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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원화성

화성 행궁의 봄

오랜만에 행궁에 들렸다. 의외로 많은 관람객에 놀랐다. 화성 행궁은 정조대왕이 화성을 축조하면서 함께 지은 행정관청이면서, 자신이 머물며 생활할 수 있도록 지은 궁궐의 축소판이다. 아버지 모신 현륭원에 참배할 때 기거하며 이곳에서 업무를 관장하였고, 어머니 혜경궁 홍씨를 위해 환갑연을 열기도 했다. 아들에게 양위한 뒤, 자신이 이곳에서 여생을 마치려 했으나, 일찍 승하한 탓에 그 뜻을 이룰 수는 없었다. 

 일제 강점기 일인들은 화성을 훼손하면서, 행궁마저 없애, 조선의 흔적을 지웠다. 행궁 자리에 경찰서와 도립병원을 지어1990년대까지 이어온 것을, 도립병원이 수원 연초제조창으로 이전하면서 본격적으로 복원이 시작되었다. 심재덕 수원시장이 앞장서 화성의 유네스코 지정 세계문화재 등재와 함께 행궁 복원이 이루어졌다. 

 벌써 여름이다. 뜨거운 햇살을 피해 그늘을 찾는다. 양산을 든 사람들도 더러 있었다. 햇볕도 마다않고 뛰노는 것은 역시 어린이들이었다. 술래잡기하듯 남녀 가리지 않고 순진무구하게 노는 모습이 보기에 좋았다. 저마다 핸드폰을 하나씩 장착하고 셀카 찍으며 노는 모습에 격세지감을 느꼈다. 변변한 장난감도 없이 나뭇막대기 하나로 칼싸움, 총싸움하던 어릴 때 모습이 떠올랐다. 뜨거운 햇살을 피해 걷는 것도 벅찬 듯싶어 카메라를 챙겨 넣었다.

 

 

행궁 정문의 홍살문, 팔달산 정상의 화성장대

 

행궁의 정문 신풍루

 

중문인 좌익문

 

삼문인 중양문 

 

봉수당, 행궁의 본전, 각종 연회와 행사가 봉수당 앞에서 거행되었다.

 

장락당- 혜경궁 홍씨가 머무르던 침소

 

수라간

 

수라상

 

유여택- 정조의 집무 공간, 정조는 이곳에서 신하들의 보고를 받고 과거 시험에 합격한 무사들에게 상을 내리기도 했다. 1800년 정조가 승하한 뒤에는 화령전이 완성되기 전까지 현륭원 재실과 창덕궁 주합루에 있던 정조의 초상화를 모시는 공간으로도 사용되었다.

 

노래당은 아들의 나이가 15세가 되면 왕위를 물려주고 화성에서 내려와 지내려 했던 정조의 뜻이 담긴 건축물이다.

 

낙남헌 - 화성행궁에서 공식 행사나 연회를 열 때 사용하는 건물

 

정조 어진을 모신 화령전

 

화령전 중문

 

어진을 모신 운한각

 

운한각 안 정조대왕 어진

 

재실인 풍화당

 

풍화당과 운한각

 

수원 객사인 우화관, 수원유수의 집무 공간 

 

우화관 정문

 

화성의 정문인 신풍문 오른쪽에 있는 집사청

 

집사청 대청 안의 인형 소품들.

 

화성의 정문인 신풍문 왼쪽에 있는 서리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