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마도 보리암과의 인연은 가깝지 않은 모양이었다. 수년 전 보리암을 방문했을 때도 안개비가 내려 주차장 입구에서 아예 올라가지 못하게 하더니, 이번에도 역시 안개가 내렸다. 날도 저물어 비라도 내릴세라 조바심을 내며 부랴부랴 서둘러 보리암 경내로 내려섰으나, 짙은 안개로 풍광을 제대로 볼 수 없었다. 기암괴석을 병풍처럼 둘렀다는 절 뒤의 암벽들도, 암자 앞의 망망한 한려수도 푸른 바다도, 안갯속에 모두 빠져 버렸다. 결국 안갯속에서 희미한 눈앞의 암자들만 바라보다 되돌아 타박타박 내려왔다. 이곳을 보려고 그 먼 곳으로부터 달려왔건만, 하늘이 도와주지 않는 탓으로 헛수고만 한 셈이었다.
또다시 다음을 기약하며 쓸쓸히 남해읍으로 들어섰는데, 숙박비도 음식값도 생각보다 비싼 편이었다. 식당 주인에게 왜 이리 비싸냐고 물었더니 관광지라 그렇단다. 친절하지도 않고 태도도 퉁명스러워 맘에 들지 않았다. 다시 나가려다가 주룩주룩 내리는 비 때문에 눌러앉고 말았다. 아마도 궂은비가 내리는 데다 손님도 많아 몹시 배가 부른 탓인가 보았다. 그 덕인지 모르겠으나 남해의 인상이 그리 좋지 않았다. 물론 성급한 일반화의 오류이긴 하겠지만 많은 사람들을 만나는 여행이 아니니 만큼, 지역사회 상인들의 태도가 그 고장의 인상을 좌우하는데... 조금 친절할 필요가 있을 것 같다.