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제 봄이 오나 했더니 벌써 여름이다. 가벼운 옷차림으로 나갔는데 햇빛이 뜨거워 걷기가 힘들었다. 우산을 양산 삼아 쓰고 다니는 사람도 있었다. 집 앞뜰에 영산홍이 활짝 피어, 영산홍 핀 화성을 보러 나갔는데, 아직 만개하지 않았다. 빨간 영산홍이 만개한 화성의 모습이 내 보기엔 제일 아름답다. 이번 경로는 화성을 반으로 나누어 동쪽에서 남쪽, 다시 성밖으로 나가 남쪽부터 동편 성벽 아래로 걸었다. 성벽아래 둔덕 정리를 깔끔하게 해서 보기에 좋았다.
화성 성안을 한옥으로 재건설하려는 시도도 있었지만 사유지인 까닭에 집주인들의 경제 사정 때문에 무산되었다. 그러나 성안 건물을 새로 지을 때마다 조금씩 한옥으로 바뀌고 있어서 시간이 지나면 자연스레 그리 될 성싶다. 일제가 훼손하여 없애버린 화성의 남문인 팔달문 양쪽 성벽들도 이제 복원하려 한다. 금년에 남쪽 성벽 주변의 건물들을 철거하고 공사를 진행하면, 곧 다시 재창조된 화성의 진면목을 볼 수 있겠다. 훼손된 구간 없이 완전한 화성의 모습을 미리 상상해 보는 것도 큰 즐거움이다.
서쪽 성곽은 화서문부터 팔달산 능선을 따라 성을 쌓았기 때문에 구간이 가파르다. 그에 비하면 동쪽 성곽은 평탄한 지형을 따라 성을 쌓은 탓에 걷기에 좋아 아름다움을 즐길 수 있는 길이다. 서양 관광객들과 중국 단체 관광객들이 많았다.
화성의 동문 창룡문, 내성. 안쪽의 모습.

동일포루

새로 지은 한옥 지붕 위로 팔달산 정상의 화성장대.

화성장대와 그 아래 화성 행궁, 행궁은 정조대왕이 아들에게 양위한 후, 아버지 능이 가까운 이곳에서 살고자 했으나, 일찍 돌아가신 탓에 뜻을 이루지 못했다.

화성 봉돈, 봉화대, 봉돈 아래 밖으로 향한 포구가 있다.


동이포루- 간결한 지붕과 기둥이 성곽과 잘 어울린다. 화려한 장식이나 공포가 없어도 아름답다. 기둥 여섯 개로 뽐내는 포대 지붕이다.


동삼치에서 밖으로 내다본 동이포루와 동쪽 성벽

동이포루와 봉돈

동남각루



남문시장에 모신 정조대왕, 술과 담배를 매우 즐겼다 전한다. 그 탓인지 만년에 종기가 많아서 고생했다고 전한다.

양 어깨를 잃은 팔달문

다시 남수문을 건너 성밖으로 나갔다. 아까 안쪽으로 내려왔던 동남각루



성밖길의 동이포루와 봉돈, 멀리 광교산 능선이 보인다.



동포루


동일포루와 동문인 창룡문


창룡문




창룡문 돌벽에 새긴 감독관과 석수 이름.

창룡문 내성과 동북공심돈.

동북 공심돈은 화서문 옆 서북공심의 각진 모습과 달리 동그란 원형 구조이다.


연무대, 정조대왕이 군사들을 훈련시키던 곳, 동장대로 불린다.

연무문과 동북공심돈


방화수류정은 동북각루로써 동북에서 침입하는 적들을 막는 지휘소이다. 정조는 아름다운 누각을 지어 방어 지휘소와 여흥을 즐기는 곳으로 사용했는데, 특히 이곳에서 활쏘기를 즐겼다고 한다. 화성에서 가장 아름다운 각루이다. 그 아래는 용연이 있다.


동북포루

방화수류정과 용연



동북포루와 방화수류정, 꽃을 찾고 버드나무를 좇는다라는 방화수류정은 조선 건축물 가운데 둘도 없이 아름다운 최고의 각루이다.

용연의 배수구인 이무기 석상, 이곳으로 흐른 물은 수원천과 합수하여 융건릉 부근의 황구지천으로 흘러간다. 정조의 효심이 서려있다.

일곱 무지개다리인 수문 화홍문과 방화수류정,



동북포루와 북쪽 성곽


화성 성곽길을 따라 운행하는 화성 어차.

다시 원점으로 돌아왔다. 동북공심돈 아래 연무대 활터.



훼손된 남쪽 성곽 잇기 사업 알림 현수막.

훼손이전 팔달문 주변

복원예상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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