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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의 향기

겨울 융건릉

 오랜만에 융건릉에 들렀다. 융건릉을 둘러싼 華山의 능선 따라 옛 수원 고읍성벽을 둘러볼 참이었는데, 때를 못 맞추었나 보다. 곳곳에 출입금지 팻말이 붙었다. 산불 방지를 위해 12.01부터 05.15까지 둘레길을 들어가지 못한단다. 아쉬웠지만 나무 가득한 왕릉 숲에서 모처럼 맑은 공기를 마시며 융릉에서 건릉까지 다녀왔다. 왕릉 안은 변한 것이 없으니 발걸음이 빨라졌다. 다만 얼어다가 녹아 질척거리는 숲길이 조금 불편했을 뿐이었다.

 융건릉 앞 공용 주차장이 넓어져서 주차하기 편해졌다. 예전에는 주차할 곳이 부족해 부근 식당가에 차를 대고 식사 후 융건릉을 갔었는데, 여유로운 주차장에 이요하는 분들이 좋아할 것 같다. 겨울철이어서 융건릉을 찾는 사람들이 얼마 되지 않은 탓도 있기는 하겠지만, 여유로움은 마음을 차분하게 한다. 화성시에서 문화재 관리에 힘쓰는 것 같아 보기에 좋았다. 재실 주변에 관리사옥도 새로 짓는 등 주변 환경이 눈에 띄게 개선되었다.  

 문화유산은 우리가 소중하게 보존해야 할 역사 유물이다. 최근 종묘 앞에 초고층 건물을 세운다는 서울 시장의 계획에 크게 당황했었다. 아직까지 결론 나지 않았지만 국가 문화유산을 넘어 우리나라 최초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된 종묘가 고층건물 때문에 세계문화유산 지정이 취소된다면 국가적 불명예다. 그럼에도 종묘 앞에 초고층 건물을 세운다는 것은 어불성설이자 언어도단이다. 예전 북경 자금성에 갔을 때, 자금성 주변에 높은 건물이 없어서 놀랐다. 가이드에게 물으니 중국 정부 당국에서 철저하게 관리를 한다는 것이었다. 궁궐 지붕이 곧 스카이 라인이기 때문에 궁궐의 아름다움을 그대로 보고 느낄 수 있었다.

 왕릉 주변 건물도 규제 대상이다. 지난 2000년 까지도 용주사에서 융건릉 가는 길은 목가적인 초원이었다. 구릉지대의 푸른 초지들을 보면서 이국적 풍경마저 떠올렸었는데, 어느 날 갑자기 주변에 함석 울타리를 두르고 LH공사에서 아파트를 짓는다고 야단을 떨었다. 터파기공사 중 옛 유물이 발굴되고, 김포 장릉 앞의 고층 아파트가 문제가 되어 유네스코 세계 문화유산 지정 취소 이야기가 나오면서, 융건릉 주변은 층고가 낮은 아파트건설로 개발을 끝낸 것으로 안다. 수도권 일대는 조그만 자투리 땅만 있으면 어느 날 갑자기 고층 아파트가 들어선다. 그것도 40층에 가까운 초고층 아파트가 들어서니, 스카이 라인도 엉망이 되고 일대의 교통이 혼잡해지고 삶터가 황폐화되어 심기가 점차로 불편해진다. 개발이 능사가 아니란 사실만을 지자체장이나 사업자들이 명심해 주기 바란다.

 각설하고 아버지 사도세자를 생각하는 마음이 극진하게 모셔진 곳이 융릉이라 이곳은 조선의 다른 왕릉 보다 그 의미가 더 큰 곳이다. 정조대왕 역시 자신도 돌아가신 후 아버지 곁에 묻혔으니, 살아생전 나누지 못한 부자의 정을 아늑한 화산을 베개 삼아 돈독하게 나누시리라 믿어본다.  

 

융건릉 종합 안내도

 

재실

 

융릉 앞 곤신지(坤申池) - 1789년 현릉원(사도세자의 묘)이 현재 동대문구 배봉산에 있었는데, 이를 이곳 화산 아래로 이장한 후 이듬해 조성한 원형의 연못이다. 조선 왕릉 중 드물게 원형으로 만든 것은 '용의 여의주'형상을 나타낸 것이라 한다. 융릉에서 처음 보는 물이 바로 곤신지이다. 용이 여의주를 품은 형상의 명당이 이곳 화산이라 하여, 이곳에 있던 수원읍성을 허물어 아버지를 모시고, 동편 지척에 용주사(龍珠寺)를 지어 부친의 명복을 빌게 했다. 그리고 삽십리 북쪽 팔달산 아래 새로 수원읍성을 만들고 성을 쌓은 곳이 오늘의 수원 화성이다. 수원 화성의 방화수류정 앞의 연못이 용연(龍淵)이고 방화수류정이 서있는 자리가 용머리 바위이다. 용연에서 흐른 물이 수원천을 따라 화산 발치로 흘러 내려가니, 수원 화성과 융건릉이 있는 화산은 하나의 젖줄인 셈이다. 용(龍)은 정조대왕이 애절하게 사랑했던 상징의 부적 같은 존재였다.

 

융릉-사도세자와 혜경궁 홍씨의 합장묘. 사도세자는 추후 장조(莊祖)로 추존되었다. 조선 왕릉의 전형적 구조이다. 왕릉과 왼쪽에 비각, 앞에 정자각, 오른편에 수복방, 그리고 출입하는 홍살문...

 

융건릉 정자각

 

수복방

 

왼편 화산으로 오르는 길에서 본 융릉, 둘레길은 아쉽게도 폐쇄되었다.

 

융릉에서 남쪽으로 뻗은 야트막한 산능선 두 개를 넘어 건릉으로 가는 길

 

건릉 -정조대왕의 능

 

건릉 비각 안 비석 앞면 - 대한제국 때 고종황제가 기존의 비석 글씨를 갈아내고 새로 추존한 황제의 묘호를 새겼다. '대한 정조선황제 건릉 효의선황후부좌'

 

정자각 너머 서쪽 숲

 

정자각

 

정자각 위 잡상

 

정문으로 나가는 숲길

 

재실 뒤 담장 안의 산수유 열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