 돌아가는 형국이었다. 오산시에서 많은 돈을 들여 중수했으면, 보수와 관리 유지에도 신경 써야 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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