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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의 향기

강경 미내다리

 처음으로 가본 강경읍이었다. 예전엔 서해에서 배를 타고 이곳까지 들어와 젓갈시장이 발달한 곳이다. 강경읍을 다니다 보니 곳곳에 젓갈 상점과 음식점들이 산재해 있었다. 강경읍에서 처음 찾은 곳이 미내다리였는데, 네비에 나오지 않아 근처를 목적지로 정하고 갔다. 근처에서 휴대폰 맵을 통해 찾아갈 수 있었다. 자동차용 네비보다 휴대폰 맵이 훨씬 정교했다. 미내다리로 가는 길은 하천 위 뚝방길을 따라가는 길이라 맞은편에서 차가 오면 교행이 어려웠다. 중간중간에 교행 할 수 있는 공간을 만들어 두긴 했지만...

 10년이면 강산도 변한다는데, 무려 300년이 지난 오늘의 미내다리는 제방을 쌓아올린 넓은 미내천 가장자리에 소박한 모습을 하고 있었다. 하천의 물길도 그 동안 크게 변한 탓으로 옛날엔 이 미내천도 작은 개울이었던 모양이다. 미내다리는 작은 개울에 알맞게 길이도 짧아 시골 동네 개울을 건너는 간이다리 모양새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돌로 3개의 홍예 아치를 만들어 그 모양이 매우 아름다웠다.  순천 선암사 가는 길의 승선교의 홍예가 아름다워 다리 아래에서 홍에를 통해 강선루를 바라보는 풍경이 일품으로 여겼었는데, 이곳엔 3개의 아치가 다리를 떠받치고 있어 서 더욱 아름다워 보였다. 

  "조선 영조 때 만든 다리로 300여년이 지난 유물임에도 그 모양새가 아름답고 정교하여 유적으로 가치 있어 보였다.  길이 30m, 너비 2.8m, 높이 4.5m. 1973년 충청남도 유형문화재로 지정되었다. 이 다리가 놓여 있는 하천을 미하(渼河)라고 부른 데서 다리이름을 미내다리[渼奈橋]라고 하였다는 전설이 있는가 하면, 미내라는 승려가 시주를 받아서 만들었다는 데서 그 이름이 연유하였다.

 또, 《동국여지승람》에는 “예전에 다리가 있었는데 조수가 물러가면 바위가 보인다고 해서 조암교(潮巖橋) 또는 미교(渼橋)라 하였다.”는 기록이 보인다. 이 다리는 3개의 홍예(虹霓 : 무지개모양)로 된 돌다리인데 가운데 홍예가 가장 크고 남북 쪽의 것이 작다.

 받침을 긴 장대석으로 쌓고 그 위에 홍예석을 둘렀으며, 가운데 홍예의 종석은 다리난간쪽으로 돌출시켜 호랑이머리를 조각하였다. 북쪽 홍예는 용머리를 새긴 종석이 있고 난간 경계석에는 여러 가지 꽃무늬를 새긴 듯하나 마멸이 심하다.

 비문에 의하면 1731년(영조 7) 강경촌에 살던 석설산(石雪山)송만운(宋萬雲) 등이 주동이 되어 황산의 유승업(柳承業)설우(雪遇)·청원(淸元) 등이 이 공사에 진력하여 시작한 지 1년이 못되어 완성하였다고 한다. 조선시대 전라도와 충청도를 잇는 중요한 교통로 중의 하나로서 그 의의가 있다." <출처 다음 백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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