날씨가 추우니 밖에 더더욱 나가기 싫다. 햇살은 눈부셔 밖으로 나오라 유혹하는데, 거리엔 행인조차 끊기었다. 무료함에 공주로 달려갔다. 여러 번 방문한 곳이라 심드렁하기도 했지만, 수년 전 방문했던 공주박물관의 변화된 모습이 기대되어 그간의 차이를 찾아보기로 했다. 내심으로 박물관 안은 난방이 잘 되었을 테니 추위는 걱정하지 않아도 되겠다는 얄팍한 계산이 있기도 했다. 내비게이션이 언제나 문제였다. 박물관 주차장을 목적지로 설정했는데, 하필 후문 주차장이었다. 후문은 폐쇄하여 통행이 없음에도, 그곳으로 안내하여 어처구니없었다. 차에서 내려 찬 바람 맞으며 조금 걷다가 예전 기억이 떠올라 되돌아가 차를 몰아 박물관내 주차장으로 갔다. 바람이 찼다. 겨울날 태양빛도 따스하지 않았다. 보이는 풍경들이 모두 얼어 창백한 빛깔이었다. 공주 박물관에서는 '두 왕의 승부수, 한성 475'기획전을 열고 있었다. 한성백제 시절 백제 개로왕이 고구려 장수왕의 싸움을 바둑 묘수로 승부를 낸다는 비유로 기획전을 하고 있었다.
"서기 475년 9월 고구려 장수왕은 군사 3만으로 한성백제를 침공하여 7일 만에 북성인 풍납토성을 함락하고, 그 여세를 몰아 남성이며 왕궁이 있던 몽촌토성을 점령하였다. 백제의 개로왕은 바둑을 좋아하던 인물로 바둑의 묘수를 떠올리며, 장수왕의 한성침공을 빌미로 북위군에 왕이 없는 평양성을 공격하도록 요청하였다. 북위군은 응하지 않았으며, 나제동맹이었던 신라군 일만 명도 전투가 끝난 뒤 도착하여 개로왕의 묘수는 실패하였다. 결국 패전한 개로왕은 고구려에 항복한 백제 장수 재증걸루와 고이만년에게 사로잡혀 장수왕에게 끌려간 뒤 참수되어 비참하게 버려졌다." 한성 475의 줄거리이다.
백제는 왕의 시신을 수습할 여유도 없이 한성에서 탈출한 개로왕의 아들 문주왕이 웅진으로 남하하여 538년까지 63년간 백제왕업을 이어갔다. 이후 성왕에 이르러 백제부흥의 꿈을 안고 서해로 나갈 수 있는 부여로 천도하여 국호를 남부여로 고쳐 썼다. 551년 성왕은 신라 진흥왕과 연합하여 고구려에게 점령된 한강유역을 수복했으나 신라가 동맹을 깨고 이 지역을 빼앗아 갔다. 이에 분노한 성왕은 신라 응징에 나섰다가 불행하게도 554년 관산성(충북 옥천)에서 신라 복병에게 사로잡혀 전사하였다. 이로써 백제와 신라는 철천지 원수가 되어 660년 백제 멸망까지 치열한 전쟁이 끊이지 않았다.
혹자는 말한다. 대륙을 버리고 평양으로 내려온 고구려와 그의 등살에 한성에서 웅진으로 다시 부여로 쫓긴 백제는 국력이 쇠하여 멸망했기에 남쪽으로의 수도 천도는 망국의 결정적 실수였다고. 대륙의 강성한 세력과 유목민들과의 충돌을 회피했던 고구려 역시 남진정책으로 우리의 역사를 좁은 한반도에 가두는 결과를 불러왔다. 과거 고구려의 백성으로 흥망성쇄를 함께했던 만주족은 금나라를 건국하여 중국을 위협하였고 후대에 이르러서는 중국을 점령하고 영토를 확장한 청나라를 건국하였다.
요즘 국제정세가 매우 혼란스럽다.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으로 시작된 러우 전쟁은 아직도 끝나지 않았고, 중동지역의 잦은 분쟁과 인도와 파키스탄, 태국과 캄보디아간의 국지전이 끊이지 않고 있다. 가까운 중국은 하나의 중국을 주장하며 끊임없이 대만을 합병하려 기회를 엿보고 있으며, 최강대국인 미국도 러시아에 뒤질세라 팽창정책으로 이웃을 탐하며 불붙은 국제전쟁을 부채질하고 있다. 소수의 독재자들에 의해 세계평화가 위협받고 있는 현실은 인간의 탐욕이 끝없는 전쟁으로 이어지고 있는 것이다. 국내의 어지러운 정쟁도 개인의 탐욕에서 비롯된 것이라 생각하면, 인류 공존 세계평화는 이룰 수 없는 요원한 꿈과 이상으로 여겨진다. 백성이야 어찌 됐던 영악한 독재자의 탐욕은 인류 불행의 씨앗이다. 새삼 전쟁을 극복하기 위해서는 백성들이 깨어있어야 한다는 각성이 머리를 때린다. 깨어난 백성들이 그들의 올바른 지도자를 뽑기 때문이다. 내 자신부터 시류에 부화뇌동하지 않고 깨어난 삶을 살도록 노력해야겠다.
마침 공산성 앞 식당에서 점심을 먹었다. 식당 앞 공산성 정문.


공산성 앞 로터리의 무령왕 입상

국립 공주 박물관


한성 475 걸개 그림 앞 나무는 일본산 금송이란다.

기획 전시 "한성 475" 사건의 발단은 백제 최전성기 정복왕이었던 13대 근초고왕이 평양성을 침공하여 고구려 고국원왕이 전사하게 된 것이 빌미가 되었다. 이때부터 고구려는 백제를 원수로 여겨 광개토대왕에 이어 장수왕이 백제의 한성에 원정하여 475년 한성백제를 몰락시키고 동명왕 주몽의 같은 후손인 백제의 개로왕을 참수하였다.

백제에서 일본에 보낸 칠지도

당대의 무장



당대의 활

화살

개로왕 영상

공주박물관에서 제작한 장수왕과 개로왕의 전쟁 영상물을 연속 상영하고 있었다. (러닝 타임 30분)



금동관모를 쓰던 한성백제 권력가들의 관모와 칼

동쪽 전시실의 무령왕릉 유물, 무령왕릉 묘지기 석수.

박물관의 안내 로봇, 바야흐로 AI 전성시대가 도래했나 보다.



무령왕릉 유물 전시관, 무녕왕 부처의 목관은 일본산 금송이란다.


박물관 서편의 공주 한옥마을, 몇 번 방문했던 곳으로 변화가 없었다. 다만 계절만 바뀌었을 뿐...






포정사 문루 - 조선 후기 관아의 정문.
포정사 문루는 국립공주대학교사범대학부설고등학교 자리에 있었는데, 현재의 충청남도역사박물관[구 국립공주박물관] 자리로 옮겨져 박물관 역할을 하다가, 무령왕릉 발굴 후 새 박물관이 지어지면서 현재의 웅진동 자리로 옮겼다.

공주 선화당은 조선시대 충청도 관찰사가 업무를 처리하던 곳으로, 현재 대한민국 공주시 웅진동 3-1에 있다. 1980년 12월 29일 충청남도의 유형문화재 제92호로 지정되었다.
1602년 충청도의 감영이 충주에서 공주로 옮겨졌다. 이때 선화당은 제민천변에 있었는데, 18세기 초 봉황동 공주사범대학 부속 고등학교로 옮겨졌다. 1937년, 옛 공주국립박물관이 있었고, 현재 충청남도 역사문화관이 있는 국거리 고개 정상부근으로 옮겼다. 1992년 공주 국립박물관이 이전함에 따라 웅진동으로 옮겨 복원하였다.


한성 475 유튜브 영상 - https://www.youtube.com/watch?v=FIibqPbilwM&t=1767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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